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바위, [Ssalbawi],
전국적으로 분포된 설화로는 칠곡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설화 중에서 ‘의견총’, ‘바위고개와 아기장수’, ‘약사절 쌀바위’, ‘좁쌀로 경상감사되다’ 등이 있다.
설화들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절 근처의 바위나 동굴에 있는 쌀이 나오는 구멍을 욕심 많은 중이 망쳤다는 지명유래담에 속하는 설화.
옛날 산속에 있는 어떤 절에 수도승이 상좌와 함께 기거하였다. 절 근처에 있는 바위의 작은 구멍에서 끼니때마다 쌀이 흘러나왔다. 그 양은 언제나 절에 머무는 사람의 수만큼이어서 스님들은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수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와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자, 그 구멍을 넓히면 쌀이 많이 나올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부지깽이로 그 구멍을 쑤셨더니 쌀은 나오지 않고 핏물이 나왔다. 지금도 그 구멍에서는 물만 나온다.
변이
문헌설화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전하고 있으며, 구비설화는 전국에 걸쳐 전승되는 대표적인 광포설화의 하나이다. 쌀 나오는 구멍이 있는 장소는 동굴 속이거나 절의 부엌 한쪽으로 이야기되며, 구멍 속에 쌀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욕심내어 쌀 나오는 구멍을 쑤신 사람은 스님이나 수도하는 일반인이다. 구멍을 쑤셔 망친 이유는 스님이 없을 때 상좌승이 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거나 떡을 해 먹고 싶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쌀이 나오는 양이 한 사람분이므로 수도하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이면 범이 와서 물어 간다는 설화도 있다. 구멍이 망쳐졌을 때 주로 물이나 피가 나오지만 까투리가 나왔다는 예도 있다.
분석
구멍에서 쌀이 저절로 나온 것은 수도승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마련하여 수도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수도하는 스님은 세상의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설화에서 스님은 쌀을 더 얻으려 물욕을 냈으므로 그 벌로 쌀 나오는 구멍이 파괴되었다. 이 전설은 영웅이나 장군의 탄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암석에서 많이 보인다. 그리고 <술 나오는 샘[酒川]> 설화와 비교된다. 자연물에 인공적인 노력을 가해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인 술이나 쌀이 저절로 나온다는 점, 욕심을 부려 샘이나 구멍을 망쳤다는 점에서 관련이 있다. 이 설화는 과욕에 대한 징계를 자연물의 파괴로 나타내어, 천벌이라는 우리 민족의 소박하지만 엄격한 윤리의식을 잘 반영한다.
의의
이 설화는 자연이 준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제하고 만족해야 하는데,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조차 망쳐 버린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다. 소중한 보물들을 함부로 대할 때 가치가 없어지고 손해를 입는다는 충고이다. 노력하지 않고 큰 것을 얻기 위해 욕심만 부린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 행복하기 원한다면 순수한 소원을 달성하였을 때 신이나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기적에 감사하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줄 알고 노력해야 한다. 즉, 욕심을 경계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제시한다.
서울특별시,
구분/ 위치/ 유래
자연명 > 바위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쌀이 나왔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됨.
성북구 성북동 숙정문 밖에 있었다는 바위로서, 아침 · 점심 · 저녁 세 차례에 걸쳐 한 되 가량의 쌀이 나왔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바위를 발견한 나무꾼 노인이 이 쌀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점점 욕심이 생겨 쌀 바위에 지키고 앉아 나온 쌀을 담고 또 기다렸다가 쌀이 나오면 또 담아 자루에 가득 채워 돌아오기를 한 달간 계속하던 어느 날 쌀이 나오던 바위틈에는 끈적한 물이 흘러나오고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미암이라고도 하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구분/ 위치
자연지명 > 바위 |
충청남도 공주시 |
충청남도 공주시의 우성면 봉현리(鳳峴里)에 있는 바위이다. 지명은 쌀이 나오던 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먼 옛날 가뭄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 어느 노승이 와서 '저 산 위에 있는 바위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한 후, 쌀 나오라고 말하면 쌀이 나올 것인즉,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을 만큼 쌀을 갖다 먹고 사시오'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주민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산에 올라 바위를 향해 '쌀 좀 주십시오'하고 정성을 드리니 그야말로 신기할 정도로 쌀이 나와 굶주린 배를 채우며 살았다. 하루는 이 동네의 욕심 많은 한 사람이 사람들 몰래 산으로 올라가 지팡이로 쌀이 나오는 곳을 콕콕 찌르며 많아 나오라고 하자 이상하게도 나오던 쌀이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 그 누가 가서 정성을 드려 기도해도 쌀이 나오지 아니 하였다."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청빈(淸貧)형
연관/ 목차
갈래 : 전설
시대 : 시대미상
신분 : 승려
지역 : 기호
출처 : 김균태 (146)
내용 :
미암사라는 절이 있다. 쌀 ‘미’자에 바위 ‘암’자라 하여 바위에서 쌀이 나온 절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이 절에 중이 하나 와서 살았다. 중은 밤이나 낮이나 잠도 안자며 공부를 하였다. 때가 되면 내려와 마을에서 얻어먹고 다시 공부만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보기에 중이 하루 안 오더니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안 오기에 굶어 죽었나싶어 장정 몇이 산으로 올라갔다. 장정들이 올라가서 봉우리에서 보니 중이 지팡이를 들고 바위로 가더니 지팡이로 구멍을 뒤적이니 구멍에서 쌀이 쏟아져 나왔다. 지켜보던 장정들은 굶어 죽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내려갔는데 한 사람이 남아서 몰래 절로 들어갔다. 중이 잠드니 몰래 다가가 지팡이를 훔쳐 구멍을 뒤적였다. 그러니 쌀이 넘치게 쏟아져 중이 죽고 쌀이 굳어서 쌀바위가 되었다. 이는 보살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 기특하여 단장을 내려준 것이나 마을의 욕심 많은 사람 때문에 해를 입은 것이었다.
시대 : 시대미상
신분 : 승려
지역 : 기호
출처 : 김균태 (146)
내용 :
미암사라는 절이 있다. 쌀 ‘미’자에 바위 ‘암’자라 하여 바위에서 쌀이 나온 절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이 절에 중이 하나 와서 살았다. 중은 밤이나 낮이나 잠도 안자며 공부를 하였다. 때가 되면 내려와 마을에서 얻어먹고 다시 공부만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보기에 중이 하루 안 오더니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안 오기에 굶어 죽었나싶어 장정 몇이 산으로 올라갔다. 장정들이 올라가서 봉우리에서 보니 중이 지팡이를 들고 바위로 가더니 지팡이로 구멍을 뒤적이니 구멍에서 쌀이 쏟아져 나왔다. 지켜보던 장정들은 굶어 죽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내려갔는데 한 사람이 남아서 몰래 절로 들어갔다. 중이 잠드니 몰래 다가가 지팡이를 훔쳐 구멍을 뒤적였다. 그러니 쌀이 넘치게 쏟아져 중이 죽고 쌀이 굳어서 쌀바위가 되었다. 이는 보살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 기특하여 단장을 내려준 것이나 마을의 욕심 많은 사람 때문에 해를 입은 것이었다.
부여 저동리 쌀바위, [ 夫餘苧洞里─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內山面) 저동리(苧洞里)에 있는 바위.
지정/ 종목/ 지정번호/ 지정일/ 시대/
문화재자료 |
충남문화재자료 제371호 |
2000년 01월 11일 |
백제 |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71호로 지정되었다. 저동리의 미암사(米岩寺) 내에 있는 바위로, 그 형태를 비유하여 음겨석·촛대바위·부처바위라고도 한다. 미암사는 백제시대에 지어진 절로, 미암사라는 이름은 쌀바위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미암사'와 '쌀바위'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대를 이을 손자를 얻기 원하는 한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날마다 미암사에 찾아가 정성껏 불공을 드렸는데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집에 쌀이 떨어진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현몽하여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호리병에서 쌀 세 톨을 꺼내 바위에 심으면 하루 세 끼 먹을 쌀이 나올 것이니, 매끼니를 지을 때 이 쌀을 가져다 짓도록 하라"고 하였다.
노파가 정신을 차리자 바위에서 진짜 쌀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얼마 후에는 그토록 바라던 손자도 얻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긴 노파는 쌀을 더 많이 얻고 싶어서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벼팠다. 그러자 쌀이 나오기는커녕 구멍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주변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지명 유래담의 하나로 ‘쌀바위설화’·‘미혈설화(米穴說話)’라고도 한다. 문헌설화는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해지고 있으며, 구전으로는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대표적인 설화의 하나이다.
