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5일 화요일

경주시慶州市, Gyeongju-si

경주시慶州市, Gyeongju-si 경주는 아직도 천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도시이고, 문화유산들도 많이 남아있어. 경주라는 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라 길을 걷다 땅을 파면 수천 년 전의 토기가 발견될 것 같은 예감까지 들게 해. 경주는 도시 그 자체에서 신라의 고고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 첨성대 첨성대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천문대 중 가장 오래 됐어. 첨성대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봐.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선의 미를 뽐내고 있는 첨성대는 한국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어. 특히 첨성대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워. 2) 국립 경주 박물관 국립 경주 박물관은 7만 8,680점의 소장 유물과 2,383점의 전시 유물, 국보 13점, 보물 29점의 지정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하나하나 소중한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할 수 있어. 이 박물관에 있는 성덕 대왕 신종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종 가운데 가장 크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으로,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러. 종의 소리를 맑게 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종을 만들 때 아기를 넣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어. 그래서 이 종의 성분을 정밀 분석해봤지만, 사람 뼈에 들어있는 인(P) 성분은 나오지 않았어. 따라서 아기를 넣었다는 전설은 그냥 전설일 뿐이야. 3) 안압지 왕이 잔치를 열거나 손님을 모셨던 장소야. 그래서 호수와 궁이 매우 조화롭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이 당시에는 안압지 안에 진귀한 동물을 모아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정말 상상만 해도 얼마나 근사했을지 짐작이 가지? 4) 괘릉 괘릉은 신라 원성왕의 능으로 신라 시대의 능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능이야. 이 능에는 고개 돌린 석수가 있어. 보통 능을 지키는 석수는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기 위하여 각 방향으로 서있기 마련인데, 이 곳의 석수는 단 두 곳의 방향에 서있으면서 사방을 지키고 있어. 바로 고개를 돌려서 동서남북 사방을 전부 바라보고 있는 거야. 5) 기림사 기림사는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야. 불국사에 비교하면 크지 않은 규모지만 기림사에는 특별한 것이 있어. 바로 다섯 가지 약수야. 장군수, 오탁수, 초안수, 화정수, 감로수 이 5가지 약수는 각각 그 특징이 있어. 오탁수는 물의 맛이 으뜸이고, 초안수는 눈이 맑아지며, 화정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로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도 같다고 해. 약수는 지금도 마실 수 있으니, 이 곳에 가면 꼭 약수를 마셔봐~ 6) 문무대왕릉 문무왕은 무열왕(김춘추)의 아들이자 신라의 30대 왕으로 삼국 통일을 완성했어. 문무대왕릉은 바다의 가운데 있는데 바로 대왕암이야. 이는 문무왕이 죽어서까지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화장하여 동해에 뿌려달라고 했기 때문이야. 이 곳에서 일출을 보며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을 생각해봐! 7) 감은사지 3층 석탑 감은사지 3층 석탑은 감은사 앞뜰에 서있는 거대한 탑이야. 감은사는 지금 남아있지 않고, 쌍둥이 탑 두 개만 남아있어. 경주에 있는 3층 석탑 중 가장 거대한 감은사지 3층 석탑은 왜구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세웠다는 감은사에 맞게 위엄이 가득해 보여. 8) 석굴암 현재까지도 완벽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리막으로 막아놓고 있어. 유리 저편으로 보이는 석굴암의 아름다운 조각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해. 그 섬세한 조각을 그 당시에 어떻게 새겨 넣을 수 있었는지 천년 전 신라인의 도공을 생각하면 신비롭기까지 해. 9) 불국사 우리나라 사람 중에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사적 및 명승 제1호,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하고 또 그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야. 38만 8,879m2 공간에 다보탑, 석가탑, 금동 비로자나불좌상,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사리탑, 연화교, 칠보교, 청운교, 백운교 등의 수많은 국보와 보물이 숨쉬고 있어. 돌 하나, 나무 하나에 신라인의 정성과 혼이 담겨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신라인의 숨결을 느낄수가있다. 북동쪽으로 포항시, 서쪽으로 영천시·청도군,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대부분 경상분지지체(慶尙盆地地體)에 속하고, 양북면 어일리·범곡리와 천북면 등의 일부 지역은 포항분지지체에 속한다. 경상분지 지역은 경상계의 퇴적암층을 뚫고 관입한 불국사관입암층(佛國寺貫入岩層)으로, 화강암과 반암이 주로 분포한다. 포항분지는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지층으로 화성암·수성암·역암·사암·응회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으로 나누며, 내륙지역은 연평균기온이 14℃, 1월 평균기온이 -0.3℃, 8월 평균기온이 26.6℃이고, 연평균강수량은 998.2mm이다. 춥고 더운 차이가 심하고 강수량이 적은 남부내륙형 기후를 나타낸다. 해안지역은 동해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기온 13.3℃, 1월 평균기온 0.6℃, 8월 평균기온 25℃, 강수량 1,028.6mm로, 따뜻하고 습한 남부해안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자주 지나간다. 지형은 크게 셋으로 구분된다. 동부 해안 지대는 대체로 경사가 급하고 산지가 이어진 동대산계(東大山系)를 이루고, 서부는 단석산(斷石山:829m)을 중심으로 단석산계를 형성해 낙동강 유역과 형산강 유역의 분수계를 이룬다. 양 산계의 중간을 형산강과 그 지류가 흐르면서 안강·건천·내남 등 3대 평야를 형성하여 비옥한 농업지대를 이룬다. 