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불교[ Buddhism, 佛敎 ]

불교[ Buddhism, 佛敎 ]
외국어 표기
Buddhismuskunde(독일어), Buddhologie(독일어), Bouddhologie(프랑스어), 佛敎學(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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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
불교라는 말은 부처(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이런 의미에서 釋敎라고도 한다)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불(佛:불타)이란 각성(覺性)한 사람, 즉 각자(覺者)라는 산스크리트 ·팔리어(語)의 보통명사로, 고대 인도에서 널리 쓰이던 말인데 뒤에는 특히 석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발전하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이며, 기원 전후에 인도 ·스리랑카 등지로 전파되었고, 다시 동남아시아로,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교권(敎圈)이 확대되어 세계적 종교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4세기 이후로는 이슬람교에 밀려 점차 교권을 잠식당하고 오늘날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아직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티베트에서 몽골에 걸친 지역,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 많은 신자가 있으며,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신(神)을 내세우지 않는다. 불타가 후에 이상화(理想化)되고 확대되어 절대(絶對) ·무한(無限) 및 그 밖의 성격이 부여되고,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창조자 ·정복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②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 대표된다.
③ 자비는 무한이며 무상(無償)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憎惡)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狂信)을 배척하고 관용(寬容)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④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종(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무상(無常)’과, 일체를 횡(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연기(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공(空)’으로 표현된다.
⑤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경향이 강하다.
⑥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만이 강조되고 있다.
⑦ 조용하고 편안하며 흔들리지 않는 각성(覺性:解脫)을 이상의 경지(境地)로 삼아 이를 ‘열반(涅槃)’이라 한다. 그 교의(敎義)는 석가의 정각(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8만 4000의 법문(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한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불(佛)도 본래는 석가 자체를 가리켰으나 그의 입적(入寂) 후 불신(佛身)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2신(身) ·3신 등의 논, 또는 과거불 ·미래불, 또는 타방세계(他方世界)의 불, 보살(菩薩) 등의 설이 나와 다신교적(多神敎的)으로 되었다.

불교학(佛敎學, buddhist studies)은 넒은 의미에서는 불교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 활동에 대한 총칭이다. 불교란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문자 그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그 가르침이 궁극적 진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되는 사상과 행위, 집단 등의 종교현상 전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불교학이라 하면 붓다(佛陀, Buddha)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불교의 기치(旗幟) 하에서 전개되어온 그런 모든 다양한 부문의 종교현상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어느 종교의 경우에서나 마찬가지로 불교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이에 임하는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신앙내적 접근과 신앙외적 접근이 그것이다. 신앙내적 접근이란 불교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변증론적인 관심과 의도, 목적을 가지고 불교를 탐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붓다의 가르침이 참이라는 믿음을 전제하고 그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에 따른 ‘올바른’ 실천방법을 모색하는 지적 활동을 가리킨다.

반면에 신앙외적 접근이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불교의 이런저런 면모를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신앙외적 접근은 서양에서 계몽주의운동 이후에 대두한 귀납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불교학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근대 불교학에서는 탐구의 목적을 ‘올바른 신행’의 모색에 두는 게 아니라, 불교의 제반 사항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획득하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데 둔다.

종교학의 한 분야로서의 불교학이라 하면 대개 근대 이후 신앙외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전개된 불교탐구를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신앙내적인 불교학의 성과들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불교 신행의 일환으로서 연구의 대상이나 소재가 되는 것이지, 동등한 반열의 학문적 담론이나 성과로 간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신앙내적인 동기와 목적에 의한 연구라 할지라도 근대 세속학문의 방법과 형식을 따르면서 학술적 가치와 의의를 인정받는 성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그 경계선이 언제나 일정하고 뚜렷한 것은 아니다.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고려 전기의 폐사지인 천왕사지에서 출토된 철불이다.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시대의 철불 양식을 잘 담고 있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높이 2.88미터의 대형 불상으로 불상의 좌대는 하남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전기, 10세기, 높이 2.88m, 보물 제332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1) 인도 불교
종교 신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가르침에 대한 지식, 해석, 이해를 위한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붓다의 교설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의 모색을 위주로 하는 이른바 전통적인 불교학은 붓다가 가르침을 펴면서 그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을 성문화하여 경전으로 편찬한 결집 과정에서 이미 고도의 학술적인 활동이 전개된 셈이었다. 어느 것이 진짜 붓다의 가르침이고 어느 것을 신빙성이 떨어져 편찬에서 제외할지를 판단해야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 가운데 논장(論藏)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특정 저자와 부파(部派)들의 해석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이미 고도의 학술적인 탐구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그 발상지인 인도 바깥으로 퍼져나가면서 불교에 대한 학문적 탐구도 국제적인 범위와 맥락에서 전개되는 계제에 이른다. 각지에서 경전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였고, 이른바 논소초(論疏鈔)로 대표되는 주석(註釋)의 형식이 정립되었다. 그런 성과들이 전통 불교학의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