옛날 어떤 산속에 절이 있었다. 절 근처에 있는 바위의 구멍에서는 끼니때마다 쌀이 흘러나왔는데, 그 양은 언제나 그 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수만큼만 나왔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은 양식 걱정 없이 수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어느 때 그 절에 있던 한 스님이 그 구멍 속에는 많은 양의 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욕심을 내어 구멍을 쑤셔 대었더니 그 뒤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게 되었다.
이 쌀 나오는 구멍이 위치한 장소는 각 편에 따라 동굴 속이거나 절의 부엌 한쪽으로 이야기되며, 구멍을 망치게 된 이유로는 스님의 부재시 상좌승이 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거나 떡을 해 먹고 싶어서였다고도 이야기된다.
쌀이 나오는 양이 한 사람 분이므로 수도하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이면 범이 와서 물어간다는 각 편도 있다. 구멍이 망쳐지면 물이 나오다가 피가 나오기도 하고, 까투리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쌀이 구멍에서 저절로 나온다는 것은 수도승에게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마련해 주어 수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로 볼 수 있다. 수도승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벗어나야 하는데, 이 설화의 중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물욕을 내어 쌀을 더 얻으려 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징벌로 쌀 나오는 구멍이 파괴되는 것이다.
이 설화는 「술 나오는 샘 설화[酒泉說話]」와 비교된다. 자연물에서 인공적인 노력을 가해야 얻어질 수 있는 물건인 술이나 쌀이 저절로 나온다는 점이나, 욕심을 부려 끝내 그 샘이나 구멍을 망쳐 버린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설화는 과욕에 대한 징계를 자연물의 파괴로 나타냄으로써, 그것이 하늘의 벌이라는 우리 민족의 소박하나 엄격한 윤리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쌀 뒤주설화
이칭/ 별칭/ 유형/ 성격/ 작가/
미궤설화 |
작품 |
설화 |
미상 |
남편이 있는 여자와 간통하려던 남자가 본남편을 피하여 쌀뒤주에 숨었다가 망신당하였다는 내용의 설화.
‘미궤설화(米櫃說話)’라고도 한다. 풍자적인 성격을 지닌 소화(笑話)에 속한다. 문헌설화로는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차관출궤수라단(差官出櫃羞裸袒)」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구전설화는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경주에 도임해온 관리 가운데 기생을 더럽게 여기고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원님이 밉게 여기고 그를 유혹하여 창피를 줄 수 있는 기생이 있다면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한 기생이 자청하고 나섰다. 기생은 여염집 여자로 꾸며 계략을 써서 관리를 유혹하고는 자기 집으로 오게 하였다. 주연을 파하고 동침하려는데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찾아오자 여자는 당황한 척하면서 관리를 뒤주에 숨겼다.
남편은 현재 별거중이지만 자기 소유물인 뒤주를 가지러 왔다면서 운반해 가려고 하였다. 기생이 강하게 반대하자 결국 원님에게 가서 판결을 받기로 하였다. 원님은 싸우지 말고 톱으로 뒤주를 나눈 뒤 한 쪽씩 가져가라고 하면서 톱을 가져오게 하였다. 톱질하는 소리가 들리자 뒤주 속의 관리는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놀란 사람들이 뒤주를 열어 보니 벌거벗은 관리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많은 사람 앞에서 큰 망신을 당하였다.
구전설화는 문헌설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관리가 아니라 중으로 나타나고, 사건 전개도 기생의 계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장사꾼인 남편이 출타 중에 있었던 아내와 중의 간통으로 설정된다. 숨어서 사실을 확인한 남편이 일부러 뒤주를 버리러 간다면서 절 근처에 가서는 상좌에게 큰돈을 받고 팔아서 부자가 된 것으로 끝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부가 공모하여 중의 재산을 빼앗는 변이형도 보인다.
문헌설화가 양반의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해학과 풍자를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 구전설화는 남편의 너그러운 마음씨와 지혜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결말에 이른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설화는 「말하는 쌀자루설화」와 비슷한 것이지만, 간통에 대한 응징의 의미가 보다 약화되거나 변모되어 나타난다. 특히, 문헌설화의 경우 경화(硬化)된 규범적 윤리관에 대한 풍자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고 있다. 이런 점은 소설 「배비장전」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된다.
대흥사 성도암 쌀나오는 구멍,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사찰전설 |
• 주제 : 사찰전설
• 국가 : 한국
• 지역 : 전라도
성도암에는 바위틈에서 한두 방울씩 흘러나오는 약수가 있다. 이 물을 모아서 현재 성도암의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데, 석간수이기 때문에 받아서 1년을 저수해도 변질되거나 이끼가 끼지 않는다. 그런데 원래 이 물구멍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고, 성도암에 살고 있는 한 스님이 그날그날 먹을 수 있는 분량만큼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바깥에서 손님이 왔는데, 손님을 접대하자니 1인분의 쌀로는 부족하여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구멍을 후볐더니, 그때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하얀 물만 나왔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 뜨물이 맑은 물이 되어 지금의 석간수가 되었다고 한다.
• 국가 : 한국
• 지역 : 전라도
성도암에는 바위틈에서 한두 방울씩 흘러나오는 약수가 있다. 이 물을 모아서 현재 성도암의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데, 석간수이기 때문에 받아서 1년을 저수해도 변질되거나 이끼가 끼지 않는다. 그런데 원래 이 물구멍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고, 성도암에 살고 있는 한 스님이 그날그날 먹을 수 있는 분량만큼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바깥에서 손님이 왔는데, 손님을 접대하자니 1인분의 쌀로는 부족하여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구멍을 후볐더니, 그때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하얀 물만 나왔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 뜨물이 맑은 물이 되어 지금의 석간수가 되었다고 한다.
영남알프스 산맥 중 하나인 가지산 에 자리 잡은 쌀바위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지리/자연 지리 |
지명/자연 지명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
현대/현대 |
디지털울산문화대전-쌀바위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있는 쌀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칭 유래
쌀바위는 옛날에 이 바위에서 쌀이 한 알씩 계속 나왔다고 하여 유래한 명칭이며, 미암(米巖)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자연환경
영남알프스 산맥 중 하나인 가지산(迦智山) 산맥의 해발 1,109m 지점에 솟아 있는 바위이다. 쌀바위 위에 서면 여러 산봉우리들을 두루 관망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운문산, 북쪽에 고헌산(高獻山)과 문복산, 동쪽의 천황산(天皇山), 남쪽의 간월산(肝月山), 신불산(神佛山), 취서산까지 멀리 능선이 뻗어 영남알프스 산맥을 이루고 있다. 동해안을 끼고 남으로 뻗어 가는 백두대간의 여맥은 영남 땅에서 힘껏 솟구쳐서 7개의 거대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산맥 중 하나인 가지산 산맥에 자리 잡은 쌀바위의 주변으로 여러 미담이 있는 바위들이 나란히 하고 있다. 베틀 같은 베틀바위, 딴청을 부리고 있는 딴바위 등이 쌀바위와 함께 가지산을 찾는 산행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가지산 쌀바위 전설」은 수도승이 바위에서 나오는 쌀을 발견하고, 빨리 많은 양의 쌀이 나오게 바위틈을 크게 뚫자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허욕담이다. 이를 「가지산 쌀바위」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4년 8월 1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연구실에서 조사 의뢰한 정상박·김현수 등이 울산시[현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주민 김석보[남, 57]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이는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12의 128~129쪽에 「가지산(伽智山) 쌀바위」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1996년 울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울산의 전설과 민요』의 178~179쪽에도 「가지산 쌀바위」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내용
상북면의 가지산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약 1㎞ 떨어진 능선에 쌀바위[米岩], 또는 살바위[矢岩]로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 쌀바위는 언양현과 청도의 경계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청도와 언양의 의병들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화살을 쏘았다고 하여 ‘살바위’라고도 한다.
옛날에 수도승 한 사람이 쌀바위 아래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마다 한 번씩 마을로 내려가 동냥을 하여 오는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고행하는 수도승을 가엾게 여긴 것인지 기적이 일어났다. 수도승이 염불을 외우다 바위틈을 문득 보니 쌀이 소복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도 이날부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매일 바위틈에서 물방울처럼 흘러나왔다. 그 후부터 그 중은 먼 산길을 내려가 목탁을 치며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다.
옛날에 수도승 한 사람이 쌀바위 아래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마다 한 번씩 마을로 내려가 동냥을 하여 오는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고행하는 수도승을 가엾게 여긴 것인지 기적이 일어났다. 수도승이 염불을 외우다 바위틈을 문득 보니 쌀이 소복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도 이날부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매일 바위틈에서 물방울처럼 흘러나왔다. 그 후부터 그 중은 먼 산길을 내려가 목탁을 치며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수도승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쌀이 저렇게 답답하게 조금씩 나오는 것을 갑갑하게 여긴 수도승은 많은 양의 쌀이 나오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수도승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쇠꼬챙이를 넣어 그 바위틈을 크게 뚫었다. 그는 많은 쌀로 큰 암자를 짓고 출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그 후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똑똑 흘러나왔다. 이후 세상 사람들은 쌀이 나오지 않는 이 바위를 ‘쌀바위’라 하였다.
