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5일 토요일

'민주주의의 어머니' 故 이한열 모친 배은심 여사 별세, "이한열 열사 산화 후 34년 오직 민주주의 한길..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민주주의의 어머니' 故 이한열 모친 배은심 여사 별세, "이한열 열사 산화 후 34년 오직 민주주의 한길..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이한열 열사 산화 후 34년 오직 민주주의 한길..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지키겠다"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 Presidential Truth Commission on Suspicious Deaths ,  ]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  ]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주의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 28분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주변인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쓰러져 결국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진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배은심 어머니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 당시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1998년부터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고(故) 이소선 씨와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故) 박정기 씨 등과 함께였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 28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사진은 지난해 6월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추모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하고 있는 모습.

2019년에는 용산참사(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로 철거민 7명과 경찰 1명 사망)와 관련해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고인은 이런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정을 지펴나갔다.

지난해 6월부터 국회 앞에서 진행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1인 시위에 참여, 한 달의 3분의 1이상을 국회 앞에서 보냈다.

고인의 사망 소식에,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애도도 잇따르고 있다.

배은심 어머니와 긴밀한 관계였던 김순 광주·전남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황망해했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에도 고인의 자택을 방문해 담소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살아 계실 동안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이제 정말로 어머니가 못다 이룬 뜻을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SNS에 '6월과 민주주의의 어머님, 배은심 여사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1987년 6월, 이한열 열사가 산화한 이후 어머님께서는 무려 34년 동안 오로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오셨다.

어머님께서는 그 숱한 불면의 밤을 수면제를 쪼개어 드실지언정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의 일이라면 전국을 다니셨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과 6월 항쟁 기념식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참석자들 한분 한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까지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죽음이 과거로 끝나지 않고 미래세대에 대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민주 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해주셨다"면서 "오직 민주주의 한 길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후보는 "이제 남은 일은 걱정마시고 이한열 열사와 함께 편히 쉬시라.

어머님의 뜻을 가슴 속에 깊이, 단단히 새기겠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반드시 지켜가겠다.

부디, 영면하시길"이라고 추모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SNS에 "계룡산 자락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아니 우리시대 모두의 어머니셨던 배은심 여사님의 부음을 마주한다"며 "이른 아침, 산사를 휘감는 겨울 바람이 슬픔을 더한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국민의힘은 "'열사들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영면을 기원하다"고 애도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배은심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열사가 꿈꿨던 민주화의 삶을 이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민주화의 열망이 피어나는 곳에 늘 함께였고, 1998년 민주화 운동 보상법과 의문사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서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고인의 말씀을 되새기며,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 Presidential Truth Commission on Suspicious Deaths ,  ]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0년 10월 17일 출범해 2004년 6월 30일까지 활동한 대통령 소속의 한시적 기구.

구분/ 설립일/ 설립목적/ 주요활동/업무소재지/ 규모
대통령 소속 위원회
2000년 10월 17일
위법한 공권력의 직접·간접적인 행사로 인하여 희생된 의문사의 진상 규명
민주화 운동 관련을 조사해 다수의 사건을 의문사로 결정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길 42 (수송동 146-1)
위원장(장관급), 상임위원(1급), 사무국, 5과 11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에 의하여 직접·간접적으로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죽음의 진실을 규명할 목적으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1.1.15일 제정, 2001.7.24일 개정)에 따라 2000년 10월 17일 출범하였다.

대통령 소속의 한시적 기구로서, 조직은 장관급의 위원장 아래 2명의 상임위원(1급 상당)과 사무국이 있고, 법무팀(위원장 직속)·보고서팀(사무국장 직속)과는 별도로 사무국 아래 4과 9팀이 있었다.

주요 업무는 2000년 12월 31일까지 접수된 의문사 관련 진정의 조사·처리이다.

제1상임위원은 조사1·2과의 업무를, 제2상임위원은 조사3과·특별조사과의 업무를 지휘·감독한다.