인도 밖 지역으로서 가장 일찍 불교가 전래된 곳은 스리랑카였다. 스리랑카는 초기 경전들을 전승하고 동남아 각지로 불교를 전파시키는 거점 역할을 하였다. 서력기원 전후해서 불교가 처음 전래된 중국에서는 경전의 수집과 번역, 그리고 연구가 축적되면서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이른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불교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경전에 담긴 방대한 양의 가르침을 두고 그 설법의 시기가 언제인지, 어느 것이 가장 궁극적인 설법인지, 각 설법의 뜻과 의도는 무엇인지, 수행과 깨달음의 방법을 기준으로 하면 경전들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등을 구명하여 교설의 종합적인 체계를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떤 가르침, 어떤 경전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보는가, 또한 그래서 어떤 신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종파가 형성되었다. 7세기에 불교가 전래된 티베트에서도 특유의 대면토론식 교리논쟁과 경전번역 및 티베트어 대장경 편찬을 통해서 나름의 불교학 전통이 형성되고 계승되어왔다. 이러한 전통 불교학의 주체는 대개 불교승려들이었다. 그들은 신행의 일환으로서 경전을 수집하고 필사하거나 간행하여 유통시켰으며, 그 목록의 정리라든가 해설과 주석, 사전, 요약 등의 저술 그리고 각 지역 불교 또는 불교 전반의 역사에 관한 서술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쌓고 전승하였다.

2) 신앙외적 접근
신앙외적인 접근도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특히 15세기 후반부터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이어서 열강의 식민지 개척 경쟁이 벌어지면서, 서구의 탐험가와 그리스도교 선교사, 외교관들이 아시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불교를 접하고 관찰한 보고서와 저술들이 전해진다. 그러나 아직은 불교라는 명칭도 등장하지 않았었다. 아시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보고된 그 신행들이 기실은 동일한 종교의 다양한 모습임을 알아차리고 이를 불교라는 명칭으로 적시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전문 학자들에 의한 근대적 불교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19세기부터였다. 근대 불교학의 등장에는 다양한 요인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과학적인 문헌학이 크게 발전하고 아시아 각지의 언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이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특히 식민지 통치를 위해 현지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점이 큰 동력을 공급하였다.

19세기 초반까지는 인도불교에 대한 보고나 연구가 별로 없었다. 인도에서는 이미 오래전 13세기경부터 인도에서는 살아있는 종교로서의 불교는 사라졌고, 다만 유적과 문헌으로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빠알리(pāli)어 경전과 산스끄리뜨(sanscrit)어 경전들이 수집, 정리, 번역, 연구되면서 19세기 후반부터는 인도불교가 서구의 근대 불교학에서 중심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되었다. 인도의 언어가 인구어(印歐語, Indo-European language)에 속하여 서구의 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낯설었던 점이 그 이유의 일부로 꼽히기도 한다. 게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과 일본의 학자들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탐사를 통해 많은 옛 불교 문서들을 발굴해내어 연구 소재가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동북아시아 한문문화권의 불교에 대한 연구는 서구에서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본격화되었다. 19세기 말엽에 이르면 중국에도 이미 많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진출하여 활동하면서 중국불교에 대한 연구업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문 불전(佛典)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되었다. 중국불교 연구에서는 일본 학자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본이 동북아시아 한문문화권 일대를 침략하여 점거하고 식민지통치를 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근대화에 나섰고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선구적으로 서구 근대 학문을 도입하였으며 불교학에서도 그러하였다. 20세기 초에 당시 일본 불교학계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편찬한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은 향후 전 세계 불교학계에서 기본 전거로서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을 피하여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르자 뒤를 이어 수많은 티베트 승려들이 인도와 네팔, 나아가 유럽과 미주로 망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양의 불교학자들이 티베트 승려들과 협동하여 티베트불교에 대한 연구를 크게 활성화시켰다. 근래에는 특히 미주 불교학에서는 티베트불교 분야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원효(元曉, 617~686)
의상(義湘, 625~702)

3) 한국의 불교학
한국도 유구한 전통 불교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1600여 년 동안 주로 승려 신분의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신앙내적 접근의 연구업적이 쌓여왔다. 원측(圓測, 613~696)원효(元曉, 617~686)의상(義湘, 625~702) 등을 비롯해서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명성을 떨친 승려 학자들도 여럿 배출되었다. 불교학은 유학(儒學)과 함께 한국 전통학문의 핵심적인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한국에 근대 불교학이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전략에 편승하여 일본불교가 진출해오자 한국불교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의 노력으로 불교 전반과 특히 한국불교에 대한 학문적 담론이 활성화되었다. 그 중에 이른바 신학문을 수학한 이들은 근대적인 연구방법 및 서술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918)는 한국불교 관련 사료의 수집편찬이라는 기초적인 차원에서나마 근대 불교학적 성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여러 일본 학자들이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또는 어느 정도 독자적인 관심에 의해서 한국불교를 연구하고 성과를 내놓았다.