모티브 분석
「가지산 쌀바위 전설」의 주요 모티브는 ‘쌀 나오는 구멍[미혈]’이다. 이러한 유형의 전설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쌀바위에서 나오는 쌀의 양은 보통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정도로 극히 적은 것이 공통적이다. 적은 양의 쌀에 불만을 가진 인물이 구멍을 더 키우려고 하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되면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 역시 대동소이하다. 쌀바위 전설은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설화로 불교의 절제, 절약 정신과 통하는 바가 커 사찰의 승려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쌀이 그친 후 석간수가 나오는데, 그 양도 많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어 절제의 교훈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석남사 가자산과 쌀바위 전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사찰전설 |
• 주제 : 사찰전설
• 국가 : 한국
• 지역 : 경상도
•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
가지산(加智山) 석남사 정상에는 쌀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 국가 : 한국
• 지역 : 경상도
•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
가지산(加智山) 석남사 정상에는 쌀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어느 옛날의 일이다. 쌀바위 밑 조그마한 암자에 한 스님이 불경을 외우며 열심히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은 며칠마다 한번씩 마을로 내려가서 동냥을 하며 연명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이 염불을 하다가 바위틈을 보니 쌀이 소복이 쌓여 있어 누군가 시주한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다음날, 그 다음날도 끊이지 않고 매일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쌀이 바위틈에서 물방울 흐르듯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스님은 마을로 내려가서 힘들게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스님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쌀이 물방울처럼 매일 한 명이 먹을 만큼만 답답하게 흘러나오니, 구멍을 더 크게 내면 많은 쌀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여 쌀 나오는 구멍을 크게 뚫어놓고 다음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 바위에서는 쌀은 간 곳이 없고 물만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라 생각하여 더욱 정진에만 힘쓰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米岩)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쌀바위 이야기는 전국의 여러 사찰에 전하는데, 사람들에게 분수를 지킬 것과 욕심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기 위한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이야기라 하겠다.
그 날 이후 스님은 마을로 내려가서 힘들게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스님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쌀이 물방울처럼 매일 한 명이 먹을 만큼만 답답하게 흘러나오니, 구멍을 더 크게 내면 많은 쌀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여 쌀 나오는 구멍을 크게 뚫어놓고 다음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 바위에서는 쌀은 간 곳이 없고 물만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라 생각하여 더욱 정진에만 힘쓰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米岩)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쌀바위 이야기는 전국의 여러 사찰에 전하는데, 사람들에게 분수를 지킬 것과 욕심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기 위한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이야기라 하겠다.
가지산 도립공원(밀양)
분류/ 위치/ 출처/ 원문보기/
자연 &; 자연관광지 &; 도립공원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
대한민국구석구석 원문보기 |
* 산세의 아름다움과 사찰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 가지산도립공원(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울산시 울주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가지산(높이 1,240m)은 서남쪽으로 1,189m의 천황산과 이웃해서 태백산맥과 나란히 남단으로 매듭져 있다. 특히, 쌀바위에서 산 위를 잇는 능선 일대가 바위벽과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온갖 형태의 바위, 석남사, 얼음골, 폭포들이 어울려 영남에서 으뜸가는 산으로 꼽히고 있다. 가지산에는 곳곳에 바위봉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능선을 따라 갈 수 있다. 가을이면 석남고개에서 정상에 이르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기암괴석과 쌀바위는 등산객의 눈길을 이끈다.
* 가지산도립공원의 세 가지 지구 *
가지산 도립공원은 각각 통도사(通度寺) ·내원사(內院寺) ·석남사(石南寺) 등의 사찰을 기준으로 통도사지구 ·내원사지구 ·석남사지구로 나뉘어 각각 독립된 지구를 이룬다. 통도사지구는 통도사를 기준으로 영취산 일대 지구를 말한다. 통도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한국 3대 거찰(巨刹)의 하나이다. 영취산 일대에는 통도사에 딸린 12개의 암자가 산재하며 비로폭포가 있다. 숙박 ·위락시설을 갖춘 종합국민휴양지로 개발하고 있다.내원사지구는 천성산 ·원효산이 이루는 지구로 자연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내원사는 통도사의 말사(末寺)인 여승(女僧)의 절로 경내에 사적 2점이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울산시 울주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가지산(높이 1,240m)은 서남쪽으로 1,189m의 천황산과 이웃해서 태백산맥과 나란히 남단으로 매듭져 있다. 특히, 쌀바위에서 산 위를 잇는 능선 일대가 바위벽과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온갖 형태의 바위, 석남사, 얼음골, 폭포들이 어울려 영남에서 으뜸가는 산으로 꼽히고 있다. 가지산에는 곳곳에 바위봉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능선을 따라 갈 수 있다. 가을이면 석남고개에서 정상에 이르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기암괴석과 쌀바위는 등산객의 눈길을 이끈다.
* 가지산도립공원의 세 가지 지구 *
가지산 도립공원은 각각 통도사(通度寺) ·내원사(內院寺) ·석남사(石南寺) 등의 사찰을 기준으로 통도사지구 ·내원사지구 ·석남사지구로 나뉘어 각각 독립된 지구를 이룬다. 통도사지구는 통도사를 기준으로 영취산 일대 지구를 말한다. 통도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한국 3대 거찰(巨刹)의 하나이다. 영취산 일대에는 통도사에 딸린 12개의 암자가 산재하며 비로폭포가 있다. 숙박 ·위락시설을 갖춘 종합국민휴양지로 개발하고 있다.내원사지구는 천성산 ·원효산이 이루는 지구로 자연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내원사는 통도사의 말사(末寺)인 여승(女僧)의 절로 경내에 사적 2점이 있다.
원효산은 그 정상부에서 동해를 조망하기 좋은 산으로, 산중에 유서 깊은 원효암과 홍룡사(虹龍寺) 등이 있고, 특히 그 남서쪽 계곡에 있는 홍룡폭포는 이름난 명소로 그 경관이 뛰어나며, 계곡 입구에는 주변 조망이 훌륭한 가홍정(駕紅亭)이 있다. 석남사지구 가지산은 경북 청도군과 울산 울주군 및 경남 밀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준봉으로 밀양강(密陽江)의 발원지이며 남쪽으로 천황산(天皇山:1,189m)과 이웃한다.
이 산 남쪽의 밀양강 상류를 이루는 산내천(山內川) 하곡부에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氷谷]이 있고, 산중의 홍류폭포(紅流爆布)는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석남사는 가지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로, 석남사 부도(浮屠:보물 369),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22) 등이 있고, 단풍 ·노송 등 수림경관이 훌륭하다.
* 가지산(1,240m)
* 영취산(靈鷲山:1,059m)
* 원효산(元曉山:922m)
* 천성산(千聖山:812m)
* 통도사(通度寺)
* 내원사(內院寺)
* 석남사(石南寺)
* 가지산(1,240m)
* 영취산(靈鷲山:1,059m)
* 원효산(元曉山:922m)
* 천성산(千聖山:812m)
* 통도사(通度寺)
* 내원사(內院寺)
* 석남사(石南寺)
이용안내
쉬는날
※ 기상여건에 따라 통제 가능
문의및안내
산림녹지과 055-359-5357
상세정보
등산로
[울산]
1코스 : 운문령 - 귀바위 - 쌀바위 - 정상
2코스 : 석남터널 - 가지산 중봉 - 정상
3코스 : 석남사주차장 - 석남고개 - 가지산 중봉 - 정상
[밀양]
1코스 : 석남터널 - 가지산 중봉 - 정상
2코스 : 호박소 - 석남고개 - 가지산 중봉 - 정상
[청도]
1코스 : 운문령 - 귀바위 - 쌀바위 - 정상
2코스 : 운문사 - 사리암주차장 - 심심게곡 - 아랫재 - 정상 (현재 자연휴식년제로 통제)
3코스 : 운문사 - 사리암주차장 - 학소대폭포 - 정 상 (현재 자연휴식년제로 통제)
1코스 : 운문령 - 귀바위 - 쌀바위 -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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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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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1코스 : 운문령 - 귀바위 - 쌀바위 - 정상
2코스 : 운문사 - 사리암주차장 - 심심게곡 - 아랫재 - 정상 (현재 자연휴식년제로 통제)
3코스 : 운문사 - 사리암주차장 - 학소대폭포 - 정 상 (현재 자연휴식년제로 통제)
금정구 미륵암 쌀바위ㅡ [ 金井區彌勒岩- ]
분야/ 유형/ 지역/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부산광역시 금정구 |
디지털부산문화대전-「금정구 미륵암 쌀바위」 |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미륵암 쌀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정구 미륵암 쌀바위」는 쌀이 나오는 구멍에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하여 사미승이 막대기로 쑤시는 바람에 더 이상의 쌀을 얻지 못했다는 미혈(米穴)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5년 9월 1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발행한 『그 사연이 숨 쉬는 금정 이야기』의 30~32쪽에 「미륵암 쌀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밝히지 않았다. 미륵암의 연기 설화와 쌀바위 설화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내용
미륵암 산신각의 왼쪽에 용굴이 하나 있다. 이 용굴은 원래 쌀이 나오는 쌀바위였다. 암자의 스님이 아침에 일어나 이곳에 가면 하루에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와 스님의 양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의 사미승이 쌀이 나오는 양이 적은 것에 불만을 가져 막대기로 쌀이 나오는 구멍을 쑤신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게 되었다.
