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우리의 최고 먹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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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기면 국수 속의 수분은 증발하고 국수는 익으면서 속에 구멍이 생기는데, 이 상태로 건조시켰다가 필요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작은 구멍에 물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상태로 풀어지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해 가을 일본의 닛신(日淸)식품이 국수 발에 간단한 양념국물을 가미한 조미면(助味麵)을 '끓는 물에 2분'이면 먹을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판한 것이 인스턴트 라면의 효시이다. 그 후 1959년 에스코크, 1960년 묘우조(明星)식품에서 치킨라면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라면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라면은 조미면으로 면 자체에 양념을 가미한 것이었지만 시일이 경과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묘우조식품에서 1961년 스프를 분말화하여 별도로 첨부하면서 지금의 라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서 3분이면 OK라는 선전 문구 아래 현재는 세계적으로 연간 437억의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인스턴트 라면은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보존식품으로 20세기 음식문화를 크게 변화시킨 혁명적인 식품이라 할 수 있다.
국수를 증숙시킨 후 기름에 튀겨서 만든 유탕면에 분말 수프를 별첨한 인스턴트식품.
라면의 기원은 1870년대 일본 요코하마 중화거리, 고베 난킨마치 등의 중국요리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설과 1922년 삿포로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돼지뼈, 닭고기, 야채, 멸치 등으로 우려낸 국물에 수프로 양념을 하여 삶은 중화면(中華麵)과 함께 먹는 것이 대체적이다.
라면이 많은 인기를 끌자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라면이 등장하게 되었다. 중일전쟁 때 중국인들이 전쟁 비상식량인 건면을 식용유지로 튀겨서 보관하기 쉽도록 포장하고 별도의 수프를 가미하여 먹은 것을 인스턴트라면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인스턴트라면이 처음 출시된 것은 1958년으로 산시쇼쿠산(サンシㅡ殖産:현재 닛신식품)에서 생산한 '치킨라멘(チキンラㅡメン)'이 시작이었다. 닛신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면을 기름으로 튀기는 것을 보고 라면을 만드는 방법을 착안하였다.
라면이 많은 인기를 끌자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라면이 등장하게 되었다. 중일전쟁 때 중국인들이 전쟁 비상식량인 건면을 식용유지로 튀겨서 보관하기 쉽도록 포장하고 별도의 수프를 가미하여 먹은 것을 인스턴트라면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인스턴트라면이 처음 출시된 것은 1958년으로 산시쇼쿠산(サンシㅡ殖産:현재 닛신식품)에서 생산한 '치킨라멘(チキンラㅡメン)'이 시작이었다. 닛신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면을 기름으로 튀기는 것을 보고 라면을 만드는 방법을 착안하였다.
1963년 9월 15일에 한국 최초의 라면으로 출시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의 식량난 타개를 목적으로, 주식인 쌀을 대체하여,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제품은 삼양식품의 설립자인 전중윤 회장이 일본의 《묘-죠-쇼쿠힌(일본어: 明星食品 명성식품[*])》에서 라면 기계 2대를 들여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닭고기 스프와 제품의 주황색 표지에 중량 100g에 10원의 가격으로 처음 선보였다. 3년간 시행 착오를 거쳐 대한민국의 시장 점유율 1위로 대표 라면으로 사랑을 받았으나, 1989년 《공업용 쇠기름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사건
공업용 쇠기름 사건
이 부분의 본문은 공업용 쇠기름 사건입니다.
제6공화국(대통령 노태우)에 접어들어, 1989년 11월 3일 라면에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한다는 투서를 받고, 검찰이 《보건범죄 단속에 대한 특별조치법》과 《식품위생법》으로 삼양식품과 관련 업체 5개사 대표를 구속 입건하였다. 검찰은 삼양라면이 “비누나 윤활유 원료로 사용하는 공업용 수입 쇠기름을 사용해 라면 등을 만들어 시판했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공업용우지’라는 선정적인 용어를 이용하여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1989년 11월 6일 보건사회부장관 김종인이 라면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11월 28일 구속자 전원이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기업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생산판매가 중단되면서, 직원들의 퇴사로 일자리를 잃었으며,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여 회사의 존폐 위기에 몰렸다.
2009년 9월 최초의 맛을 재현한 닭고기 국물맛 삼양라면이 '더 클래식'이라는 부제를 붙여 따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이후 단종되었다.