1906년에 설립된 명진학교(明眞學校)를 효시로 하여 불교에 대한 현대적인 교육과 승려를 비롯한 불자들에 대한 신학문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불교전수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 등으로 여러 차례 변신과정을 거쳐서 한국 근대 불교학의 중심이 지금의 동국대학교로 이어졌다. 제도적으로는 불교교단의 하나로 간주할지 아니면 신종교교단으로 분류할지 좌표가 분명치 않기는 하지만, 원불교(圓佛敎)에서는 1946년에 유일학림(唯一學林)을 설립하였고 이것이 후에 원광대학교(圓光大學校)로 발전하고 원불교교학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1996년에는 대한불교진각종(大韓佛敎眞覺宗)의 종지를 바탕으로 위덕대학교(威德大學校)가 설립되어 밀교(密敎) 연구에 주력하고, 2002년에는 대한불교천태종(大韓佛敎天台宗)의 금강대학교(金剛大學校)가 설립되어 한국 천태교학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였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대학원·대학교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불교학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원·대학교들이 여럿 설립되어 불교학 연구와 교육의 장이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한 종립학교 이외에 일반 대학교에서도 불교를 전통 문화와 사상의 하나로서 신앙외적인 입장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와 과목을 두는 경우가 많다. 철학과나 역사학과에서 동양철학(東洋哲學) 또는 한국철학(韓國哲學) 또는 동양사나 한국사 분야의 일환으로 연구 및 교육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밖에 문학(文學, literature)이나 미술 및 음악 등 불교예술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3. 접근방법 및 주요 연구영역
1) 접근방법
지금까지도 불교학의 주제로서는 불교의 사상과 교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문헌을 통해서 접근하는 연구방법이 대종을 이룬다. 불교 사상과 교리에 관한 자료로서는 경전과 사상가들의 저술을 비롯한 문헌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 불교학에서나 근대 불교학에서나 마찬가지이다.

또 하나 불교학의 주요 주제는 불교의 역사이다. 여기에서는 역사학 일반의 각종 접근방법이 그대로 적용된다. 불교사에 대한 연구에서는 사상사와 제도사가 주축을 이루며, 여기에서도 문헌사료가 연구소재의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활사에 초점을 두는 연구에서는 인류학적⋅민족지학적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며, 유적과 유물을 통한 연구에는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과 미술사학(美術史學)이 동원되기도 한다.

2) 연구영역
불교학의 연구영역은 연구 대상이 되는 소재나 시대, 지역, 종파, 주제 그리고 접근방법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아래에 제시되는 분류들은 그 중에서도 현재 실제로 불교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로 꼽는 사례들을 모아본 것이다.
(1) 연구 대상 문헌의 언어에 따른 분류
① 빠알리어 경전, ② 산스끄리뜨어 경전, ③ 한문 경전, ④ 티베트어 경전

(2) 연구 대상 경전의 부류에 따른 분류
① 경서(經書, sūtras), ② 율서(律書, vinayas), ③ 논서(論書, abhidharmas)

(3) 불교의 역사적 전개와 시대구분에 따른 분류
① 초기(근본, 원시)불교, ② 부파불교, ③ 대승불교, ④ 각 지역의 고대불교, 중세불교, 근현대불교

(4) 지역에 따른 분류
① 인도불교, ② 동남아불교(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③ 중국불교, ④ 한국불교, ⑤ 일본불교, ⑥ 티베트불교, ⑦ 서구의 불교

(5) 학파 및 종파에 따른 분류
① 초기불교, ② 부파불교, ③ 아비달마교학, ④ 중관사상, ⑤ 유식사상, ⑥ 법성종, 법상종, 열반종, 화엄종, 정토종, 천태종, 선종, 밀교 등 종파별 교학

(6) 불교의례 및 불교예술 분야
① 불교의례, ② 불교음악, ③ 불교미술, ④ 불교문학과 설화

(7) 응용불교학 및 접근방법에 따른 분류
① 불교철학, ② 불교윤리, ③ 불교사회학, ④ 불교심리학 및 상담학, ⑤ 불교사회복지, ⑥ 사원 경제와 조직

4.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붓다: ‘깨달은 이’라는 뜻의 인도 말로,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에 무수한 붓다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 빠알리어 경전: 빠알리어는 인도-아리아어의 일종으로 인도 중부, 서부지방의 고대 민간언어인데 불교의 초기 경전들이 이 언어로 성문화되어 전해졌다.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방의 불교에서 정전(正典)으로 삼아왔다.