행정구역 감포읍, 건천읍, 구정동, 구황동, 내남면, 노동동, 노서동, 도지동, 동방동, 마동, 배동, 배반동, 북군동, 서악동, 석장동, 성건동, 성동동, 손곡동, 시래동, 안강읍, 암곡동, 양남면, 양북면, 외동읍, 인왕동, 진현동, 천군동, 천북면, 현곡면, 황남동, 황오동, 황용동, 효현동 자연 경주분지, 구미산, 금오산, 남산, 단석산, 명활산, 오봉산, 옹강산, 인내산, 치술령, 토함산, 형산강평야 관광 감포관광단지, 경주 민속공예촌, 경주국립공원, 경주월드, 보문관광단지, 봉길해수욕장, 오류해수욕장, 토함산자연휴양림, 황성공원 문화유적 감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감산사지 삼층석탑, 감은사지 삼층석탑, 경주 간묘, 경주 감은사지, 경주 경덕사, 경주 경덕왕릉, 경주 경애왕릉, 경주 계림, 경주 계림로 보검, 경주 교동 고분군, 경주 교동 석등, 경주 교동법주, 경주 구 서경사, 경주 구정동 고분군, 경주 구정동 방형분,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경주 귀래정, 경주 근계리 입불상, 경주 금척리 고분군,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경주 기림사 소장유물,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경주 김유신묘,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경주 나정, 경주 남고루, 경주 남사리 북삼층석탑, 경주 남산 미륵곡석불좌상, 경주 남산 불곡석불좌상,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불좌상, 경주 남산 일원, 경주 남산 입곡석불두,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탑곡마애조상군,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 경주 남산신성, 경주 낭산 일원, 경주 내물왕릉, 경주 노동리 고분군, 경주 노서동 석불입상, 경주 노서리 고분군, 경주 능지탑지, 경주 단고사 강당, 경주 독락당,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동방동 와요지, 경주 동부 사적지대, 경주 동부동 은행나무, 경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경주 동천동 사방불탑신석, 경주 두대리 마애석불입상, 경주 마동사지 삼층석탑, 경주 망덕사지, 경주 명활성, 경주 무열왕릉, 경주 문무대왕릉, 경주 미추왕릉, 경주 배동 삼릉, 경주 배리 석불입상, 경주 배리 윤을곡마애불좌상,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경주 법흥왕릉, 경주 벽도산 석불입상, 경주 보문동 사지,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경주 보문리 당간지주, 경주 보문리 석조, 경주 부산성, 경주 불국사 경내,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경주 사마소, 경주 사천왕사지, 경주 삼랑사지 당간지주, 경주 삼릉계석불좌상, 경주 서부동 석불좌상, 경주 서악동 고분군, 경주 서악리 귀부, 경주 서악리 마애석불상, 경주 서악리 삼층석탑, 경주 서출지, 경주 석빙고, 경주 석장동 암각화,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성덕왕릉, 경주 성동동 전랑지,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 경주 손순유허, 경주 신무왕릉, 경주 신문왕릉, 경주 안계리 석조석가여래좌상, 경주 약수계곡 마애입불상, 경주 양동 관가정, 경주 양동 무첨당, 경주 양동 향단, 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경주 양동마을 근암 고택, 경주 양동마을 낙선당 고택, 경주 양동마을 두곡 고택, 경주 양동마을 사호당 고택, 경주 양동마을 상춘헌 고택,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경주 양동마을 수졸당 고택,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경주 양동마을 안락정, 경주 양동마을 이향정 고택, 경주 양산재, 경주 열암곡 석불좌상, 경주 영지, 경주 오릉, 경주 오야리 삼층석탑, 경주 옥산서원, 경주 용강동 고분, 경주 용강동 원지 유적, 경주 우안 양수장, 경주 원성왕릉, 경주 원원사지, 경주 월성, 경주 월암 종택, 경주 유연정, 경주 이견대, 경주 인왕리 고분군, 경주 일성왕릉, 경주 장항리 사지, 경주 재매정, 경주 전 민애왕릉, 경주 정강왕릉, 경주 죽동리 출토 청동기일괄, 경주 지마왕릉, 경주 진덕여왕릉, 경주 진평왕릉, 경주 진흥왕릉, 경주 천관사지, 경주 천군동 사지, 경주 천군리 삼층석탑, 경주 첨성대, 경주 최부자댁,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 경주 침식곡 석불좌상, 경주 탈해왕릉, 경주 포석정지, 경주 표암, 경주 헌강왕릉, 경주 헌덕왕릉, 경주 헌안왕릉,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경주 활성리 석불입상,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경주 황남리 고분군, 경주 황남리 효자손시양 정려비,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 경주 황오리 고분군, 경주 효공왕릉, 경주 효소왕릉, 경주 효현리 삼층석탑, 경주 흥덕왕릉, 경주 흥륜사지, 경주 희강왕릉, 경주검총, 경주안심리암각화, 경주읍성, 경주읍지, 경주향교, 고선사지 삼층석탑, 관문성, 광개토대왕공적기념호우, 구강서원, 굴불사지 석불상, 금곡사지 원광법사 승탑, 금관총 금관, 금동 당간 용두, 기림사, 기림사 비로자나불 복장전적, 기림사 삼층석탑, 기림사 약사전, 기림사 응진전, 기림사 진남루, 기마인물형토기, 김양묘, 김인문묘, 남간사지 당간지주, 남간사지 석정, 남산신성비, 낭산 마애삼존불,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동강서원, 동경관, 망덕사지 당간지주, 명활산성작성비, 목조문무인상,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 무장사지 삼층석탑, 백률사, 백운대 마애불입상, 백율사 대웅전,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보리사 마애석불, 분황사 석정, 분황사 석탑, 분황사 약사여래입상,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불국사,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사리탑, 불국사 삼층석탑, 불국사 삼층석탑 내발견유물, 불국사 석조,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삼괴정, 삼국사기(권50),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삼안총, 상서장, 서봉총, 서수형토기(미추왕릉), 서악서원, 석굴암, 석굴암 삼층석탑, 석탈해왕탄강유허, 성덕대왕 신종, 성덕왕릉귀부, 성산서당, 손소선생분재기, 손종로정충비각, 수봉정, 수재정, 숭덕전, 숭복사지 삼층석탑, 숭신전, 숭혜전, 식리총, 신라왕릉, 신라진지문성왕릉, 안압지,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상일괄, 양동 대성헌, 양동의 향나무, 영지석불좌상,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운암공부조묘, 웅수사지 석불입상, 월성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월성 금장리 고분군, 월성 남사리사지 삼층석탑, 월성 용명리사지 삼층석탑, 월성 입실리 유적, 월성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 월성 