삼양라면 구매운동,
2008년 6월 라면 제조사인 삼양식품과 농심에서 생산하는 라면제품에 각각 이물질이 발견되어 물의를 일으켰다. 6월 13일 삼양식품의 용기라면 ‘큰컵 맛있는 라면’에서 금속성 너트(암나사)가 발견되었고, 6월 17일 농심 신라면에서 바퀴벌레 이물질이 나왔다고 보고되었다.
도리어 누리꾼들은 "삼양라면을 먹읍시다"라고 호소하고 '삼양라면 구매운동'이 누리꾼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인스턴트라면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60년경으로, 현재 여러 식품회사에서는 각각 특색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 시판한다. 라면은 건조식품이므로 수분이 많은 식품에 비해 단위 중량당 영양분이 많으며, 튀긴 식품이므로 지방이 많아 120g당 500kcal의 열량을 내는 고(高)칼로리 식품이다. 인스턴트 라면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많이 생산하며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법은???
① 배합공정:소맥분과 배합수를 혼합하여 반죽을 만든다.
② 면대형성:롤러로 압연하여 면대를 만든다.
③ 제면공정:제면기로 국수 모양을 만들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조절하여 라면 특유의 꼬불꼬불한 형태로 만든다.
④ 증숙공정:스팀 박스를 통과시키면서 α화(호화)시킨다.
⑤ 성형공정: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납형 케이스에 넣는다.
⑥ 유탕공정:150℃ 정도에서 튀기고 수분을 휘발시킨다.
⑦ 냉각공정:상온으로 냉각시킨다.
⑧ 수프제조공정:주원료를 고압처리하여 진공농축, 진공건조시킨 다음 각 원료를 혼합하여 포장한다.
⑨ 포장공정:수프를 첨부하여 완제품으로 포장한다.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법은???
① 배합공정:소맥분과 배합수를 혼합하여 반죽을 만든다.
② 면대형성:롤러로 압연하여 면대를 만든다.
③ 제면공정:제면기로 국수 모양을 만들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조절하여 라면 특유의 꼬불꼬불한 형태로 만든다.
④ 증숙공정:스팀 박스를 통과시키면서 α화(호화)시킨다.
⑤ 성형공정: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납형 케이스에 넣는다.
⑥ 유탕공정:150℃ 정도에서 튀기고 수분을 휘발시킨다.
⑦ 냉각공정:상온으로 냉각시킨다.
⑧ 수프제조공정:주원료를 고압처리하여 진공농축, 진공건조시킨 다음 각 원료를 혼합하여 포장한다.
⑨ 포장공정:수프를 첨부하여 완제품으로 포장한다.
우리가 아는 ‘라면’ 이름을 한번 열거해 보자. ‘너구리라면, 된장라면, 삼양라면, 쇠고기라면, 신라면, 열라면, 장터라면, 참라면, 해피라면’ 등등 그 수가 엄청나다. ‘라면’ 생산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그 생산량으로만 본다면 단연 우리나라는 ‘라면’의 종주국으로 자처할 만하다.
그러나 ‘라면’은 우리 고유의 음식이 아니라 일본 음식이다. 물론 중국이 원조라는 설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인스턴트(즉석)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일본 라면이 지금의 우리 라면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일본 라면은 면발이 국수보다 더 굵고 국물이 그렇게 맵지 않다. 그래서 맵고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이 라면을 ‘라멘’이라 부른다. ‘라멘’이란 말은 순수 일본어가 아니라 중국어 ‘라미엔(拉麵)’에서 변한 말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어 ‘라멘’은 중국어 차용어가 된다. ‘라미엔(拉麵)’은 면발을 한 줄, 두 줄, 네 줄, 여덟 줄 등의 방식으로 늘려 빼는 방법으로 만든 면을 가리킨다. 이 면을 튀겨 건조시키면 지금의 라면과 유사한 고칼로리 식품이 된다. 일설에 의하면, 중일전쟁 때 중국군이 이 건조된 식품을 전투용 비상식량으로 대용했는데, 그 건조 식품이 중국군 포로를 통해 일본에 전해지면서 비로소 일본에서 라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때 ‘라미엔(拉麵)’이라는 중국어까지 일본어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중국의 ‘라미엔(拉麵)’을 모델 삼아 기름에 튀긴 면을 건조시킨 다음 뜨거운 물에 풀어 먹는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지금과 같은 ‘라면’의 역사가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라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63년이다.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선보이면서 이 땅에서도 라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라면’이라는 먹을거리와 함께 그 이름도 함께 들어왔을 터인데, 일본어 속의 차용어인 ‘라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라면’으로 받아들였다. ‘라면’의 ‘라’는 ‘拉’에 대한 중국식 발음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면, ‘면’은 ‘麵’에 대한 한국식 한자음을 따른 것이다. 따라서 굳이 따진다면 ‘라면’이라는 말은 ‘중국어’와 ‘한자어’가 결합된 어형이 된다. ‘자장면(炸醬麵)’이라는 단어의 조어 구조와 같아서 흥미롭다.