• 산스끄리뜨어 경전: 산스끄리뜨어는 베다를 비롯한 고대 인도의 종교문헌에 쓰인 언어인데, 불교에서는 대승불교경전들이 산스끄리뜨어로 쓰였다.

• 부파불교(部派佛敎):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뒤 100년경부터 400년경 사이까지 가르침과 계율 등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따라 교단이 분열하여 20여개의 부파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 대승불교(大乘佛敎): 부파불교 시대에 불교사상이 철학화되어 현학적인 담론으로 흐르고 교단이 출가수행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에 대하여, 재가신자들의 신행을 중심으로 하여 발단되고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불교운동이다. 기존의 출가자 중심의 불교를 자기 자신만의 구원을 추구하는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반해 중생 모두를 함께 태우고 구원의 길을 가는 수레라는 의미에서 대승불교라고 자처하였다. 그 새로운 사상을 피력하기 위해서 새로운 경전들, 즉 ‘대승’ 경전과 논서들을 만들었고, 동북아시아 한문문화권과 티베트, 몽골로 전파되었다. 반면에 동남아 지역에서는 대체로 ‘소승’ 경전만을 정전으로 삼는다.

2) 관련 직업군
• 불교학자: 대학교수, 연구원 등
• 종무원(宗務員): 불교 교단의 사무를 담당하는 요원
• 군종법사(軍宗法師)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에 있는 석굴 사찰. 국보 제24호.
해동고승 전설화,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에 나타난 불교설화.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이다.

1999년 11월 19일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었다. 활자본이며,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慶州府使)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板刻)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본서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므로 체재나 문사(文辭)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史料)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

즉,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古朝鮮)에 관한 서술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檀君神話)는 단군을 국조(國祖)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인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전설 ·신화가 수록된 설화문학서(說話文學書)라고도 일컬을 만하며, 특히 향찰(鄕札)로 표기된 《혜성가(彗星歌)》 등 14수의 신라 향가(鄕歌)가 실려 있어 《균여전(均如傳)》에 수록된 11수와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향가의 전부를 이루고 있어 한국 고대 문학사(文學史)의 실증(實證)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고려의 고승 각훈(覺訓:覺月)이 1215년(고종 2)에 지은 한국 최고(最古)의 승전(僧傳)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오관산(五冠山) 영통사(靈通寺)의 주지이던 각훈이 왕명을 받아 저술한 책으로 전질
(全帙) 중에서 첫머리의 2권 1책(필사본)만 발견되어 전한다. 삼국의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고승들의 행적기
(行跡記)로서, 권1에는 순도(順道) ·망명(亡名) ·의연(義淵) ·담시(曇始) ·마라난타(摩羅難陀) ·아도(阿道) ·현창
(玄彰) ·법공(法空) ·법운(法雲)의 전기를, 권2에는 각덕(覺德) ·지명(智明) ·원광(圓光) ·안함(安含) ·아리야발마
(阿離耶跋摩) ·혜업(慧業) ·혜륜(慧輪) ·현각(玄恪) ·현유(玄遊) ·현대범(玄大梵)의 전기 등으로,1 ·2권에 걸쳐모두 19명의 행적이 들어 있다. 권두에는 석보(釋譜)와 불교동래(佛敎東來)의 기록도 있는데, 이 책은 승전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일반 전적(典籍)으로도 한국에서 가장 오랜 찬술 중의 하나로 귀중한 자료이다.

해동고승전에 나타난 고승의 행적
순도(): 고구려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승려. 생몰년 미상. 372년(소수림왕 2) 6월 진()나라 왕 부견()이 순도를 시켜 불상과 불경을 고구려에 전하였고, 이에 소수림왕은 부견에게 사신을 보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순도로 하여금 왕자를 가르치게 하였다. 순도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느 나라를 거쳐서 언제 고구려에 들어왔는지는 기록상 모호한 점이 있으나, 중국 본토 사람이 아닌 호승()인 것만은 확실시되고 있다. 그는 또 덕망이 고매하고, 자비롭고 너그러운 인품을 지녔으며, 교화의 열의가 굳은 사람이었다. 고구려에 왔을 때 모든 군신들이 예를 갖추어 정중하게 성문()이라는 곳으로 영접하였고, 성의를 다하여 신심()을 표하였다고 한다. 거처하고 있었던 절은 375년에 창건한 성문사()이며, 뒤에 흥국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망명(): 생몰년 미상, 이름모름 고구려의 승려. 동진시대의 고승 이었던 지둔(314~366)법사는 "불교의 큰 스승으로 우러러 모셨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덕망이 높았다. 당시의 역사가들이 기록을 남겨놓지 않아 안타깝다.