주사댁, 유리제 병 및 배, 육의당, 의성 관덕동 석사자, 이씨삼강묘비, 이언적수필고본일괄, 익재영정, 익재집책판, 인용사지, 임신서기석, 적개공신논상록권, 전홍유후설총묘, 정공청유품, 정덕계유사마방목,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종덕재 정당, 종오정 일원, 천룡사지 삼층석탑, 천마도 장니, 천마총, 천마총 금과대·금요패, 천마총 금관, 천마총 금모, 천마총 금제 관식, 천마총 금제 관식, 천마총 목걸이, 천마총 유리잔, 천마총 자루솥, 천마총 환두대도, 청동 옻칠 발걸이, 최진립전적및유품, 충의당, 취지금니묘법연화경, 태종무열왕릉비, 토우장식장경호, 통감속편, 해동명적, 호우총, 황남대총,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황남대총 북분 금과대 ·금요패, 황남대총 북분 금관수하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룡사 구층목탑 문화시설 국립경주박물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신라역사과학관, 안압지전시관, 우양미술관 관공서 경주시청,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학교 감포종합고등학교, 감포중학교, 감포초등학교, 강동초등학교, 건천초등학교, 경주고등학교, 경주공업고등학교, 경주대학교, 경주디자인고등학교, 경주마케팅고등학교, 경주여자고등학교,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 경주여자중학교, 경주정보고등학교, 경주중학교, 경주초등학교, 계림고등학교, 계림중학교, 계림초등학교, 괘릉초등학교, 근화여자고등학교, 근화여자중학교, 나산초등학교, 나원초등학교, 내남초등학교, 대본초등학교, 동국대학교, 동방초등학교, 동천초등학교, 모량초등학교, 모아초등학교, 모화초등학교, 무산중학교, 문화고등학교, 문화중학교, 불국사초등학교, 불국중학교, 사방초등학교, 산내중학교, 산대초등학교, 삼성생활예술고등학교, 서라벌대학교, 서라벌여자중학교, 서라벌초등학교, 석계초등학교, 선덕여자고등학교, 선덕여자중학교, 신라고등학교, 신라공업고등학교, 신라중학교, 신라초등학교, 아화중학교, 아화초등학교, 안강북부초등학교, 안강여자고등학교, 안강여자중학교, 안강전자고등학교, 안강제일초등학교, 안강중학교, 안강초등학교, 양남중학교, 양남초등학교, 양동초등학교, 양북중학교, 양북초등학교, 연안초등학교, 영지초등학교, 오릉초등학교, 옥산초등학교, 외동중학교, 용강초등학교, 용황초등학교, 월성중학교, 월성초등학교, 위덕대학교, 유림초등학교, 의곡초등학교, 입실초등학교, 전촌초등학교, 천북초등학교, 천포초등학교, 태화고등학교, 현곡초등학교, 화랑고등학교, 화랑초등학교, 황남초등학교, 황성초등학교, 흥무초등학교 교통 4번국도, 중앙선 행사및축제 신라문화제, 신라문화제, 한국 전통주와 떡 축제, 한국 전통주와 떡 축제 종교 감로암, 경주 구 서경사,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경주 불국사 경내, 고선사, 골굴사, 금강사, 금강암, 기림사, 기림사 약사전, 백율사 대웅전, 보리사, 분황사, 불국사, 삼불사, 석가사지, 석굴암, 신선사, 정혜사, 황복사 연혁" BC 57년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이곳을 중심으로 서라벌(徐羅伐)을 세웠다. 이 나라가 307년(기림왕 10)부터 신라로 개칭·발전하였는데, 이후 992년간 신라의 왕경(王京)이 자리하였으며 지방의 소경(小京)과 대비하여 대경(大京)이라고 불렀다. 6세기에 도시로서 도로망과 주거형태를 체계적으로 갖추기 시작하였고 계획적인 도로망이 격자로 만들어졌으며 8세기에 대도시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도시의 규모는 남북과 동서로 각 약 6km내외의 규모로 짐작된다. 고려가 신라를 합병한 935년(태조 18) 처음으로 경주라 불렀으며, 940년(태조 23) 영남지방의 행정 관청인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바꾸고, 유수사(留守使)를 두었으며 1012년(현종 3)에 다시 경주가 되었다. 한동안 경주부에 설치된 경상좌도(慶尙左道)의 감영(監營)이 1601년(선조 34)에 대구로 이동된 후 경주의 지위는 약화되었다. 1895년(고종 32) 23부제(府制) 실시로 경주군으로 개편되고, 1931년 4월 경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7년 7월 양북면(陽北面)에서 감포리(甘浦里) 외 8개리가 감포읍으로 분리 승격되었다. 1949년 5월에는 강서면(江西面)이 안강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 9월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되어 군과 분리되었고, 군의 명칭이 월성(月城)으로 바뀌었다. 1973년 7월 서면(西面)의 건천리(乾川里) 외 10개리가 건천읍으로 승격 분리되었고, 1980년 12월 외동면(外東面)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 1월 월성군의 명칭이 경주군으로 환원되었다. 1995년 1월 경주시와 경주군이 합쳐 통합시가 되었다. 2016년 현재 경주시는 감포읍·안강읍·건천읍·외동읍 및 양북면·양남면·내남면·산내면·서면·현곡면·강동면·천북면과 중부동, 황오동, 성건동,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황남동, 보덕동, 월성동, 불국동, 선도동 등 4읍 8면 1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와문화" 경주시의 교육기관으로는 대학교 3개교, 전문대학 1개교, 고등학교 20개교, 중학교 20개교, 초등학교 43개교(분교 4개)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공공도서관·문화원·종합문예회관·미술관 등이 있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신라문화제를 비롯해 4월과 5월에 청마백일장과 목월백일장이 열린다. 민속놀이로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동제를 비롯해 가배놀이와 사자놀이가 전해온다. 이러한 민속놀이는 10월에 열리는 신라문화제에서 재현된다. 경주시는 국내에는 익산시, 해외에는 이탈리아 폼페이시, 프랑스 베르사유시, 미국 잉글우드시, 일본 나라시·오바마시, 중국 시안시 등과 자매결연을 맺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정의 경상북도 남동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동해, 서쪽은 청도군과 영천시, 남쪽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북쪽은 포항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58′∼ 129°31′, 북위 35°39′∼ 36°04′에 위치한다. 면적은 1,324.41㎢이고, 인구는 25만 977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4개 읍, 8개 면, 11개 행정동(44개 법정동), 305개 행정리(142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남단으로 경상계(慶尙系)의 화강암이 관입한 지질을 이룬다. 지형은 주사산맥(朱砂山脈)·금오산맥(金鰲山脈)·동대산맥(東大山脈) 등 세 줄기 태백산맥의 지맥이 서부·중부·동부를 각각 남북으로 주행하여 산지지형을 이루고 있다. 주요 산으로는 도덕산(道德山, 703m)·구미산(龜尾山, 594m)·금오산(金鰲山, 466m)·황룡산(黃龍山, 664m)·토함산(吐含山, 745m)과 주사산(朱砂山, 622m)·소두방산(315m)·천룡산(天龍山, 495m) 등이 있다. 