삼양식품이 일본에서 라면을 들여온 이유는 1960년대 당시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에서였다. 그런데 ‘삼양라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오랫동안 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인스턴트 밀가루 식품에 대한 거부감은 어찌 보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라면’이라는 말을 ‘羅綿(나면)’으로 오해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옷감이나 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라면에 대한 오해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라면’이 팔리지 않자, 회사 측에서는 대로변에 점포를 설치하고 조리하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방식으로 홍보 활동을 펼쳤고, 또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즉석에서 시식(試食)을 권하는 방식으로 라면의 맛과 장점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침 1965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혼분식(混粉食) 장려 정책이 나오게 되면서 ‘라면’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달라졌다. 싼값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라면의 최대 강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라면’ 없이는 못 사는 세월이 된 것이다.
그러나 ‘라면’은 우리 고유의 음식이 아니라 일본 음식이다. 물론 중국이 원조라는 설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인스턴트(즉석)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일본 라면이 지금의 우리 라면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일본 라면은 면발이 국수보다 더 굵고 국물이 그렇게 맵지 않다. 그래서 맵고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이 라면을 ‘라멘’이라 부른다. ‘라멘’이란 말은 순수 일본어가 아니라 중국어 ‘라미엔(拉麵)’에서 변한 말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어 ‘라멘’은 중국어 차용어가 된다. ‘라미엔(拉麵)’은 면발을 한 줄, 두 줄, 네 줄, 여덟 줄 등의 방식으로 늘려 빼는 방법으로 만든 면을 가리킨다. 이 면을 튀겨 건조시키면 지금의 라면과 유사한 고칼로리 식품이 된다. 일설에 의하면, 중일전쟁 때 중국군이 이 건조된 식품을 전투용 비상식량으로 대용했는데, 그 건조 식품이 중국군 포로를 통해 일본에 전해지면서 비로소 일본에서 라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때 ‘라미엔(拉麵)’이라는 중국어까지 일본어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중국의 ‘라미엔(拉麵)’을 모델 삼아 기름에 튀긴 면을 건조시킨 다음 뜨거운 물에 풀어 먹는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지금과 같은 ‘라면’의 역사가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라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63년이다.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선보이면서 이 땅에서도 라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라면’이라는 먹을거리와 함께 그 이름도 함께 들어왔을 터인데, 일본어 속의 차용어인 ‘라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라면’으로 받아들였다. ‘라면’의 ‘라’는 ‘拉’에 대한 중국식 발음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면, ‘면’은 ‘麵’에 대한 한국식 한자음을 따른 것이다. 따라서 굳이 따진다면 ‘라면’이라는 말은 ‘중국어’와 ‘한자어’가 결합된 어형이 된다. ‘자장면(炸醬麵)’이라는 단어의 조어 구조와 같아서 흥미롭다.
삼양식품이 일본에서 라면을 들여온 이유는 1960년대 당시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에서였다. 그런데 ‘삼양라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오랫동안 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인스턴트 밀가루 식품에 대한 거부감은 어찌 보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라면’이라는 말을 ‘羅綿(나면)’으로 오해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옷감이나 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라면에 대한 오해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라면’이 팔리지 않자, 회사 측에서는 대로변에 점포를 설치하고 조리하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방식으로 홍보 활동을 펼쳤고, 또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즉석에서 시식(試食)을 권하는 방식으로 라면의 맛과 장점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침 1965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혼분식(混粉食) 장려 정책이 나오게 되면서 ‘라면’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달라졌다. 싼값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라면의 최대 강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라면’ 없이는 못 사는 세월이 된 것이다.
생성시기
일본-1958년 8월 25일
한국-1963년 9월 15일
유래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로, 그는 1958년 8월 25일에 국수를 기름에 튀긴 라면을 개발해냈다.
중국의 건면(乾麵)에서 라면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현재의 라면과는 달랐을 것이다. 안도 모모후쿠가 라면을 개발할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가 매우 흔했는데 일본인들은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 잘 먹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인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 수 없을까 궁리하다가 국수를 기름에 튀겨 국수 속의 수분을 제거하고, 이후 뜨거운 물에 넣으면 국수의 모양을 되찾는 라면을 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9월 15일 일본 기술을 도입한 삼양식품에서 처음 생산했다. 그후 급격히 발달하여 1970년대 중반에는 국내 연간 생산량이 10억 개에 달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종래의 끓여 먹는 제품에서 더운 물만 부으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즉석라면이 등장하여 즉석 식품의 주역이 되었다.