의연(): 생몰년 미상. 고구려의 승려 고구려 576년(평원왕 18)에는 의연()이 위()·제() 2대의 숭통()으로 이름이 높던 법상()에게 가서 불교사를 배워 왔다. 당시 고구려의 재상 왕고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나라에 펴고자 의연 스님을 북제의 수도로 보내어 여러 가지 항목을 알아오게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지 얼마나 되었나?   -인도에서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시기  - 제나라와 진나라 중 먼저 받아들인 쪽은?  <십지경론> <대지도론>  <보살지지경> <금강반야경론> 등을 찬술하게 된 유래 등이다.

담시()중국의 관중(현 장안)사람. 동진 진흙탕물을 밟고 지나가도 한번도 물에 젖지 않아 백족()화상이라 불렀다. 395년에는 고구려로 들어와 활발히 전도하였다. 담시 스님이 들어오기 이전 고구려의 고국양왕(:재위 384∼391)은 영()을 내려 불법을 숭상하도록 권장하였고, 광개토대왕 때인 392년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을 지었다.

마라난타 ():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하였다는 인도의 승려 384년(침류왕 1)에 진(晉)나라를 거쳐 백제에 들어와 불법(佛法)을 크게 전파하였다. 이 때부터 백제에 불교가 시작되었다. 그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도():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고구려의 승려 아두()라고도 한다. 각훈()이 펴낸 《해동고승전()》에 따르면 본래 천축인()이라고도 하고, 또 오()나라 사람이라고도 하며, 위()나라 굴마()와 고구려 여인 고도령()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아도를 전설적 인물인 묵호자()와 동일 인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묵호자는 신라 눌지왕() 때에 고구려로부터 신라 변방인 일선군(:지금의)으로 들어와 모례()라는 사람의 집에 숨어 지내다가, 성국공주()의 병을 고쳐주고, 그 공로로 불교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그 자태가 묵호자와 같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묵호자가 바로 아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도는 그 풍모와 생김새가 특이하고, 신통력이 있어서 강()을 하면 그 때마다 하늘에서 묘화()가 비오듯 하였다고 전한다.

법공() 신라 법흥왕: 법공스님은  신라 23대 법흥왕(재위 514~540)이다. 성 김(). 이름 원종(). 지증왕의 아들. 어머니는 연제부인() 박씨(). 비()는 보도부인() 박씨. 왕위에 오르자 시법()을 제정하고, 517년 병부()를 설치하였다. 520년 율령()으로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고, 521년 양()나라와 국교를 열었다. 522년 가야국()이 청혼하자, 이찬 비조부()의 누이동생을 출가시켰다. 523년 감사지() 19인을 임명하였으며, 524년 남부지방을 순행()하고 황무지를 개척하여 군사당주()를 두고, 525년 사벌주()에 군주()를 두었다. 527년 처음으로 불법()을 공인하였으며, 531년 상대등 벼슬을 새로 두어 국사()를 총리하게 하였다. 532년 본가야(:)를 병합하여 금관군()을 설치, 낙동강 유역을 확보하였다. 536년 연호를 건원()이라 정하였다. 능은 애공사() 북쪽 산봉우리에 있다.

법운(): 신라 진흥왕: 법운스님은  진흥왕(재위 540~576)이다.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불교를 신봉하였다. 말년에는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어 스스로 법운이라 이름하였다. 성 김(). 휘 삼맥종(?). 일명 심맥부(). 법호 법운(). 지증왕()의 손자, 갈문왕() 입종()의 아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식도부인(), 비는 사도부인 박씨(). 법홍왕의 뒤를 이어 7세에 즉위할 때 태후, 즉 법흥왕비가 섭정하였다. 541년 이사부()를 병부령()에 임명, 백제에 대해 화친정책을 썼으며 551년(진흥왕 12) 개국()이라고 개원()하였다. 그해 3월에는 우륵()과 그의 제자 이문()을 불러들여 음악 연주를 듣고 역시 같은 해에 팔관회()를 개최하였다.

각덕(): 양나라로 건너가 유학한 첫 신라인 이었다. 양나라에서 유명한 여러 고승들을 찾아 다니며 수학하였다. 진흥왕 10년(549)에 양나라 사신과 함께 최초로 부처님 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자 진흥왕이 흥륜사 앞까지 나가 예의를 갖춰 환영하라 하였다.