고개로는 추령(楸嶺, 309m)과 치술령(765m) 등이 있다. 형산강구조곡(兄山江構造谷), 영천∼경주간 구조곡이 교차하는 지점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침식분지가 형성되어 그 곳에 경주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명활산(明活山, 245m)·금오산(金鰲山)·옥녀봉(玉女峰, 215m)·선도산(仙挑山, 381m)·소금강산(小金剛山, 143m) 등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는 자연요새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경주∼양산간 구조곡도 경주 도심지에서 교차하여 거의 시 전역이 형산강의 상류·중류부에 해당된다. 산내면에서 발원하는 동창천이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에서 청도천과 합류, 밀양강으로 흘러들며, 외동읍 괘릉리에서 발원하는 동천이 울산에서 태화강으로 흘러든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발원하는 미역내가 북류하면서 크고 작은 하천과 합해져 기린내[麟川]가 되고, 반월성을 싸고 도는 남천(南川)은,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는 북천(北川)과 현곡천(見谷川)·대천(大川) 등과 합류해 형산강을 이루어 북류하다 안강평야에서 칠평천(七坪川)·기계천(杞溪川)과 합류하여 동해로 흐른다. 기후는 기온교차가 비교적 심한 내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연평균기온 14.0℃,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4.6℃이며, 연강수량은 1,037.0㎜이다. 역사 이 지역에서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청동기시대라고 생각되는데, 이는 이 시기 이전에 해당하는 유물·유적이 발견된 바 없고, 고인돌·청동검·간돌칼 등을 부장한 무덤 등 청동기 유물·유적이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구정동, 평동 입실리 유적 등은 우리나라 후기 청동기문화를 밝혀주는 귀중한 유적이며, 조양동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들 유적은 이 지역이 일찍부터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발달된 문화를 토대로 하여 신라가 성립될 수 있었다. 신라는 원래 사로 6촌에서 비롯되었는데, 사로 6촌의 위치를 경주평야 일대에만 한정하여 보는 견해도 있으나, 경주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사로 6촌은 기원 전후 무렵 사로국(斯盧國)으로 발전하였으며, 점차 진한 12국의 맹주국(盟州國)이 되었고, 6촌도 6부로 개편되었다. 그 뒤 사로국이 주변지역에 대한 정복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되자 6부가 두어져 있던 이들 지역은 왕경으로 되었다. 곧 궁실과 각종 관청이 들어서고 지배층이 거주하는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6부의 아래에 방리제(坊里制)가 시행되었다. 통일 이후의 전성시대에는 17만 8,936호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각종 유적에서 그 대략을 짐작할 수 있으나, 신라의 쇠퇴로 왕도로서의 영화는 사라지게 되었다. 935년(태조 18)신라가 고려에 항복하자 이 지역은 경순왕의 식읍이 되었고, 940년 군현 개편에 따라 6부의 명칭도 바뀌게 되었다. 이 때 이곳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두어져 6부지역을 위시한 인근의 여러 지역이 합속되었다. 995년(성종 14)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으로 개편되었으나, 1012년(현종 3)동경유수관이 폐지되고 경주방어사로 강등되었다가 1014년 다시 안동대도호부로, 1018년경주대도호부로 개편되었으며, 1030년 다시 동경유수관이 되었다. 이러한 개편 과정에서도 여러 군현을 영속한 큰 읍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했으며, 12세기 후반 무인정권하에서는 신라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202년(신종 5)동경야별초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1204년에는 지경주사(知慶州事)로 읍격이 강등되었으나, 1219년(고종 6) 유수관으로 복귀되었다. 1238년에는 몽고군이 이 지역을 휩쓸어 황룡사구층목탑이 불타는 등 수많은 문화재의 손실을 입었고, 1308년(충렬왕 34)계림부로 고쳐졌다. 조선 개국 후 8도체제가 확정되면서 이곳에 경상도의 감영이 두어졌으나 1408년(태종 8) 무렵 감영이 상주목으로 옮겨졌고, 1415년에 경주부로 개칭되었다. 이 후에도 안강(安康)·기계(杞溪) 등 4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영남의 큰 읍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였다. 1519년(중종 14) 일시 경상도가 좌·우도로 나뉘어지자 좌도의 치소가 되어 좌도감사가 경주부윤을 겸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건국이래 학문이 번성한 지역으로서, 1561년(명종 16)서악서원(西嶽書院), 1572년(선조 5)옥산서원(玉山書院) 등 많은 원사(院祠)가 건립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의 진격로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고, 박진(朴晉)·박의장(朴毅長)·권응수(權應銖) 등이 이끈 관민(官民) 연합군의 경주성전투와 그 탈환 작전은 왜란을 승리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동성 마을이 많이 형성되었는데, 양동의 이씨(李氏)와 손씨(孫氏)는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말기에는 이곳 출신 최제우(崔濟愚)가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을 창시하여 민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 시에 경주군으로 개편되었고, 1931년 읍면제의 실시에 따라 경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이어서 1937년에는 양북면의 일부가 감포읍으로 분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 역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 3·1운동시에 3월 13일과 15일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1928년신간회 경주지부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9년안강읍의 승격에 이어 1955년경주시의 승격으로 시군이 분리되어 월성군이 따로 존재하게 되었다. 1973년건천읍, 1980년외동읍의 승격이 있었고, 1989년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경주시가 되었다. 1998년 행정동 통폐합이 이루어져 4읍 8면 13동이 되었다가 다시 2009년 1월 행정동이 통폐합되어 4읍 8면 11동으로 되었다. 