모티브 분석
「금정구 미륵암 쌀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쌀 나오는 구멍[미혈]’이다. 쌀바위 전설, 미혈 전설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야기이다. 쌀바위에서 나오는 쌀의 양은 보통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정도의 양 정도로 극히 적은 것이 공통적이다. 적은 양의 쌀에 불만을 가진 인물이 구멍을 더 키우려고 하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되면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 역시 대동소이하다. 쌀바위 전설은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설화로 불교의 절제, 절약 정신과 통하는 바가 커 사찰의 스님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금정구 미륵암 쌀 바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쌀이 그친 후 석간수가 나오는데, 그 양도 많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어 절제의 교훈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범어사 미륵암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 미륵암의 전경이다. 미륵봉이 사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염화전, 미륵전, 오백전, 칠성각, 독성각, 요사채 등이 자리하고 있다. 본각 우측 칠성전 오르는 중간 좌측에 있음니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촬영: )
대성암 쌀바위, [ 大聖庵- ]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구비 전승·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경기도 구리시 |
현대/현대 |
디지털구리문화대전-「대성암 쌀바위」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대성암[범굴사] 쌀바위와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경기도 구리시 소재 대성암[범굴사]에는 쌀바위가 있었는데, 날마다 사람 수에 따라 조금씩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욕심 많은 사람이 쌀을 더 많이 얻으려고 바위에 구멍을 뚫고 깨뜨리자 물만 나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채록/수집 상황
「대성암 쌀바위」는 민속학자인 이수자[전 중앙 대학교 교수]가 『구리시지』 집필에 필요한 자료 조사를 위해 1995년 3월 4일에 구리시 토평동 제2 경로당에서 정석순[여, 73세]과 이종숙[여, 65세]에게서 채록하여 『구리시지』에 수록하였다. 그 밖의 자료로는 임병혁이 1997년 12월 23일 인창동 대우 다방에서 이성근[남, 1917년생]에게 채록한 것으로 『설화집』2에 수록되어 있다. 또 『구리시의 민속 문화』에도 2000년 10월 16일에 이성근[남, 1917년생]에게서 채록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고, 강진옥 외 3인이 2014년에 채록한 내용은 추후에 『증보 한국 구비 문학 대계』(경기도 구리시 편)에 수록될 예정이다.
내용
옛날 대성암[범굴사]에는 사람 수대로 쌀이 나오는 바위가 있었다. 대성암[범굴사] 공양주 보살이 쌀 받을 그릇을 갖다 놓으면 쌀바위에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사람 수만큼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또는 스님]이 한꺼번에 많은 쌀을 얻을 욕심으로 바위를 두드려 깼는데, 쌀은 나오지 않고 허연 쌀뜨물만 쏟아져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때 쌀바위를 깬 사람은 쌀뜨물을 맞고 눈이 멀었다고 하고,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암자 뒤에 있는 검은 바위의 하얀 부분이 그때 쏟아져 나왔던 쌀뜨물이 말라붙은 자리라고 한다.
「대성암 쌀바위」는 인간이 욕심 때문에 쌀이 나오던 구멍이 파괴되었다는 금기 모티프가 있다.
약사절 쌀바위, [ 藥師 ]
분야/ 유형/ 지역/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
디지털칠곡문화대전-「약사절 쌀바위」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전해오는 약사절과 관련된 이야기.
‘쌀바위’ 설화, ‘미혈(米穴)’ 설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야기이다. 욕심을 너무 부리면 끝내 자연물에 의해 파괴된다는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가 채록하여 1994년 발행된 『금오산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칠곡군 북삼읍 금오산에는 약사절이 있다. 거기에는 바위가 하나 서 있는데, 바위의 구멍에서는 매일 스님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님은 쌀에 대해 욕심이 커지게 되었다. 어느 날 스님은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쌀이 나오는 구멍을 크게 뚫었다. 그러자 더 많은 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톨의 쌀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모티브 분석
이야기의 모티프는 쌀이 나오는 구멍에 욕심이 생긴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구멍에 손을 대는 바람에 더 이상의 쌀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진산의 쌀바위, [ -山- ]
분야/ 유형/ 지역/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
디지털서산문화대전-「삼진산의 쌀바위」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서 쌀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150~152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3일 충청남도 서산군 고북면 장요리 [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명창동[남, 54], 이채순[여, 60] 등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삼진산이 있는데 천 년 전에는 ‘삼진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의 뒤에는 벼락바위라는 쌀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틈에서 쌀이 쏟아져 나왔다. 암자의 승려는 매 때마다 바위틈으로부터 나오는 쌀을 받아 공양을 지어 먹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절에 손님이 찾아와 역시 쌀을 받으러 바위에 갔는데, 바위에서는 여느 날처럼 한 사람 분의 쌀만 나왔다. 그래서 승려가 부지깽이를 가지고 바위로 가 쌀을 더 많이 꺼내려 바위틈을 쑤셔댔다. 그러자 바위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세월이 흘러 그 피가 물이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물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약수라 하여 귀하게 여긴다. 한편, 이 암자에는 오층탑이 있었다 하는데, 현재 이 오층탑은 염암산 중턱의 천장사로 이전하여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그 피가 물이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물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약수라 하여 귀하게 여긴다. 한편, 이 암자에는 오층탑이 있었다 하는데, 현재 이 오층탑은 염암산 중턱의 천장사로 이전하여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삼진산의 쌀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허욕, 폐사 등이다. 쌀바위 전설은 전국적으로 폭넓게 분포해 있다. 대개 절의 이웃에 쌀바위가 위치하고, 이 바위로부터 나오는 쌀로 암자가 유지된다는 이야기 구조를 취한다. 그런데 해당 절의 승려가 욕심을 부려 보다 많은 쌀을 얻으려다 바위가 망가지고, 또한 그로 인해 사찰은 폐사가 된다는 내용이다. 요컨대 인간의 과욕으로 인해 모든 것을 상실한다는 귀결을 보인다.
용덕리 쌀바위 전설, [ -龍德里-傳說- ]
분야/ 유형/ 지역/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
디지털진안문화대전-「용덕리 쌀바위 전설」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전해지는 쌀 나오는 바위에 관한 이야기.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전해오는 「용덕리 쌀바위 전설」은 절의 주지승이 쌀이 나오는 바위에 대한 호기심과 많은 쌀을 빨리 얻으려는 욕심에 쌀 나오는 구멍을 뚫으려다 오히려 바위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호기심과 허욕을 경계한 이 이야기는 전국에 광포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용덕리 쌀바위 전설」은 진안군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쉽게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한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2004] 용덕리 항목에 실려 있다.
내용
주천면 읍내에서 용덕리 방향으로 가는 길 오른쪽 건너편에 쌀바위라는 하얀 바위가 있다. 옛날에 이 바위 뒤쪽에는 큰 절이 있었는데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맹수들도 자주 출몰하였다. 때문에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 점차 인적이 끊어지면서 폐사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마침내 주지승도 절을 떠나기로 하고 마지막 남은 쌀로 저녁밥을 지어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날이 새면 절 뒤의 바위 아래로 가보라고 하였다. 이튿날 꿈속에서 들었던 그곳에 가보니 한 사람이 하루 먹을 만큼의 쌀이 있었고 매일 그렇게 쌀이 하루 먹을 만큼씩 놓여 있었다. 주지승은 부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불도에 전념하였다.
절에 손님이 와서 자고 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손님 숫자만큼의 쌀이 바위 아래에 더 놓여 있어서 스님은 이제 더 이상 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양식 걱정이 없어지자 절을 떠났던 중들도 하나둘 되돌아오고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절이 번창해가자 주지승은 기쁘기는 하였지만 매일 바위의 어디에서 어떻게 쌀이 나오는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어느 날 밤에 주지승은 몸을 숨기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쌀이 나오는지 바위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깜빡 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이미 먼동이 터 있고 옷자락에는 하루 먹을 만큼의 쌀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주지승은 다음날 다시 바위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자정이 되자 벼랑 중간에서 바위 하나가 움찔움찔 하더니 구멍이 뚫리며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구멍이 막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상태로 되었다.