지명(): 신라사람으로 진평왕 7년(585)  불법을 배우기 위해 중국 진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진평왕 24년(602) 9월 중국에 온 신라 사신을 따라 귀국하니 진평왕이 대덕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곁에 못시기를 원했다.

원광():원광 [, 542~640] 신라의 승려. 속성 박(). 566년(진흥왕 27) 승려가 되어 571년 삼기산()에서 수도하고, 578년(진지왕 3) 진()나라 진링[]의 장엄사()에 가서 《열반경()》 《성실론()》을, 쑤저우[]의 서산사(西)에서 《구사론()》 등을 연구한 후 강경을 하여 명성을 떨쳤다. 589년(진평왕 11) 수()나라 장안()에 가서 담천()으로부터 《섭대승론()》을, 혜원() ·영유() 등에게서 《열반경》 등을 배웠다. 600년(진평왕 22) 귀국 후 《여래장경사기()》 등을 지어 새로운 불교지식을 신라에 보급하였다. 그후 청도()의 가실사()에 있을 때 귀산()과 추항(?  )에게 세속오계()를 지어 주었는데, 그후 이것이 화랑도()의 중심이념이 되었다. 613년(진평왕 35) 황룡사()에서 인왕백고좌회()를 열어 《인왕경()》을 강설하다 죽자, 명활산()에 장사지내고, 삼기산 금곡사()에 부도()가 세워졌다. 

혜업(): 신라의 승려. 일찍이 신라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627~649년 인도 여행을 떠남. 중인도의 보리사로 가서 부처님의 유적지를 참배하고 나라탄사에서 "유마경"을 청하여 당나라 번역본과 대조하며 연구하여 뜻을 완전히 깨우침. <서역구법고승전>에는 혜업스님이 60세 무렵에 입적하였고 스님이 싼스크리트어로 필사한 책은 나라탄사에 남아있다 라고 되어 있다.

혜륜(): 신라의 승려. 출가한 후 석가세존의 유적지를 순례하기를 동경하여 중국 복건성으로 건너가, 장안 까지 걸어갔다. 고종의 칙명으로 중국 현조법사를 따라 인도를 순례한다. 유적지를 참배하고 중인도의 암마라발국의 산자사에서 10년간 머무르고 다시 서역의 건타라 산다사에서 살았다. 의정 삼장이 절을 방문 했을 때 약 40세 정도로 건재해 있었다. 의정삼장의 저서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 실린 내용과 같다.

현각(): 신라의 승려. 중국 당으로 건너가 훌륭한 스승을 찾아 다녔다. 마침내 현조법사와 동행하여 중인도의 대각사에 도착한다. 현각 스님은 인도에서 수도하여 불교의 대스승이 되었지만 40세가 조금넘어 병으로 입적하였다.

현유(): 고구려의 승려. 중국에서 열심히 불법을 배웠지만 다시 인도로 건너가 공부 하였다. 그후 중국으로 돌아 오려했으나 그곳에 머무르며 대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불법을 널리폈다. 고국으로 돌아 오지는 못했지만 그의 공적은 위대했다.

현태(): 신라의 승려. 일찍이 당나라로 건너가 불교의 깊고 오묘한 이치를 명쾌하게 규명하였다. 650~655년에 중인도로 건너갔다. 대각사에 머물면서 불교경전을 공부하였다. 중국으로 돌아와 불법을 널리 전하였다.

※ 해동고승전은 법원주림 [法苑珠林], 불조통기 [佛祖統紀], 삼국사기 [三國史記], 양고승전 [梁高僧傳],
당고승전[唐高僧傳],송고승전 [宋高僧傳] 등에 수록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되었다.