유물·유적 이 시는 선사시대부터 많은 유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신라 천 년의 도읍지로서 수많은 유물·유적을 간직하고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물·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만도 국보 31점(불국사삼층석탑 일괄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73점, 사적 및 명승 77개소, 천연기념물 3종, 중요민속자료 16종, 중요무형문화재 2종이 있다. 경주시 일원의 유물·유적은 크게 고분 및 그 유물, 불교관계 문화재, 성 및 궁궐지, 고건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경주시내 이외에도 천북면 모아리·오야리, 외동읍 죽동리에서 무문토기가 출토된 바 있고, 고인돌 또한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특히, 강동면과 천북면 모아리 등지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삼한시대의 유적으로는 외동읍 죽동리, 강동면 안계리, 외동읍 입실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일괄유물과 조양동 토광묘군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이후의 신라분묘유적으로는 경주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노서동·노동동·황남동·황오동·인왕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서악의 무열왕릉을 비롯한 고분들과 인접한 충효동 고분군·김유신묘 등이 시내 서쪽에 있다. 낭산 산록에 선덕왕릉·신문왕릉·효공왕릉·신무왕릉이, 남산 기슭에는 헌강왕릉·정강왕릉·경명왕릉·경애왕릉 등이 분포한다. 이 밖에도 금강산 서쪽의 고분군 및 남산주변 고분군 등 곳곳에 많은 고분이 있다. 이러한 고분가운데, 금관총·서봉총·천마총과 98호 남·북분 등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은 신라문화의 찬연함을 보여주는 유물이 된다. 불교문화재로는 불국사·석굴암을 비롯하여 남산일대의 유적을 들 수 있다. 남산은 그 자체가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라 일컬을 만큼, 미륵곡·불곡·탑곡 등의 골짜기마다 사찰지·불상·탑 등이 산재한다. 또 황룡사지·사천왕사지·망덕사지·고선사지·흥륜사지·굴불사지·천군리사지 등을 통해서는 신라 불교사찰의 모습을 확인하게 하였다. 또한 현곡면에 월성나원리오층석탑(月城羅原里五層石塔, 국보 제39호), 안강읍 옥산리에 정혜사지십삼층석탑(淨惠寺址十三層石塔, 국보 제40호),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지삼층석탑(感恩寺址三層石塔, 국보 제112호), 건천읍 송선리에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斷石山神仙寺磨崖佛像群, 국보 제199호) 등이 있다. 그리고 내남면 용장리에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 보물 제186호)·경주남산용장사곡석불좌상(慶州南山茸長寺谷石佛坐像, 보물 제187호), 양북면 호암리에 기림사건칠보살좌상(祇林寺乾漆菩薩坐像, 보물 제415호), 안동리에 월성골굴암마애여래좌상(月城骨窟庵磨崖如來坐像, 보물 제581호), 율동에 월성두대리마애석불입상(月城斗垈里 磨崖石佛立像, 보물 제122호)이 있다. 배동에 경주배리석불입상(慶州拜里石佛立像, 보물 제63호), 양북면 용당리에 경주감은사지(慶州感恩寺址, 사적 제31호), 감포읍 대본리에 이견대(利見臺, 사적 제159호), 양북면에 경주장항리사지(慶州獐項里寺址, 사적 제45호), 외동읍 모화리에 경주원원사지(慶州遠願寺址, 사적 제46호), 진현동에 석굴암석굴(石窟庵石窟, 국보 제24호) 등이 있다. 성지 및 궁궐지로는 반월성·임해전지·명활산성·남산성, 건천읍 송선리의 경주부산성(慶州富山城, 사적 제25호)과 외동읍 모화리의 관문성(關門城, 사적 제48호)이 대표적이다. 고건축물로는 안강읍 옥산리에 옥산서원(사적 제154호), 강동면 양동리에 무첨당(無忝堂, 보물 제411호)과 향단(보물 제412호)·관가정(觀稼亭, 보물 제442호), 옥산리에 독락당(獨樂堂, 보물 제413호), 강동면 옥산리에 월성손동만씨가옥(月城孫東滿氏家屋, 중요민속자료 제23호)이 있다. 그리고 양동낙선당(良洞樂善堂, 중요민속자료 제73호)·양동이원봉가옥(良洞李源鳳家屋, 중요민속자료 제74호)·양동이원용가옥(良洞李源鏞家屋, 중요민속자료 제75호)·양동이동기가옥(良洞李東琦家屋, 중요민속자료 제76호)이 있다. 또한 양동이희태가옥(良洞李熙太家屋, 중요민속자료 제77호)·양동수졸당(良洞守拙堂, 중요민속자료 제78호)·양동이향정(良洞二香亭, 중요민속자료 제79호)·양동수운정(良洞水雲亭, 중요민속자료 제80호)·양동심수정(良洞心水亭, 중요민속자료 제81호)·양동안락정(良洞安樂亭, 중요민속자료 제82호)·양동강학당(良洞講學堂, 중요민속자료 제83호) 등이 있다. 중요 전적(典籍)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인 『삼국사기』(卷五十, 보물 제525호)의 목판본과 『해동명적(海東名蹟)』(上卷 20枚, 下卷 23枚, 보물 제526호)·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 보물 제524호)·이언적수필고본일괄(李彦迪手筆稿本一括, 보물 제586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현곡면 오류리에 등나무(천연기념물 제89호), 안강읍 옥산리에 동락당의 중국주엽나무(천연기념물 제115호), 육통리에 월성안강읍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8호) 등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는 경주교동법주(향토술담기,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 누비옷(중요무형문화제 제107호)이 있다. 이 밖에도 신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계림·첨성대·포석정·나정·재매정·동방와요지군·반월성내의 석빙고·경주읍성 등이 있다. 교육·문화 신라의 고도인 경주의 전 근대적 교육기구는 신라의 화랑도와 682년(신문왕 2)에 설치된 국학이 있었다. 국학은 고려시대 경주향교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것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는 1492년(성종 23)에 중수되었으나,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 그 뒤 이시발이 중건하여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주에는 향교 외에도 조선시대에 소학당이 있어 동몽을 훈회하였다. 서원으로는 1561년(명종 16)서악동에 설립되고 1623년에 사액된 서악서원(西岳書院), 1573년(선조 6)안강읍 옥산리에 설립되고 1574년(선조 7)에 사액된 옥산서원(玉山書院), 1700년(숙종 26)에 설립하고 1711년 사액된 숭열사가 있다. 