주지승은 며칠 밤을 새며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욕심이 생겼다. ‘저 구멍을 닫히지 않도록 한다면 쌀이 계속 나오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튼튼한 장대 하나를 준비하여 바위 밑으로 가져갔다. 마침내 자정이 되어 바위 구멍이 뚫리자 주지승은 재빨리 장대를 바위 구멍에 넣어 바위가 닫히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처럼 쌀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았고 장대를 붙잡고 있던 스님이 오히려 그 구멍 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말았다. 흰색이라서 멀리서도 알 수 있는 이 바위를 쌀바위라고 부른 것은 이런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주지승은 며칠 밤을 새며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욕심이 생겼다. ‘저 구멍을 닫히지 않도록 한다면 쌀이 계속 나오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튼튼한 장대 하나를 준비하여 바위 밑으로 가져갔다. 마침내 자정이 되어 바위 구멍이 뚫리자 주지승은 재빨리 장대를 바위 구멍에 넣어 바위가 닫히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처럼 쌀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았고 장대를 붙잡고 있던 스님이 오히려 그 구멍 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말았다. 흰색이라서 멀리서도 알 수 있는 이 바위를 쌀바위라고 부른 것은 이런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모티브 분석
「용덕리 쌀바위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쌀 나오는 바위’와 ‘과욕의 경계’이다. ‘쌀바위 전설’ 또는 ‘미혈 설화(米穴說話)’라고 하는 이 설화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주지승은 쌀 나오는 구멍에서 한꺼번에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쌀을 얻기는커녕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다가 그런 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큰 것을 얻으려고 과욕을 부리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하는 이 설화는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 자연의 혜택과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교훈을 제시한다. ‘쌀바위 전설’의 경우 설화의 상관물이 대개 지역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용덕리 쌀바위 전설」에서는 주천면 용덕리에서 멀리 보이는 하얀 바위가 그것이다.
불일폭포 용추의 쌀바위, [ 佛日瀑布龍湫- ]
분야/ 유형/ 지역/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
디지털하동문화대전-「불일폭포 용추의 쌀바위」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서 불일폭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불일폭포 용추의 쌀바위」는 불일암(佛日庵)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바위에서 나오는 쌀을 발견하게 되고, 빨리 부자가 될 욕심에 구멍을 인위적으로 넓혀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허욕담이다. 이를 「용추 쌀바위」, 「용추 쌀바위 전설」 등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8-14에 「불일암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는 1984년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주민 김개봉[남, 70]에게서 채록한 것인데, 그 내용이 소략하다. 또한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에 내용이 상세히 실려 있다.
내용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하동의 명소이다. 폭포의 모습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하며, 폭포수 옆으로는 1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절벽이 있다. 절벽 끝에는 신라 말기 진감국사가 창건한 불일암이라고 하는 작은 암자가 있다. 또한 폭포 밑에는 용소(龍沼)가 있어 자연의 신비를 더해 준다.
이곳에 ‘용추 쌀 바위’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아득한 옛날 불일폭포가 생기기 전 용소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용소 옆 불일암에는 한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뇌성이 치고 벼락이 나무를 때리며 무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용소에서는 이무기가 용이 되어 푸른빛을 발하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비가 마구 쏟아졌다. 이윽고 비가 그치고 뇌성도 잠잠해지자 불일암 스님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밖을 둘러보니 이제까지 용소 옆에 하나로 서 있던 산은 두 개로 갈라졌고,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없어지고 깎아지른 절벽이 생겨 물이 폭포가 되어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이 절벽을 내려가 보니 절벽 밑으로는 새로 물길이 나 있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절벽에는 큰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님은 이는 분명 부처님의 자비가 내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쌀을 암자로 옮겼다.
그 다음 날 스님은 다시 그 절벽의 뚫어진 구멍으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그 구멍에서는 또 쌀이 나와 있었다. 구멍에서 이렇게 계속해서 쌀이 나오게 되자 스님은 이 쌀을 화개장터에 내다 팔기로 했다. 스님은 그 후부터 하루는 쌀을 구멍에서 옮기고 다음 날은 그 쌀을 장터에 내다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터의 쌀을 사는 아주머니가 “스님! 쌀을 이렇게 조금씩 가져올 것이 아니라 며칠 모아서 놓았다가 한꺼번에 가져오시면 수고도 덜고 또 목돈도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라고 했다.
암자로 돌아와 밤새 곰곰이 생각하던 스님은 “저 쌀이 나오는 구멍을 더 넓게 뚫는다면 반드시 더 많은 쌀이 나올 것이고, 그럼 장터 아낙의 말대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을 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스님은 구멍을 더 크게 뚫을 도구를 챙겨서 폭포로 내려갔다. 그리고 열심히 구멍을 뚫어 전보다 세 배나 더 넓게 뚫었다. 구멍을 뚫은 스님은 내일부터는 세 배의 쌀이 나올 터이니 마음이 흡족했다. 그리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밤잠을 설치며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날이 밝자, 스님은 큰 자루를 메고 절벽으로 내려가서는 곧바로 크게 뚫어 놓은 구멍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그 곳엔 세 배로 많은 쌀이 나오기는커녕 단 한 톨의 쌀도 없었다. 스님의 욕심이 그만 쌀이 나오는 구멍을 막아 버렸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사람들은 그 쌀이 나오던 바위를 ‘용추 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용추 쌀 바위’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아득한 옛날 불일폭포가 생기기 전 용소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용소 옆 불일암에는 한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뇌성이 치고 벼락이 나무를 때리며 무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용소에서는 이무기가 용이 되어 푸른빛을 발하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비가 마구 쏟아졌다. 이윽고 비가 그치고 뇌성도 잠잠해지자 불일암 스님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밖을 둘러보니 이제까지 용소 옆에 하나로 서 있던 산은 두 개로 갈라졌고,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없어지고 깎아지른 절벽이 생겨 물이 폭포가 되어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이 절벽을 내려가 보니 절벽 밑으로는 새로 물길이 나 있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절벽에는 큰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님은 이는 분명 부처님의 자비가 내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쌀을 암자로 옮겼다.
그 다음 날 스님은 다시 그 절벽의 뚫어진 구멍으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그 구멍에서는 또 쌀이 나와 있었다. 구멍에서 이렇게 계속해서 쌀이 나오게 되자 스님은 이 쌀을 화개장터에 내다 팔기로 했다. 스님은 그 후부터 하루는 쌀을 구멍에서 옮기고 다음 날은 그 쌀을 장터에 내다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터의 쌀을 사는 아주머니가 “스님! 쌀을 이렇게 조금씩 가져올 것이 아니라 며칠 모아서 놓았다가 한꺼번에 가져오시면 수고도 덜고 또 목돈도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라고 했다.
암자로 돌아와 밤새 곰곰이 생각하던 스님은 “저 쌀이 나오는 구멍을 더 넓게 뚫는다면 반드시 더 많은 쌀이 나올 것이고, 그럼 장터 아낙의 말대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을 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스님은 구멍을 더 크게 뚫을 도구를 챙겨서 폭포로 내려갔다. 그리고 열심히 구멍을 뚫어 전보다 세 배나 더 넓게 뚫었다. 구멍을 뚫은 스님은 내일부터는 세 배의 쌀이 나올 터이니 마음이 흡족했다. 그리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밤잠을 설치며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날이 밝자, 스님은 큰 자루를 메고 절벽으로 내려가서는 곧바로 크게 뚫어 놓은 구멍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그 곳엔 세 배로 많은 쌀이 나오기는커녕 단 한 톨의 쌀도 없었다. 스님의 욕심이 그만 쌀이 나오는 구멍을 막아 버렸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사람들은 그 쌀이 나오던 바위를 ‘용추 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불일폭포 용추의 쌀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쌀이 나오는 바위’, ‘스님의 허욕’ 등이다. ‘쌀바위 설화’, 즉 ‘미혈 설화(米穴說話)’는 전국적으로 분포된 설화이다. 「불일폭포 용추의 쌀바위」는 욕심에 대한 징계를 자연물의 파괴로 나타냄으로써 하늘의 벌이라는 엄격한 윤리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가지산 쌀바위 전설」,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의 「미암사 쌀바위 전설」 등의 쌀바위 설화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불출암 쌀바위
분류
문학 > 부정적인물형 > 편벽(偏僻)형 |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승려
• 지역 : 호남
• 출처 : 한국불교설화 ()
• 내용 :
서래봉(써래봉)은 달마조사의 서래설(西來說)에 연유한다. 서래봉 줄기의 서쪽 바위 봉우리 불출봉은 봉우리 바로 밑에 있는 불출암터인 커다란 석굴에서 부처님이 나왔다 하여 석굴에서 부처님이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출암은 신비스런 바늘구멍이 있어 끼니때마다 먹을 만큼의 쌀이 나오고 손님이 오면 접대하기에 알맞은 양의 쌀이 솟아 나왔다. 하루는 사미가 매 끼니마다 쌀푸기가 귀찮은 데다 욕심이 생겨 바위 구멍을 크게 넓혀 놓았다. 그 뒤부터 쌀은 한 톨도 안 나왔다고 한다.