- 아래의 내용은 본 불교설화 사이트에 포함된 내용으로서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에 관련된 불교설화만 정리해 놓았다. 좌측 검색란에서 제목을 입력하면 설화내용을 볼 수 있다.
번호제 목원전출처
1
노힐부득이 미륵기도하고 현신으로 성불하다   
三國遺事
2
진자스님이 미륵을 만나 국선을 삼다
三國遺事
3
광덕과 엄장
三國遺事
4
경흥법사가 만난 비구니 관세음보살
三國遺事
5
먼 나라에 표류된 장춘이 날아오다
三國遺事
6
바다건너 국선을 구한 관세음보살
三國遺事
7
최승로가 대비관음의 구원으로 살아나다
三國遺事
8
조신의 꿈에 나타난 관세음보살
三國遺事
9
의상대사가 만난 관음신전
三國遺事
10
낭지스님 구름을 타고 중국을 왕래하다
三國遺事
11
신라의 두 태자가 수도한 일
三國遺事
12
조용함을 구하여 세상일을 잊은 혜현스님
三國遺事
13
연회구사와 문수재
三國遺事
14
백족화상의 포교
三國遺事,海東高憎傳
15
보덕화상의 비래방장
三國遺事
16
아도 신라 불교의 기초를 열다
三國遺事,海東高憎傳
17
난타스님이 불교를 열다
三國遺事
18
고구려 불교의 시초
三國遺事,海東高憎傳
19
고려태조 도참설에 의하여 호국사찰을 짓다
三國史記, 三國遺事, 高麗史
20
양지 스님이 석장을 부리다
三國遺事
21
혜숙이 여러가지 모습을 나타내다
三國遺事
22
원효스님이 구속을 받지 않다
三國遺事
23
동화사 창건설화
三國遺事
24
지통스님의 수도
三國遺事
25
영재스님의 무외
三國遺事
26
만어사 고기떼가 변해 돌이된 만어
三國遺事
27
원효가 촉루수를 마시고 도를 깨닫다
三國遺事卷四, 海東高憎傳
28
사자암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의 근거지
三國遺事
29
유가종의 대현과 화엄종의 법해
三國遺事
30
원광의 세속오계
三國遺事,海東高憎傳
31
명량의 신인종
三國遺事
32
의상의 화엄종
三國遺事
33
범일국사가 만난 짝귀스님
三國遺事
34
유점사 53불
三國遺事
35
호랑이를 사랑하고 호원사를 지은 김현
三國遺事
36
죽었다가 살아나서 반야경 불사를 완성한 선율스님
三國遺事
37
알에서 태어난 주몽
三國遺事
38
궤짝속에서 나탄나 석탈해
三國遺事
39
신라 6촌 촌장의 탄생과 박혁거세
三國遺事
40
용의 아들 서동
三國遺事
41
보양스님의 용궁설법
三國遺事
42
포천산의 다섯 비구의 육신등천
三國遺事
43
용의 아들 처용
三國遺事
44
부처님의 그림자가 독룡과 나찰의 항복을 받다
三國遺事
45
혜통스님이 용의 항복을 받다
三國遺事
46
용궁에 다녀온 수로부인
三國遺事
47
역경공덕으로 구라마집 삼장의 혀가 타지 않다
三國遺事
48
낙산사 창건설화
三國遺事
49
백엄사의 돌함좌 사리
三國遺事
50
문수사 문수보살과 변재처녀의 감음
三國遺事
51
법화경에서 사리가 나오다
三國遺事
52
장안사 개칭의 유래
三國遺事
53
수다실리의 사리 8홉
三國遺事
54
사복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다
三國遺事
55
밀본스님이 요사한 귀신을 물리치다
三國遺事
56
백률사 부례랑
三國遺事
57
해은사 수로왕비의 가야 도래와 혼인담
三國遺事
58
미타암 미타굴과 아미타불에 관한 설화
三國遺事
59
호국룡이 된 문무대왕과 만파식적
三國遺事
60
삼국통일을 향한 조탑불사
三國遺事
61
곰이 사람이 된 사실
三國遺事
62
법흥왕과 이차돈의 순교
三國遺事卷四, 海東高憎傳
63
김유신장군의 사랑과 천관사의 연기
三國史記
64
초달스님이 감옥에서 벗어나다
唐高僧傳
65
승융스님이 귀신의 재앙에서 벗어나다
唐高僧傳
66
혜간스님이 관세음을 칭념하고 귀신의 장난을 물리치다
唐高僧傳
67
내원사 1천명의 성인을 이룬 천성산
宋高僧傳
68
금산사 버들가지에 꿰인 개구리
宋高僧傳

불교설화[ 佛敎說話 ]
불교적인 교리를 주제로 담고 있는 설화. 세 가지 유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특이점이 있다.
첫번째 유형은 불교의 특정 종교 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설화를 협의의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특정 시대에 경전이 유입되면서 이 경전의 속화 과정을 통해서 일정한 이야기로 가다듬어진 것이므로 종파적 이해에 얽힌 특징이 있고, 변질되거나 왜곡되어도 그 본가닥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원래의 불교교리적 주제를 담고 있는 불교설화라고 하겠다.