이 외에도 구강서원은 1692(숙종 18)에 안강읍 양월리에, 동강서원은 1707에 강동면 유금리에, 인산서원은 1714, 매월당영당은 1670(현종 11), 운곡서원은 1785년(정조 9)강동면 왕신리에 각각 건립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지만 서악서원과 옥산서원은 훼철되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7년에 유림들이 세운 월성학교(월성초등학교의 전신)·계림공립보통학교(계림초등학교의 전신)·옥산공립보통학교(옥산초등학교의 전신)가, 1909년에 광흥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에 세워진 건천공립보통학교 외에 25개의 학교가, 중학교는 1938년에 사립학교인 경주중·고등학교가 세워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3개교, 중학교 20개교, 고등학교 21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으며,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경주대학교·위덕대학교·서라벌대학교가 있다. 문화면으로는 도서관 6개소, 박물관 4개소(국립경주박물관, 동국대·경주대·위덕대 박물관 ), 문화재 300점, 예술단 5개(교향악단 1, 국악단 1, 합창단 1, 소년·소녀 합창단 1, 연극단 1), 문화공간으로는 공연시설 7개소, 전시시설 1개소, 지역문화복지시설 4개소, 그리고 문화원이 하나 있다. 문화행사로는 문화박람회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3년마다(8∼11월) 보문단지내 엑스포공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신라문화제는 매년 10월에 개최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리는 해는 연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전국국악대전, 신라미술대전, 한글백일장, 화랑씨름대회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이밖에도 청마백일장, 목월백일장, 원효예술제, 만파식적제, 동학예술제 등이 열리고 있다. 특히,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에서는 ‘신라문화학술회의’ 개최와 전문학술지인 ‘신라문화’를 간행하여 신라의 역사·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 지역은 동학의 발생지이며 교조 최제우가 활동한 곳이며 유네스코가 세계 10대 문화유적도시로 지정한 곳이다. 민속 이 고장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놀이로는 양동마을의 줄다리기와 호미씻이, 세시에 따라 행해지는 널뛰기·윷놀이·연날리기·사자놀이·풀놀이·활쏘기·탑놀이·그네뛰기·가배놀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양동마을의 줄다리기와 호미씻이는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알려져 있다. 줄다리기는 정월 보름과 8월 보름경에 주로 행해졌는데, 요즈음은 격년제 또는 3년마다 한 번씩 행해지고 있다. 시합은 윗마을과 아랫마을 간에 이루어지는데, 시합 전에 각각 고사를 지내고 해가 넘어갈 무렵에 시작해서 이튿날 새벽까지 한다. 시합 중에 힘이 달리면 이웃마을에 가서 청병을 하기도 하며, 구경하던 사람들까지도 가세해서 협동심을 발휘한다. 줄다리기는 윗마을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아랫마을이 이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이와같은 믿음은 주민들에게 기대감을 부여해주고 있으며 물질과 정신의 대비를 나타내주고 있다. 호미씻이는 삼복이 지나고 세 벌 논을 다 맨 뒤 마을의 머슴들에게 놀 기회를 주는 행사이다. 여름 동안 가장 열심히 일한 머슴이 소를 타고 주인집에 들어가면 주인은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이 날은 머슴들이 농악대를 이끌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을 밟아주며 한해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주인과 머슴이 일체감을 가진다. 양동마을과 같이 유교색이 짙은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내지 않으나 군내의 많은 동네에서 아직까지 동제를 지내고 있다. 대개 골맥이라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데, 마을 입구의 고목이나 서낭당이 신체가 된다. 제는 마을에 따라 특별한 날을 정하고 매년 같은 날에 지내기도 하며, 매년 주민이 모여 날짜를 결정하기도 한다. 제일이 결정되면 부정이 없고 출산·초상 등을 당하지 않은 남자를 제관으로 선정한다. 제관은 금줄로써 신성구역을 표시하고 정성을 다해 동제를 지내게 되는데, 다음 동제까지 마을에 재앙이 생기면 제관이 제를 잘못 지냈기 때문이라 믿어 지탄을 받게 된다. 제의 비용은 대개 동민들이 분담하며, 제물은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제를 지낸 뒤 음복을 한다. 해안지방에는 용왕을 모시는 별신제를 행하는 곳이 많다. 동제가 근엄하고 정적인 데 비해 별신제는 무당을 초청하여 굿을 함으로써 축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네행사로서 별신굿이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해난사고로 인한 수중고혼을 위로하기 위해 개인이 별신제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내륙지방에서 동제를 지내는 것과 해안지방에서 별신제를 지내는 것은 주민의 생업과 연관되어서 의례활동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민요·설화 이 고장은 민요가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전승되어온 곳이다. 남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망깨소리」·「지신밟기」·「보리타작노래」·「모노래」 등 주로 노동요이며, 여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치마노래」·「부채노래」·「바늘노래」·「시리굿노래」·「방아타령」·「댕기노래」·「베틀노래」·「시집살이노래」·「달노래」 등 여자들이 의생활과 관련성을 지닌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지신밟기」·「모노래」·「각설이타령」 등은 남녀 구분없이 부른다. 외동읍의 「모내기노래」는 벌모를 심을 때 남성들이 부르는 교환창이지만 줄모를 심는 오늘날에도 흥이 나면 노인층에서 흥얼거리기도 한다. “물기야 허정청 흐러놓고 쥔내야 양반은 어데로 갔노,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첩이야 방으로 놀러갔네, 첩이야 방은 꽃방이요, 님의 방은 연못이라, 꽃과 나비는 봄한철이고 물과 고기는 사시 장천……” 이러한 사설은 여러 면에서 유사하며 가락도 비슷하나 안강읍 부근에서는 사설이 전혀 다르다. “모다야 들어내재이 이모판으로 들어내자 새별겉으나 저밥골이 반달겉이도 떠나온다 니가무시나 반달이냥 초승월색이 반달이지…….” 「보리타작노래」는 이 군 일대에서 거의 비슷하다. 현곡면에서는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며 때릴 곳을 지시하면 종도리깨꾼이 뒷소리 여음을 재창하며 보리를 두드린다. “호호 호해야 여기봐라 호해야 호호 호해야 이보리를 뚜두려서 호호 호해야 곡간에다 채울라네 호호 호해야 개구리보리 때레라 호호 호해야…….” 특히 이 군에는 「달노래」라 하여 종래에 부인들 사이에 흔히 불리던 이른바 「월령가」가 있다. “정월가만 십오일에 망월하시는 소년들아 망월돋아 좋건마느 부모봉양은 뉘가할꼬 그달그믐은 다지내고 이월가면 한식이예 괴지촌에 넋이로다……그달그믐은 다지내고 사월가면 초파일에 앞집이도야 관등달고 뒷집이도야 관등다는데 우리임은 어델가고 관등놀이를 모르시노…….” 「달노래」는 특정한 기능을 가진 노래가 아니며 밭을 매거나 혼자서 오랜 시간 일을 할 때 무료함을 달래며 부른다. 