사무국장은 위원장의 지휘를 받아 위원회 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 감독하며 보고서팀을 운영한다.

행정과는 서무와 대외협력·홍보 등의 업무를, 조사 1~3과는 보안수사대·경찰·군·보안사령부 및 기타 관련 사건의 조사를, 특별조사과는 교도소 관련 및 직권사건·행방불명사건 등 위원장의 특명사건을 각각 담당한다.

진정의 처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각하()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속하지 않는 경우, 진정 내용이 명백히 허위이거나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하며, 진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조사를 개시하거나 각하를 결정해야 한다.

둘째 기각()은 사실이 아니거나 의문사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사실확인이나 구제조치가 이미 이루어진 경우에 한한다.

셋째는 조사 결과 위의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로 다음과 같다.

① 진정 내용이 사실이고 범죄 혐의가 있거나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을 경우로, 검찰총장에게 고발 또는 수사를 의뢰한다.

②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이 경우 유익한 정보·증거 또는 자료 제보자에게는 5000만 원 이내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③ 의문사 조사 종료 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사건의 진상 등을 공개해야 하지만, 개별사건의 조사 결과 보고 및 공포 여부는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1차 위원회의 조사 활동 기간은 2002년 9월 16일까지였으며, 이후 2003년 3월 16일까지는 조사는 하지 않고 보고서 출간과 각종 권고 조치 등의 업무만 수행하였다.

출범 이후 2002년 9월 16일까지 접수된 조사 대상은 82건(기권 1건 제외)으로, 이 가운데 19건이 '민주화 운동 관련 의문사'로 인정되었고, 33건은 기각, 30건은 조사 불능으로 결정났다.

이후 제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3년 7월 발족해 2004년 6월까지 1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했던 44건의 의문사를 재조사하여 11건을 의문사로 인정하였고, 진상규명불능 24건, 기각 7건, 각하 2건의 결정을 내렸다.

대표적인 활동은 1973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뒤 의문사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최종길(교수자살로 밝혀졌던 허원근() 일병, 1981년 삼청교육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정배 등 의문사와 관련된 진상을 규명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녹화사업과 인민혁명당사건 등 의문사 배후로 지목된 실체를 밝혀냈다는 점도 위원회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75년 추락사한 재야 지도자 장준하()의 의문사, 1989년 거문도에서 실족사했다고 판명된 이내창() 사건 등 30건이 무더기로 조사 불능으로 결정났다.

이는 미약한 조사 권한과 촉박한 조사 시한,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의 비협조 등 때문인데,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접수된 모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결국 위원회의 실효를 이유로 2009년 4월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폐지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  ]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목적으로 제정된 특별법으로 2009년 4월 폐지되었다.

1969년 8월 7일 3선개헌 이후 발생한 각종 의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1999년 6월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하고 이듬해 1월 15일, 법률 제6170호로 제정되었다.

주요 목적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국민 화합과 민주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있으며, 여기서 의문사라 함은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의문의 죽음으로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위법한 공권력의 직접·간접적인 행사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죽음을 말한다.

총 38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조는 법의 목적, 제2조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제3조부터 제38조까지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위원회의 업무 및 구성, 의결 및 위원장의 직무, 위원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보장, 위원의 제척(기피·회피, 사무국 설치, 위원회 운영, 직원의 신분보장, 자문위원회, 진정인의 적격, 진정 방식 및 각하(), 조사 개시·방법·기간, 진정 기각고발 및 수사 의뢰, 구제조치, 결정 등의 통지, 공무원 등의 파견, 위원·증인 등의 보호, 공소시효 정지, 재정신청에 관한 특례, 형의 감면, 벌칙과태료 부과권자 및 불복절차 등이다.

공포 후 4개월 뒤인 2000년 5월 16일부터 시행되었고, 이 법에 따라 2000년 10월 17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뒤 2002년 9월 16일 조사 기간이 끝날 때까지 총 82건(기권 1건 제외)을 처리하였다.