• 시대 : 삼국
• 신분 : 승려
• 지역 : 호남
• 출처 : 한국불교설화 ()
• 내용 :
서래봉(써래봉)은 달마조사의 서래설(西來說)에 연유한다. 서래봉 줄기의 서쪽 바위 봉우리 불출봉은 봉우리 바로 밑에 있는 불출암터인 커다란 석굴에서 부처님이 나왔다 하여 석굴에서 부처님이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출암은 신비스런 바늘구멍이 있어 끼니때마다 먹을 만큼의 쌀이 나오고 손님이 오면 접대하기에 알맞은 양의 쌀이 솟아 나왔다. 하루는 사미가 매 끼니마다 쌀푸기가 귀찮은 데다 욕심이 생겨 바위 구멍을 크게 넓혀 놓았다. 그 뒤부터 쌀은 한 톨도 안 나왔다고 한다.
쌀 나오는 구멍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
조선/조선 전기 |
디지털서산문화대전-「쌀 나오는 구멍」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서 쌀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쌀 나오는 구멍」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간월도의 한 절에서 제자와 함께 생활할 때 절에 있던 쌀바위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자가 보다 많은 양식을 얻기 위해 매일 일정하게 나오는 쌀바위를 훼손했다는 과욕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213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7년 1월 5일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이평순[남, 78]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옛날에 무학대사가 간월도의 한 절에서 제자와 더불어 생활하였다. 이때 절의 한쪽에 있는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 이 쌀은 매일 같이 서 홉만 나왔다. 서 홉의 쌀은 두 사람이 하루 동안 먹기에 부족한 양이었다. 제자는 항상 쌀이 더 나왔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루는 무학대사가 출타를 하였다. 그러자 제자가, “아, 이거 스님 어디 간 김에 구멍 좀 키워 보자. 이걸 좀 키우면 쌀이 더 나오겠지.” 하고는 정으로 쪼아서 바위 구멍을 키웠다. 하지만 제자가 구멍을 키운 뒤부터 쌀이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그 뒤로는 제자가 마을을 돌며 시주를 받아다 생활해야 했다.
모티브 분석
「쌀 나오는 구멍」의 주요 모티프는 인간의 과욕이다. 과욕 모티프는 일상적인 안정된 삶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파괴된다는 의미를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쌀바위의 과욕 모티프는 폐사와 연계되나 「쌀 나오는 구멍」에서는 과욕의 징벌이 ‘시주 받아 오기’로 대체되어 있다. 이밖에도 서산시에서 무학대사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로는 「무학대사와 간월도 무당사」, 「토끼섬과 무학대사」, 「무학대사가 잡아준 묫자리」, 「학이 날개로 보호한 어린아이」 등을 들 수 있다.
은을암, [ 隱乙庵 ]
분야/ 유형/ 지역/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
디지털울산문화대전-「은을암」 |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에서 은을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은을암(隱乙庵)」은 바위 구멍 속으로 새 세 마리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숨을 '은(隱)'과 새 '을(乙)' 자를 써서 ‘은을암(隱乙庵)’이 되었다고 하는 암석 유래담이다. 이를 「은을암의 쌀바위」, 「치술령망부석」, 「치술신모와 망부석」 등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은을암」에 대한 설화는 두 가지가 전해 온다.
첫째, 「은을암의 쌀바위」는 1984년 7월 21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연구실에서 조사 의뢰한 정상박·김현수·정원효·김동환 등이 울주군 청량면[현 청량읍] 율리 청송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손영수[남, 50]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이는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13의 26~27쪽에 실려 있다.
둘째, 「치술령망부석」은 1984년 8월 1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연구실에서 조사 의뢰한 정상박·김현수 등이 울산시[현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주민 김석보[남, 57]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이는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12의 88~94쪽에 실려 있다. 또한 같은 내용의 설화가 1996년 울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울산의 전설과 민요』의 14~15쪽에도 「치술신모와 망부석」이라는 제목으로 약술되어 있다.
둘째, 「치술령망부석」은 1984년 8월 1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연구실에서 조사 의뢰한 정상박·김현수 등이 울산시[현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주민 김석보[남, 57]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이는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12의 88~94쪽에 실려 있다. 또한 같은 내용의 설화가 1996년 울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울산의 전설과 민요』의 14~15쪽에도 「치술신모와 망부석」이라는 제목으로 약술되어 있다.
내용
1. 은을암의 쌀바위,
은을암에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하루 먹을 쌀만 나오는 것이었다. 절에 있는 사람이 욕심이 나서 ‘구멍을 크게 하면 쌀이 많이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구멍을 크게 하니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구멍 속으로 새 세 마리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숨을 은과 새 을 자를 써서 ‘은을암’이 되었다고 한다.
2. 치술령망부석 [이 설화의 본문은 박제상과 관련된 치술령과 망부석 설화가 대부분이고, 일부가 은을암에 대한 내용임]
박제상에게는 부인과 딸 세 명[아경, 아영, 아기]과 아들 한 명[문양]이 있었다. 남편인 박제상이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은 독약이 든 그릇을 마시려고 하였다. 세 딸이 어머니에게 매달리면서 같이 죽기를 소원하였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부인은 아들 문양이 살아 있어야 박제상의 혈육을 이을 수 있기 때문에 문양을 키울 둘째 딸 아영만 살게 하고 두 딸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세 모녀의 숨이 떨어지자 그 세 모녀의 혼이 새로 변해 마을 상공을 돌았다. 사람들은 그 새를 보고 비조라고 불렀다. 이 새들이 날아서 국수봉으로 갔는데, 그 골짜기에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 구멍으로 이 새들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숨을 ‘은’ 자, 새 ‘을’ 자를 써서 ‘은을암’이라고 하였다. 뒤의 사람들이 은을암을 짓고, 이를 왜구를 막는 호국 사찰로 여겼다고 한다.
은을암에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하루 먹을 쌀만 나오는 것이었다. 절에 있는 사람이 욕심이 나서 ‘구멍을 크게 하면 쌀이 많이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구멍을 크게 하니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구멍 속으로 새 세 마리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숨을 은과 새 을 자를 써서 ‘은을암’이 되었다고 한다.