이 밖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메뚜기를 추스리며 아이를 낳았다고 좋아하는 「항굴래비노래」와 「진보청송조리장사」 등 희극적 요소가 있는 서사민요가 전승되는 것은 이 지방이 민요의 고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고장은 인물전설이 많은 지역이다. 특히, 신라시대의 인물전설이 많고, 근대의 인물로는 박문수·정만서·최제우 등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인물전설 외에는 「풍수설화」·「아기장수설화」와 자연물유래담들이 많이 전한다. 현곡면은 최제우가 태어난 곳이고 지금도 동학이 성한 고장이어서 최제우 및 그 아버지 근암(近菴) 최옥(崔鋈)의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최옥은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산림처사로 자처하며 살았는데 과부인 한씨부인을 만나 최제우를 낳았다. 최제우를 낳게 된 내력은 이렇다. 낙방만 거듭하던 최옥이 용담(龍潭)에서 공부를 하다가 깜박 졸았는데, 꿈에 달이 품속으로 사르르 들어왔다. 이 때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된 청주 한씨가 친정인 서면에 와 지내는데 초저녁 꿈에 우물가에 가니 달이 품속으로 들어왔다. 전에는 얌전하기만 했던 사람이 천리라도 걸어야겠다는 듯이 온몸이 가시에 찔려 유혈이 낭자한 채 구미산을 넘어와 보니 불빛이 뻔한 곳이 있는데, 바로 최옥이 공부하는 용담정이었다. 최옥은 인기척에 문을 열고 한씨부인을 맞아 동침을 하여 최제우를 낳았는데, 이 때 최옥에게는 본부인이 있었다. 서면에서 조선 말기에 살았다는 정만서는 가난하고 지체가 낮은 미천한 백성으로 갖은 술책으로 지체 높고 돈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이 고장을 대표하는 시정잡배였다. 어린아이를 잃고 울고 있는 부인을 놓고 정만서가 다른 사람과 부인을 웃기는 내기를 하였다. 우는 부인 곁에 다가가 떠나지 않는 정만서를 보고 부인이 우는 사연을 말하였다. 정만서 또한 슬프다고 하며 다름 아니라 뱃속에서 회충을 낳는데 죽어버려서 슬프다고 하니 부인이 기가 막혀 웃었다. 물론 정만서는 내기에서 이겨 술 한턱을 잘 얻어먹었다. 강동면 호명리의 장군바위는 「아기장수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는 여인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는데 꿈에 백발노인이 “내 아들을 보내줄 터이니 잘 기르라.”고 한 뒤에 보니, 바위 위에 큰 칼을 차고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다. 아이는 여인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밥을 달라 청하며 마을의 왜놈들을 물리치겠다 하였다. 놀란 여인이 마을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니 사람들은 소년장군이 났으니 난리가 날 것이라며 불을 질러 죽여버리고 말았다. 이 때 소년장군이 섰던 바위에 발자국과 칼자국이 남아 있어 장군바위라 하게 되었다. 얼마 뒤에 과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 밖에 오봉산의 「주사암전설(朱砂庵傳說)」·「감은사연기설화」·「용궁바위전설」 등이 전한다. 산업·교통 2008년 현재 경주시의 총면적 중 임야가 67.9%, 농경지가 16.8%, 기타가 15.3%로 경지율은 낮은 반면 산림지역의 비중이 크다. 총경지면적은 223.12㎢로 그 중 논은 161.26㎢로 72.3%를 차지하고 밭은 61.86㎢로 2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강평야는 안강읍의 중앙을 관류하여 동으로 흐르는 토평천(土坪川)이 형산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평야로 안강읍의 동부와 동북부일대 및 강동면의 중앙과 서부일대에 펼쳐져 있으며,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경상북도내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를 이룬다. 평야일대에서는 사과도 많이 재배된다. 주곡 위주의 농업이 행해지고 있으며, 다만 건천지역의 양송이 재배와 내남면과 산내면의 누에치기가 비교적 활발하다. 경주버섯은 건천읍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는데 전국생산량의 24.6%, 도내생산량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사과·배·복숭아·포도가 재배되는데, 사과는 안강·강동·천북면 등의 북부지역, 배는 남부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그리고 돼지·한우·젖소 등이 주로 사육되고 있다. 경주는 한우, 버섯 전국 1위, 보리, 단감, 시설 토마토, 젖소 도 1위, 벼, 돼지 도 2위로 농·축산물 생산의 보고이다. 특산품은 교동에는 전통주인 교동법주, 황남동에서 처음 만들어진 조그마한 팥빵인 황남빵, 감포 앞바다에서 잡아올린 멸치를 짜낸 순수멸치젓이다. 그 외 경주배, 안강단감, 찰토마토, 남산에서 생산되는 자색의 경주옥돌, 동상의 소인이 있는 심장이 약한 환자에게 내복약으로 사용되는 4·5년생 약초인 오수유(吳茱萸), 강강제·완화제로 쓰이는 다년생 초본인 하수오(何首烏)가 있다. 임산물은 1,017,421㎏이 생산되었으며, 주로 버섯·산나물·밤·호두·대추·도토리·산딸기 등이 생산된다. 수산업은 시내의 유일한 어항인 감포(甘浦)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7년 현재 2만 3,743M/T의 어획고를 보이고 있다. 산업구조는 농축수산업이 약 34%, 광공업이 15%, 서비스업 등이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경주의 문화·관광도시의 특성상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다. 산업 및 농공단지는 14개로 용강준공업지역, 8개의 지방산업단지, 5개의 농공단지(안강, 외동, 건천, 내남, 서면)에 모두 186개의 업체가 입주하여 있다. 자동차산업의 영향으로 총 1221개 기업체 중 자동차부품 생산업체가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포항종합제철의 영향으로 연관공업인 안강의 풍산금속공장 등 여러 공장이 입지하고 있으며, 경주의 특색 있는 것으로는 토석유리공업을 들 수 있다. 1976년 착공하여 1982년 준공된 월성원자력발전소는 국내 유일의 가압중수형 원자력발전소로 유명하다. 4기의 중수로 원전이 운영 중으로, 67만 8천㎾인 1호기는 83년에, 70만㎾급인 월성 2,3,4호기는 각각 97,98,99년에 준공되어 정상 운전 중에 있으며, 신월성 1,2호기가 건설 중에 있다. 발전소를 중심으로 양남면·양북면·감포읍 일대는 1976년 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상업은 신라의 수도였던 까닭에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490년(소지왕 12) 3월에 경도시(京都市), 509년(지증왕 10)에 동시(東市)가 개설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1830년대에는 사평·구어·읍내·부내·대창장 등의 5일장이 있었고, 1920년대 후반까지도 5일장에서 거래가 활발하였다. 특히 부내장은 대구 부내장과 더불어 영남의 2대시장으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컸다. 