처리 결과 33건은 기각, 30건은 조사 불능으로 결정되었고, 19건이 '민주화 운동 관련 의문사'로 인정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됨에 따라 법률이 실효되어 2009년 4월 1일 법률 제 9572호에 의해 법이 폐지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분류


소개. 관련 항목



 

소개,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으로 2000년 10월 17일에 출범하여 2004년 6월 30일까지 활동한 한시적 기구이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희생된 의문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약칭으로 의문사위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에 의한 인권유린을 규명하기 위한 최초의 기구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다만 의문사 관련 정보를 쥐고 있는 쪽이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군기무사령부 등이었기 때문에 수사권이 없었던 특별법의 한계상 진상규명 불능으로 끝난 경우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경우 결국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고 2013년이 되어서야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를 통해 결론지어졌다.

이후 참여정부때 한층 더 넓은 범위를 다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직된다.

 

관련 항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疑問死眞相糾明委員會)

사회구조단체,

 2000년 1월 15일 제정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같은 해 10월 17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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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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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칭위문사위분야사회구조유형단체성격기구, 위원회설립시기2000년 10월 17일시대현대성격기구, 위원회설립시기2000년 10월 17일


정의
2000년 1월 15일 제정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같은 해 10월 17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기구.


설립목적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온 사건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잘못된 과거사를 정리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을 통한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기능과 역할
의문사위의 활동은 2002년 10월 16일까지를 통상 1기 위원회로, 의문사법 개정을 통해 2003년 7월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그 후 1년 동안 활동을 한 위원회를 2기 위원회라 부른다.

1기 위원회는 접수된 총 83건의 사건 중 최종길 사망 사건 등 19건을 ‘민주화운동과 관련되어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조사과정에서 과거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녹화사업, 삼청교육, 인혁당 사건, 프락치 공작, 군의문사 등의 실상을 밝혔다.

2기 위원회에서는 1기 위원회에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30건과 이의 제기된 14건을 합쳐 44건을 조사하였다.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장준하 사건과 허원근 일병 사건 등의 조작된 수사결과들을 밝혀낸 바 있다.

그 외에도 박정희 정권 하의 사상전향공작, 보안사의 사찰활동, 고문에 의한 조작 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하였다.


의의와 평가
위문사위의 업무는 과거의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규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검찰, 경찰, 국방부, 보안사,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비협조와 불성실한 태도가 걸림돌로 작용하였고, 일부 언론과 우익단체는 지속적인 비판과 흠집내기를 통해 활동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훼손하려 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으며 우리사회의 인권 수준을 높이는데 큰 교두보가 되었고 과거청산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미처 규명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은 2005년 12월 1일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활동으로 이월되었다.

 

참조항목

법률일반법·특별법장준하의문사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인민혁명당사건장준하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문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Presidential Truth Commission on Suspicious Deaths, 疑問死眞相糾明委員會] (두산백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疑問死眞相糾明─關─特別法] (두산백과)

[과거청산 특별입법과 특별기구-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민주화보상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이철호,『헌법학연구』9-2,2003)

[의문사진상규명 활동의 한계와 전망-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평가-」(박래군,『민주법학』24,민주주의법학연구회,2003)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과 우리의 과제」(양승규,『법과사회』21,법과사회이론학회,200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疑問死眞相糾明委員會))]