2. 치술령망부석 [이 설화의 본문은 박제상과 관련된 치술령과 망부석 설화가 대부분이고, 일부가 은을암에 대한 내용임]
박제상에게는 부인과 딸 세 명[아경, 아영, 아기]과 아들 한 명[문양]이 있었다. 남편인 박제상이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은 독약이 든 그릇을 마시려고 하였다. 세 딸이 어머니에게 매달리면서 같이 죽기를 소원하였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부인은 아들 문양이 살아 있어야 박제상의 혈육을 이을 수 있기 때문에 문양을 키울 둘째 딸 아영만 살게 하고 두 딸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세 모녀의 숨이 떨어지자 그 세 모녀의 혼이 새로 변해 마을 상공을 돌았다. 사람들은 그 새를 보고 비조라고 불렀다. 이 새들이 날아서 국수봉으로 갔는데, 그 골짜기에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 구멍으로 이 새들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숨을 ‘은’ 자, 새 ‘을’ 자를 써서 ‘은을암’이라고 하였다. 뒤의 사람들이 은을암을 짓고, 이를 왜구를 막는 호국 사찰로 여겼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은을암의 쌀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불교 연기 설화’, ‘지명 설화’ 등이다. 이러한 유형의 전설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즉 「은을암의 쌀바위」는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수도하는 수도승이 최소한의 식량으로 수도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를 어기고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을 경계하는 불교의 기본 사상과 연관된다. 다만 「은을암의 쌀바위」에는 박제상의 부인과 딸이 죽어 이 바위에 숨어듦으로써 불교의 윤회 사상인 인간이 죽어 다음 세상에는 새로 태어나 그들의 소망인 박제상 보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치술령망부석」의 주요 모티프는 ‘박제상과 불교 연기 설화’, ‘지명 설화’ 등이다. 「치술령망부석」에 등장하는 비조는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존재이다. 박제상의 부인과 딸이 죽어서 불교의 윤회로 비조가 되어 바다를 넘어 박제상을 보러 간다는 것은 부인의 정렬, 자식의 효도 등이 담겨 있는 것이다. 또 마을 사람들이 비조가 된 그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은을암을 짓고, 이를 호국 사찰로 여겼다는 것은 신라시대 불교의 호국 정신을 잘 반영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치술령망부석」의 주요 모티프는 ‘박제상과 불교 연기 설화’, ‘지명 설화’ 등이다. 「치술령망부석」에 등장하는 비조는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존재이다. 박제상의 부인과 딸이 죽어서 불교의 윤회로 비조가 되어 바다를 넘어 박제상을 보러 간다는 것은 부인의 정렬, 자식의 효도 등이 담겨 있는 것이다. 또 마을 사람들이 비조가 된 그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은을암을 짓고, 이를 호국 사찰로 여겼다는 것은 신라시대 불교의 호국 정신을 잘 반영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선유정의 유래, [ 仙遊亭-由來 ]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
조선/조선 후기 |
디지털함양문화대전-「선유정의 유래」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선유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선유정의 유래」는 선녀의 날개옷을 망가뜨려 함께 살게 된 사냥꾼이 날개옷을 고쳐주어 선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132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계곡 옆에는 ‘선유정’이란 정자가 있다. 옛날 삼정계곡에는 ‘인걸’이란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인걸은 사냥을 다니는 길목에 매일 무지개가 떴다가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그것을 유심히 보니 무지개 아래 소(沼)에서 옥황상제의 밥을 짓기 위해 내려온 선녀들이 있었다. 하루는 날이 더워 선녀들이 소(沼)에서 멱을 감기 위해 옷을 벗어두었다. 인걸은 날개옷을 훔쳐 달아나다가 그것을 망가뜨렸고 선녀 아미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그와 함께 살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이들에게 쌀바위를 내려 주고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한다. 아들 하나, 딸 둘을 낳고 잘 살던 어느 날, 아미가 날개옷을 보고 그것을 입게 해달라고 조르자 인걸은 날개옷을 기워 아미에게 입혀준다. 아미는 하늘로 날아가버렸고 인걸은 세 자녀와 함께 아미를 기다리다가 죽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이 ‘선유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아미의 재림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모티브 분석
「선유정의 유래」는 지명 유래담인 동시에 선녀와 나무꾼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선녀의 하강-선녀와 인간 남성의 결합-선녀의 승천이라는 모티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쌀 나오는 바위 이야기도 삽입되어 있다. 쌀바위 이야기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는 광포전설로 인간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내용이지만 「선유정의 유래」에서는 욕심에 대한 경계는 없고 쌀바위가 주인공이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재물을 제공하는 화수분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동금 강암사, [ 東金 剛庵寺 ]
분류/ 유물/ 유적/ 시대/ 행정구역/ 등급/ 지정번호/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사찰 |
조선 |
평양시>순안구역>오산리 |
준국보급(보존급) |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22호 |
위치/ 문화재/ 지정/ 연혁/
평양시 순안구역 오산리 담화산 |
보존유적 제22호 |
955년(고려 광종 6) 창건 1636년(조선 인조 14) 중건 1936년 중건 |
평양시 순안구역 오산리 담화산기슭에 있는 사찰. 동금강산(현재 담화산) 밑에 있는 동금강암사는 1000여 년 전에 건립되었다. 5차례에 걸쳐 개축되었는데, 높이 50여 m 되는 절벽바윗돌 밑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절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침저녁으로 부처에게 불공드릴 쌀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는 한 늙은 중이 하루는 지팡이를 짚고 바위 아래 굴 입구를 바라보니 입쌀이 줄줄 바위입구를 따라 나오고 있었다. 그는 하늘이 주는 덕이라고 생각하고 끼니마다 적당한 양의 쌀을 가져다가 밥을 지어 불공을 드렸다.
어느날 쌀바위 소문을 들은 한 낯선 중이 이 암자에 와서 지팡이와 끌을 가지고 그 굴을 넓혔다. 그랬더니 갑자기 천지가 칠흑같이 되어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쌀바위에서 기둥 같은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 낯선 중을 삼켜버렸다. 이때부터 거기서는 쌀 대신 한줄기의 좋은 샘물이 서서히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는데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 외국의 한 사신이 이곳을 보고 신령스러운 절승지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동금강암은 본래 평안남도 평원군 신성리에 있는 법흥사의 말사로, 동금강사(東金剛寺)로도 불렸다.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과 협곡이 아름다운 데다 동쪽에 있는 금강산에 위치한다고 하여 동금강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 금강사는 고려 초기인 955년에 창건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중건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 암자에 머물렀으며, 사명당도 이 절에 머물다 간 것으로 전해진다.
동 금강사는 고려 초기인 955년에 창건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중건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 암자에 머물렀으며, 사명당도 이 절에 머물다 간 것으로 전해진다.
담화산 동 금강암 원경(曇華山 東 金剛庵 遠景)
동 금강암중건비에 절의 유래에 대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아침저녁으로 부처에게 불공을 드릴 쌀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는 한 늙은 스님이 하루는 지팡이를 짚고 바위 아래 굴 입구를 바라보니 입쌀이 줄줄 바위 입구를 따라 나오고 있었다. 그는 하늘이 주는 덕이라고 생각하고 끼마다 적당한 양의 쌀을 가져다가 밥을 지어 불공을 드렸다. 어느 날 쌀바위 소문을 들은 한 낯선 스님이 이 암자에 와서 지팡이와 끌을 가지고 그 굴을 넓혔다. 그랬더니 갑자기 천지가 칠흑같이 되어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쌀바위에서 기둥 같은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 낯선 중을 삼켜버렸다. 이때부터 거기서는 쌀 대신 한줄기의 좋은 샘물이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는데,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 외국의 한 사신이 이곳을 보고 신령스러운 절승지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동 금강암은 높이 50여 미터 되는 절벽 바윗돌 밑에 위치하고 있다. 아담한 익공식 건물이면서도 화반 대신 주간포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동 금강암은 높이 50여 미터 되는 절벽 바윗돌 밑에 위치하고 있다. 아담한 익공식 건물이면서도 화반 대신 주간포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동금강암 편액(東金剛庵 扁額)
[동 금강암[東 金剛庵] (북한의 전통사찰, 2011. 6. 10.,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삼진산의 쌀바위,
마고할미 고쟁이 말린 바위에 담긴 전설,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지리/자연 지리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충청남도 서산시 |
현대/현대 |
디지털서산문화대전-바위 |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광물이나 유기물이 모여 이루어진 암석.
서산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대산읍 독곶리의 코끼리바위는 서산의 대표적인 바위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팔봉산에 있는 호박바위와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앞에 있는 삼진산의 암자 뒤 쌀바위, 지곡면 해안의 마고할미 고쟁이 말린 바위, 운산면 여미리에서 3㎞쯤 떨어진 안국사 절터의 배바위, 운산면 용현리의 쉰길바위 등이 있는데 이들 바위의 이름에는 각각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자연 경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형성되어 있는 황금산 주변 해안에는 간조 때에만 접근이 가능한 코끼리바위가 웅장하게 서 있다. 코끼리바위의 암질은 규암이며, 해식애가 파랑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아 침식되면서 형성된 시스택(sea stack)과 아치형으로 연결된 시아치(sea arch)의 작품이다.
서산시의 대표적인 산인 팔봉산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하여 그러한 명칭을 얻었으며, 그중 1봉은 화강암의 풍화 작용에 의해 암석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팔봉산에는 심층 풍화에 의해 지하에 형성된 동글동글한 핵석이 지표에 노출되면서 차별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인해 독립된 암괴로 남아 주변보다 높은 곳에 쌓여 있는 토르(Tor)가 형성되어 있다.
충청남도 홍성~예산~서산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가야산은 저산성 산지와 구릉성 산지로 형성된 노년기 지형이다. 예산군과 서산시의 경계에 위치하는 가야산의 석문봉은 흑운모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능선에는 규모가 2~3m에 이르는 토르들이 층층이 쌓여 있으며, 3~4m 크기의 기둥 바위가 집단으로 분포한다. 정상 북측에는 2~3m 크기의 호박바위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판상 절리에 따라 토르가 형성되어 있다.
서산시의 대표적인 산인 팔봉산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하여 그러한 명칭을 얻었으며, 그중 1봉은 화강암의 풍화 작용에 의해 암석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팔봉산에는 심층 풍화에 의해 지하에 형성된 동글동글한 핵석이 지표에 노출되면서 차별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인해 독립된 암괴로 남아 주변보다 높은 곳에 쌓여 있는 토르(Tor)가 형성되어 있다.