민족항일기 말 중앙선·대구선의 개통과 포항∼일본 서북부를 잇는 항로의 개설로 교통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여 경주시의 상업은 급속히 발달하였다. 그러나 정기시장은 쇠퇴하였고,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유명무실화되었다. 시가의 번창과 더불어 공설·상설시장은 증가하여 1962년에는 불국사가축시장, 1963년 청과물도매시장, 1967년 경주가축시장이 개설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성도·성간·불국사 상가 등이 상설화되었고, 남흥·황오시장은 현대식 민영시장으로 변모하였다. 1982년에는 경주민영시장이 현대식 사설소매시장으로 개설되었으며, 농·수산도매시장도 1980년 이후 세 군데 개장되었다. 1985년경에는 불국사장(4·9일장)·감포·하서·안강·입실·의곡·용산·건천·아화·어일 등 10개의 5일장이 공설로 열리고 있었다. 정기시장에서는 농수산물·공산품·생활필수품·산나물·약초·소 등이 주로 거래된다. 특히, 불국사장에서는 농산물과 소, 감포장과 하서장에서는 수산물, 입실·의곡·건천장에서는 농산물, 의곡장에서는 산채, 안강장에서는 소와 약초, 아화장에서는 소가 각각 많이 거래되고 있다. 2008년 현재 공설시장 11개소(감포, 안강, 건천, 외동, 양북, 양남, 산내, 서면, 성동, 구정, 불국사상가)와 사설시장 3개소가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며, 국도 7호의 포항∼울산간의 도로가 지나는 등 3호·4호·20호가 지나며, 이 외에도 지방도가 곳곳에 있어 편리하다. 철도의 중앙선과 동해남부선, 경부고속선도 지난다. 관광 신라 천 년의 고도로서 찬란한 신라문화의 보고인 경주는 자연박물관이자 세계적인 고적관광도시이다. 1968년 12월에 경주고적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관광도시로 발달하였다. ‘보는 관광지’에서 ‘즐기는 관광지’로 유도하기 위해 1974년부터 계속하여 경주관광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어오고 있다. 유네스코에 의해 불국사, 석굴암(1995.12.9)과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산성 등 5개의 경주역사유적지구(2000.12.2), 양동마을(2010.7.31)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3개 사적지구(토함산·오릉·무열왕릉·월성·남산·김유신장군묘·미추왕릉·황룡사지·문무대왕릉·금강산·명활산·괘릉 등)에 대한 문화재 복원·보수·정화작업이 추진되었으며, 보문지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국제적인 위락시설을 갖춘 보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2009년 현재 문화재는 국보 32점, 보물 82점, 사적 및 명승 2점, 사적 76점, 중요민속자료 16점, 중요무형문화재 2점, 천연기념물 3종, 기타 97점으로 총 313점이며, 전국의 약 4%, 경상북도의 약 22%를 차지한다. 문화재는 불국사와 토함산·금강·남산·서악·송화 등 5개의 국립공원지구에 집중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기암고봉(奇巖高奉)의 남산(468m)은 30여 개의 깊은 하곡(河谷)에 백여 개의 절터와 기암괴석에 새겨진 불상·석탑 등 불교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남산 서편기슭에는 석불입상·석불좌상·경애왕릉·삼릉 등과 포석계곡·선방계곡·삼릉계곡이 곁들여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과 신라의 종말을 알리는 경애왕의 비극이 서려 있는 포석정이 있다. 포석정은 진한 6촌의 시조를 모신 양산재 입구에서 1㎞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신라의 종말을 알리는 경애왕의 비극이 서려 있는 포석정, 삼국시대에 조성되어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소가 일품인 배리삼존석불, 10곳의 절터와 14체의 석불상이 있는 삼릉골, 병풍바위에 살아 있는 듯 조각되어 있는 마애삼존육존불상 등이 볼 만하다. 불무사 대웅전 뒤쪽에 자리한 높이 9m, 둘레 30m의 여래상·보살상·비천상·나한상 및 탑과 사자 등 3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형상이 조각되어 있는 부처바위, ‘남산 아줌마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남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부처인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시내중심부 황남동의 4만여 평에 천마총을 비롯하여 20기의 능이 자리하고 있는 고분공원이 있다. 인왕동의 반월성 일대에는 첨성대·석빙고·안압지와 신라 천 년의 문화·예술·역사·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주국립박물관이 있다. 구황동에는 황룡사지와분황사가 있으며 서악동에는 무열왕릉과 진흥왕릉·문성왕릉 등의 고분군이 있다. 또한 토함산에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어 한국적 불교사상과 인공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남동쪽 장항리탑정계곡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주요 명승고적으로는 나원리 오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가장 완벽한 묘제(墓制)를 보여주는 괘릉을 비롯하여 부산성(富山城)·경덕왕릉·흥덕왕릉·원원사지·관문성·기림사 등이 있다.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의 문무왕 해중릉(海中陵)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와 마주한 해변에는 봉길해수욕장이 있다. 안강에서 서쪽으로 7㎞되는 자옥산(紫玉山) 아래 절승지에는 1572년(선조 5) 건립된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고, 외동읍 방어리와 괘릉리에 걸쳐 영지가 있으며, 현곡면 가정리에는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출생하고 묻힌 곳인 용담정(龍潭亭)이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로는 양동이씨와 경주손씨의 동족마을인 양동민속마을이 있다. 크고 작은 150여 채의 조선시대 건축양식의 가옥과 2채의 사당·정자 15개소·학당 등이 계곡을 따라 여기 저기에 자리하여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 가운데서는 보물 3점, 민속자료 12점, 지방유형문화재 4점이 포함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회재이언적 선생의 선친인 이번이 살던 고택인 무첨당, 회재선생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중종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은 집인 향단과 조선 중종 때의 청백리 우재손중돈이 분가하여 살았던 관가정이 있다. 많은 민속가옥이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안동하회마을과 더불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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