#이한열 #전주 이씨 #학생운동가 #민주운동가 #열사 #1966년 출생 #1987년 사망 #화순군 출신 인물 #폭발물에 죽은 인물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 #광주진흥고등학교 출신 #연세대학교 출신 #민중예술가 #묘비 #聖徒 烈士全州李韓烈之墓(성도 열사전주이한열지묘) #경영학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으로 분리된 건 2000년대 초반 #이한열 재학 당시에는 상경대학 산하였다 #1995년 10월 20일 별세 #향년 63세 사망 #모친 2022년 1월 9일 별세 향년 82세 #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지구물리학 전공 교수 #모교인 광주진흥고등학교에 세워진 추모비에 적힌 약력 #전라남도 곡성군 출생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된 학생증을 보면 본적이 화순군으로 되어 있다 #당시 전남에서는 공부 좀 잘한다 하면 광주에 유학보내는 게 보통이었다 #NHK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이한열 어머니의 증언과 함께 방영 #로이터 통신의 정태원 사진 기자가 촬영하였고 #중앙일보와 뉴욕 타임스 1면 머릿기사에 실렸다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보도 사진에 선정되어 6 10 민주 항쟁 항목에 있는 #아! 나의 조국" 사진과 함께 선정 #매년 이한열 열사 추모 기간에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이나 #학생회관 건물에 걸리게 되는데 그림의 세로 방향 크기는 건물 3층 정도로 크다 #현재 연세대학교에 보관 중이며 #6월 9일 무렵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걸어놓고 추모 행사를 진행했으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리모델링 이후로 #중앙도서관 옥상에 올라가기가 어려워진 관계로 2014년부터는 학생회관에 걸고 있다 #송도국제도시에 개교한 1학년 및 몇몇 학과의 이원화 캠퍼스인 #국제캠퍼스에도 동일한 그림을 제작하여 같은 시기에 걸고 있다 #이한열 열사 #이한열의 추모식 #민주주의의 어머니' 故 이한열 모친 배은심 여사 별세 #이한열 열사 산화 후 34년 오직 민주주의 한길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지키겠다 #전태일 열사 #김상진 열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 #황정하 열사 #김의기 열사 #김세진 열사 #이재호 열사 #이동수 열사 #김경숙 열사 #진성일 열사 #강상철 열사 #송광영 열사 #박영진 열사 #광주 2천여 영령이 #박영두 열사 #김종태 열사 #박혜정 열사 #표정두 열사 #황보영국 열사 #박종만 열사 #홍기일 열사 #박종철 열사 #우종원 열사 #김용권 열사 #이한열의 추모식에서 한 명연설 #문익환 목사의 절절한 몸짓과 애절한 목소리가 영상 #영화 1987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민주주의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 28분 별세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주변인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쓰러져 결국 소생하지 못한 것 #의료진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 #배은심 어머니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 당시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1998년부터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 #고(故) 이소선 씨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故) 박정기 씨 등과 함께였다 #1987년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져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의 시위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 2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로 한국을 방문했던 사진기자 #네이선 벤은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이한열기념사업회쪽에 이 사진을 제공 #학생운동과 공부 양쪽에서 성실했고 #사상서만큼이나 영어 공부에도 열중했다 #해당 동아리 #1989년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뒤 #운동권과 전혀 무관한 동아리 #이한열 열사 산화 후 34년 오직 민주주의 한길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지키겠다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Presidential Truth Commission on Suspicious Deaths #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法 #의문사 #권위주의 정권 #과거사 #법률 #일반법·특별법 #장준하 #인민혁명당사건 #의문사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에 의한 인권유린을 규명하기 위한 최초의 기구로서 역사적 의의 #의문사 관련 정보를 쥐고 있는 쪽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권이 없었던 특별법의 한계상 진상규명 불능으로 끝난 경우가 더 많았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경우 결국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고 #2013년이 되어서야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를 통해 결론지어졌다 #참여정부때 #한층 더 넓은 범위를 다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기 위원회는 접수된 총 83건의 사건 #최종길 사망 사건 #19건을 ‘민주화운동과 관련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인정 #조사과정 #과거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탄압 #녹화사업 #삼청교육 #인혁당 사건 #프락치 공작 #군의문사 실상 #2기 위원회 #1기 위원회에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30건과 이의 제기된 14건을 합쳐 44건을 조사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장준하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조작된 수사결과들을 밝혀낸 바 있다 #박정희 정권 하의 #사상전향공작 #보안사의 사찰활동 #고문에 의한 조작 사건 #진실을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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