두번째 유형은 본래 경전과 무관한 것으로 토착적으로 전승되던 이야기 가운데 불교적 교리와 주제에 부합하면서 이들을 하나의 단일한 모습으로 개작하거나 윤색하여 불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저경이나 불교의 경전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그러한 성격의 이야기들이 특정하게 의미를 가진 채 살아나는 것이 이 유형의 불교설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러한 유형은 한정되어 있으며, 독창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유형은 불교와 관련이 없으며 예사로이 전승되는 것 가운데 불교적인 성격의 의미 해독을 하도록 만들어지는 설화가 있다. 이러한 설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불교설화이고, 광의의 불교설화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불교설화로 견강부회되어도 어디에서 그 경전적 가치와 의의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재래신앙과 불교신앙이 문화적으로 충돌하면서 한편으로는 불교를 맵자하게 해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래신앙을 해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신불습합(神佛褶合)이나 무불습합(巫佛褶合)의 자료들로 치부되는 것들의 이야기 유형은 모두 이러한 성격을 가진 것들이 적지 않다.

재래의 이야기와 불교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융합되어 있으며 불교인지 토착종교의 이야기인지 전혀 알기 어렵게 된 것이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대부분의 자료들은 전승되던 것을 정착시켰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특정 편목에 있는 것들은 이와 같은 세 번째 유형의 이야기로 포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가령 역사적 사실과 유관하면서도 틈새가 큰 것들로 「탑상편」·「의해편」·「신주편」·「감통편」·「피은편」·「효선편」 등의 이야기는 불교와 재래신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융합과정이나 갈등과정을 선명하게 집약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적인 주제의 불교설화 본령이 이에 해당한다.

이 편목에 있는 것들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기이편」에 있는 「거타지」와 같은 데서는 신불습합과 다른 재래의 영웅이 승리하는 전통이 마련되어 있으며, 외면적 융합과 달리 그 이전 시기의 고충과 갈등이 색다르게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 번째 유형의 불교설화들은 재래의 신앙 우위에 입각한 불교신앙의 갈등과 패배, 재래신앙과 불교신앙의 복합과 융합, 불교신앙의 일방적 우위 강조 등을 드러내는 것들도 적지 않다.

재래신앙의 우위를 담고 있는 것의 적절한 예증이 「거타지설화(居陁知說話)」이고, 이는 『고려사』「고려세계(高麗世系)」‘작제건설화(作帝建說話)’에도 이어져 있다. 이 이야기의 핵심적 소인을 예증삼아 말한다면, 재래의 영웅이 위기에 처한 서해 용왕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중이 다라니를 읽으면서 자신의 못 주변을 돌게 되는데 이를 퇴치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영웅인 거타지가 활로 쏘아 죽이니 늙은 여우였다고 하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다. 불교를 가장한 것이 늙은 여우이지만, 불교가 불신되고 불교를 배척하고자 하는 재래의 영웅신화가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신앙과 재래신앙의 융합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사복불언(虵福不言)」과 같은 것이 적절한 예증이 된다. 사복은 견훤과 같은 수신의 존재가 변화된 것으로 불교적인 주체와 결합하면서 이야기가 이상적으로 불교의 교리를 구현하는데 적절하게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야기를 병렬시켜 놓은 것을 보게 되면 이야기의 핵심이 경전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여 재래의 이야기와 외래의 경전 이야기가 변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재래신화의 주체가 불교적인 신격에 의해 제압되어 설법을 들으면서 하위로 몰려가는 것으로 「어산불영(魚山佛影)」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만어산에 다섯 독룡(毒龍)이 있었으나, 이들은 나찰녀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였는데, 수로왕이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자 나찰녀가 오계를 받아 재해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다. 재래의 설화는 재래의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불교신앙을 대변하는 특정한 인물에게 귀의하는 역사적 변동이 핵심으로 드러난 것을 볼 수 있다.

불교설화는 정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유형적 정의를 통해서 불교설화는 단편적으로 불교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불교와 토착적인 종교가 심각한 역사적 갈등과 융합을 연속적인 변이적 역동상으로 하면서 정리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교설화에 담긴 이야기의 역동적 양상을 찾아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자료
[불교 [Buddhism, 佛敎] (두산백과)
[삼국유사/해동고승전설화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신화의 연구』(집문당, 2001)
『삼국시대 설화의 뜻풀이』(집문당, 1990)
『한국설화와 민중의식』(정음사, 1985)
교양교재편찬위원회 엮음(2000년), 『불교학개론』,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찰스 프레비쉬 외 저, 박용길 옮김(1989년), 『불교: 그 현대적 조명』, 서울: 고려원.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엮음(2004년), 『불교사의 이해』, 서울: 조계종출판사.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편저(1998년), 『불교교리』, 서울: 조계종출판사.
불교교재편찬위원회(1997년), 『불교사상의 이해』, 경주: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
「불교신격과 재래신격의 만남」(『고전문학과 교육』,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10)
[불교설화 [佛敎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불교 [Buddhism, 佛敎] (두산백과)
[불교 [Buddhist studies, Buddhology] (학문명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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