일본-1958년 8월 25일
한국-1963년 9월 15일
유래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로, 그는 1958년 8월 25일에 국수를 기름에 튀긴 라면을 개발해냈다.
중국의 건면(乾麵)에서 라면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현재의 라면과는 달랐을 것이다. 안도 모모후쿠가 라면을 개발할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가 매우 흔했는데 일본인들은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 잘 먹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인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 수 없을까 궁리하다가 국수를 기름에 튀겨 국수 속의 수분을 제거하고, 이후 뜨거운 물에 넣으면 국수의 모양을 되찾는 라면을 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9월 15일 일본 기술을 도입한 삼양식품에서 처음 생산했다. 그후 급격히 발달하여 1970년대 중반에는 국내 연간 생산량이 10억 개에 달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종래의 끓여 먹는 제품에서 더운 물만 부으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즉석라면이 등장하여 즉석 식품의 주역이 되었다.
우리나라 라면시장의 절대강자는 농심(農心)이다. 1985년 라면시장 1위에 오른 후, 그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농심라면의 원조는 롯데라면이다. 롯데라면은 1965년 처음 선보였다. 당시 신춘호(辛春浩) 회장이 이끄는 롯데공업(농심의 전신)이 롯데라면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삼양라면과 함께 인기를 끌다 1974년 농심라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따지고 보면 대표 상품인 신라면의 원조가 롯데라면인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농심이 아니다. 1호 라면은 삼양(三養)라면이다.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15일 처음 나왔다. 삼양라면의 탄생은 전중윤(全仲潤) 삼양식품 회장의 착안에서 비롯됐다. 그는 1960년대 초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그는 무엇보다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을 돌며 시장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특히 일본이 패전 후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눈여겨보았다.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한 경험이 있던 그는 라면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5만 달러를 정부로부터 빌려 일본 묘조식품의 라면 제조 기술 및 기계를 도입했다.
1963년, 드디어 우리나라 토종 1호 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라면 가격은 중량 100g에 10원. 당시 커피 한 잔에 35원, 김치찌개가 3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그러나 초기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밥과 국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라면이 한 끼 식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식품도 생소했다. 라면의 ‘면’을 무슨 섬유나 실의 명칭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1963년, 드디어 우리나라 토종 1호 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라면 가격은 중량 100g에 10원. 당시 커피 한 잔에 35원, 김치찌개가 3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그러나 초기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밥과 국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라면이 한 끼 식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식품도 생소했다. 라면의 ‘면’을 무슨 섬유나 실의 명칭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1965년 때맞춰 나온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은 ‘가뭄 속 단비’였다. 라면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66년 연 240만 개 팔리던 라면은 1969년 1500만 개로 늘어났고, 몇 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300배에 이르는 경이로운 성장세를 보였다. 베트남전 당시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이 3000만 달러였는데, 이 중 9%에 해당하는 270만 달러가 삼양라면을 판 것이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1989년 11월에 ‘우지(牛脂)라면’ 파동이 일어나면서 삼양은 직격탄을 맞았다. 우지, 즉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라면을 튀겼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라면 판매와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1000여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삼양라면은 법정 투쟁에 나서 1997년 8월, 무려 7년 9개월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상처는 씻을 수 없을 만큼 컸다. 결국 절대강자의 위상을 잃어버린 후 한동안 고객들의 외면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1989년 11월에 ‘우지(牛脂)라면’ 파동이 일어나면서 삼양은 직격탄을 맞았다. 우지, 즉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라면을 튀겼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라면 판매와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1000여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삼양라면은 법정 투쟁에 나서 1997년 8월, 무려 7년 9개월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상처는 씻을 수 없을 만큼 컸다. 결국 절대강자의 위상을 잃어버린 후 한동안 고객들의 외면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잘못알고있는점: 6·25전쟁 직후 부모와 집을 잃은 고아들은 미군부대에서 나누어 주는 우유 가루나 라면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곤 했다.
출처& 참고문헌,
건강한 식품선택을 위한 식품라벨 꼼꼼 가이드
doopedia.co.kr
[라면 (두산백과)
[라면 (새로운 일본의 이해, 2005.., )
[라면 - 라면? 라멘? 라미엔?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2009..,)
[농심이 우리나라 라면을 처음 만들었다? (의심 많은 교양인을 위한 상식의 반전 101, 2012..,)
[라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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