충청남도 홍성~예산~서산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가야산은 저산성 산지와 구릉성 산지로 형성된 노년기 지형이다. 예산군과 서산시의 경계에 위치하는 가야산의 석문봉은 흑운모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능선에는 규모가 2~3m에 이르는 토르들이 층층이 쌓여 있으며, 3~4m 크기의 기둥 바위가 집단으로 분포한다. 정상 북측에는 2~3m 크기의 호박바위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판상 절리에 따라 토르가 형성되어 있다.
바위에 깃든 전설
서산에는 전설이 깃든 바위가 여럿 있다. 그중 삼진산의 쌀바위, 마고할미 고쟁이 말린 바위에 담긴 전설을 대표적으로 보겠다. 먼저 삼진산의 쌀바위는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앞에 있는 삼진산의 한 암자 뒤에 있는 바위로 쌀이 나오는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암자에 거하는 사람이 늘어도 쌀이 나오지 않아, 모자란 쌀을 더 얻기 위해 그 구멍을 쑤셨더니 피가 흘렀다고 한다. 그 후로 그 구멍에서 물이 흘러 지금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마고할미 고쟁이 말린 바위는 서산시 지곡면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큰 바위였다고 한다. 여기에 깃든 전설은 마고할미라는 사람이 서해의 바다를 다 돌아다녀도 옷이 젖지 않았는데, 이 근처에서 옷이 젖어 이 바위에 고쟁이를 벗어 말렸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마고할미 고쟁이 말린 바위는 서산시 지곡면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큰 바위였다고 한다. 여기에 깃든 전설은 마고할미라는 사람이 서해의 바다를 다 돌아다녀도 옷이 젖지 않았는데, 이 근처에서 옷이 젖어 이 바위에 고쟁이를 벗어 말렸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 新陽里-陶窯址 ]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역사/전통 시대,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적/터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200-1 |
조선/조선 |
디지털진안문화대전-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방면으로 가면 용덕리 미적동 마을 못 미쳐서 큰곰뱅이 골 입구에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가 있다. 전북 진안군과 충남 금산군 경계인 성치산 북쪽 기슭 말단부로 쌀바위 가든 부근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중앙에서 큰곰뱅이 골을 따라 흘러내린 물줄기와 용덕리에서 줄곧 남쪽으로 흘러온 물줄기가 합류한다. 선사 시대 이래로 줄곧 진안과 금산을 잇는 내륙 교통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9년 전북 대학교 전라 문화 연구소 주관으로 시행된 진안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1997년 국립 전주 박물관과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추가로 시행하였다.
지표 조사에서 백자편과 요도구 편, 요벽 편이 상당량 수습되었다. 백자 편은 대접과 접시가 유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구연부가 외반된 완과 종지, 병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굽은 낮거나 높은 다리 굽과 안굽식 낮은 다리 굽, 평저식 다리 굽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문양이 없는 무문으로 색조가 회백색과 청백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성 방법은 굵은 규사가 섞인 흙 받침과 지저분한 흙 받침으로 포개어 소성하였다. 요도구인 도지미는 경사진 원형 도지미와 원통형 도지미가 모두 공존한다.
지표 조사에서 백자편과 요도구 편, 요벽 편이 상당량 수습되었다. 백자 편은 대접과 접시가 유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구연부가 외반된 완과 종지, 병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굽은 낮거나 높은 다리 굽과 안굽식 낮은 다리 굽, 평저식 다리 굽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문양이 없는 무문으로 색조가 회백색과 청백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성 방법은 굵은 규사가 섞인 흙 받침과 지저분한 흙 받침으로 포개어 소성하였다. 요도구인 도지미는 경사진 원형 도지미와 원통형 도지미가 모두 공존한다.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A는 쌀바위 가든 뒤쪽 산기슭에 있는데, 오래전 임도의 개설과 음식점을 신축하는 과정에 유적이 심하게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A 반대편에 자리한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B는 밭 개간과 오랫동안 경작 활동으로 유구가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와 평가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는 유적의 규모가 비교적 크고 유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진안고원 백자의 발전 과정과 운송 방법을 연구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평가된다.
쌀이 나오는 화수분 바가지,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작품/설화 |
경기도 시흥시 |
현대/현대 |
디지털시흥문화대전-「쌀이 나오는 화수분 바가지」 |
경기도 시흥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화수분 바가지에 관한 이야기.
흉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 정이 많고 생명을 존중하며 분수(分數)를 아는 부부의 전설이다. 동물의 생명도 소중히 하고 이웃에게 베풀며 욕심 없이 살아가면 은덕을 얻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쌀이 나오는 화수분 바가지」이야기는 1988년 시흥군에서 편찬한 『시흥군지』, 1995년 시흥시에서 편찬한 『시흥의 생활문화와 자연유산』, 2000년 시흥시와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편찬한 『시흥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지금의 시흥 지역에 유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 흉년으로 견디다 못해 유씨의 부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쌀과 바꿔 오라 하였다. 유씨가 머리카락을 쌀과 바꿔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역시 굶주린 동네 박서방이 개울가를 오르내리며 잡은 개구리가 바가지에 가득했다. 유씨는 쌀을 박서방의 개구리와 바꿔 모두 놓아 주고는 빈 바가지만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가지에서 쌀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부부는 자신들의 몫 외의 쌀을 동네 집집마다 나누어 주어 흉년의 고비를 넘겼다. 이후 부부는 “이만큼 은혜를 받았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제 본분을 생각 않고 욕심을 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하여 바가지를 고이 씻어 잘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가끔 들여다보는데 제삿날이면 으레 흰 쌀이 가득했다. 그 뒤 세월이 오래 지나고 바가지의 행방은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소중한 쌀로 개구리의 목숨을 구해 준 은덕으로 쌀이 생기는 바가지를 얻었다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쌀이 생기는 쌀바위 전설과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쌀바위 전설은 인간이 욕심을 내어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결말인데 반해, 「쌀이 나오는 화수분 바가지」는 끝까지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동물의 생명도 소중히 생각하면 은덕을 얻으며 이웃에 베풀며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설화, [ 說話 ]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경상북도 칠곡군 |
현대/현대 |
디지털칠곡문화대전-설화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옛날부터 입으로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설화는 개인에 의해 창작된 이야기가 아니고 전승 집단의 문화나 가치관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민중적이거나 지역적인 특색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칠곡군의 설화
칠곡군에서 구비전승되고 있는 설화의 유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국적으로 분포된 설화로는 칠곡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설화 중에서 ‘의견총’, ‘바위고개와 아기장수’, ‘약사절 쌀바위’, ‘좁쌀로 경상감사되다’ 등이 있다. 설화들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승 집단의 문화나 세계관에 의해 칠곡군의 특색을 가미시켜 전승되고 있다.
다음으로 내용이 비슷한 설화가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유사한 구조와 내용을 가진 설화가 많다. ‘말무덤골의 사람무덤’은 ‘사람무덤 말무덤’과 이야기의 길고 짧음의 차이 외에는 거의 같은 설화라고 볼 수 있다. ‘바위고개와 아기장수’와 ‘바위고개의 비극’은 아기장수 설화의 내용이 주를 이루다가 마지막에 ‘아들바위’의 지명 설화를 끝을 맺는 부분까지 같은 설화이다. 특히 ‘법성사 전설’은 ‘송림사 창건설화’, ‘약사절 쌀바위’, ‘유학사 빈대 절터’에서 등장하는 지명은 다르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결국 절까지 폐사 당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불완전한 형태의 설화가 있는데, 산문적인 서사 구조의 형태를 지니지 못한 경우이다.
다음으로 내용이 비슷한 설화가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유사한 구조와 내용을 가진 설화가 많다. ‘말무덤골의 사람무덤’은 ‘사람무덤 말무덤’과 이야기의 길고 짧음의 차이 외에는 거의 같은 설화라고 볼 수 있다. ‘바위고개와 아기장수’와 ‘바위고개의 비극’은 아기장수 설화의 내용이 주를 이루다가 마지막에 ‘아들바위’의 지명 설화를 끝을 맺는 부분까지 같은 설화이다. 특히 ‘법성사 전설’은 ‘송림사 창건설화’, ‘약사절 쌀바위’, ‘유학사 빈대 절터’에서 등장하는 지명은 다르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결국 절까지 폐사 당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불완전한 형태의 설화가 있는데, 산문적인 서사 구조의 형태를 지니지 못한 경우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야 하는 한계 때문에 자료를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서사 구조를 유지하기 불가능하다. ‘나쁜 마음으로 불난 동티’나 ‘산신령 말하다 욕 본 사람’은 설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단순한 구조도 이루어져 있다. 결국 산문적인 서사 구조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설화는 인간이 지닌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완벽한 재연이 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흥미성이 사라져 전승의 의지가 약화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적으로 소멸하거나 아니면 문학적인 상상력을 지닌 전승자에 의해 재창조되어 전승될 수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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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저동리 쌀바위 [夫餘苧洞里─]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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