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일 월요일

신사임당. 申師任堂. 1

신사임당. 申師任堂.

신사임당은 1504년에 강원도 강릉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공부와 수 놓기를 좋아했으며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약을 받았던 조선 시대인데도 신사임당이 일찍이 학문을 익히고 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 있었던 것은 외가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을 열심히 가르친 덕택도 있었다.
신사임당은 풀이나 벌레, 포도 등을 아주 잘 그렸다고 한다. 
어렸을 때 마루에서 빨간 열매가 달린 꽈리나무 위에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잠깐 방에 들어간 사이 수탉이 진짜 벌레인줄 알고 마구 쪼아 먹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이다. 
그녀는 시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녀가 지은 대표 시인 <유대관령망친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대관령망친정’이란 ‘대관령을 넘으면서 친정을 돌아보다.’라는 뜻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머리 돌려 북평 땅을 한 번 바라보니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신사임당은 아내와 어머니로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이원수와 결혼한 이후 그녀는 한동안 친정에 머무르면서 아들 넷과 딸 셋을 낳아 키웠다. 
어려서부터 바른 습관을 갖도록 엄격하게 교육시켜 모두 훌륭하게 자랐는데, 그 가운데서도 셋째 아들인 율곡 이이의 인품과 학문은 따를 사람이 없었다. 
남편인 이원수는 사임당의 조언을 들어 당쟁으로 인한 화를 면했다고도 한다.

신사임당의 생애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바느질과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꾸준히 교육을 받아 학식이 높았습니다.

결혼 후에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는데, 그중에서 이이는 조선 시대의 뛰어난 학자로 존경받았습니다.
신사임당의 삶과 그 시기의 가족 제도
신사임당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에 따라 결혼한 후에 오랜 기간 친정살이를 하였습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 초만 해도 여성이 친정살이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합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 초는 남녀가 거의 평등했던 가족 제도에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로 변해 가던 시기였습니다. 
신사임당이 좀 더 늦게 태어났다면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사임당
신사임당
오죽헌(강원도 강릉시)
오죽헌(강원도 강릉시)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

강릉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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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竹軒洞)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이미지 크게보기
지정종목보물
지정번호보물 제165호
지정일1963년 01월 21일
시대조선
종류/분류목조건물
크기정면 3칸, 측면 2칸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었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4면을 굵은 댓돌로 한 층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건물을 향하여 왼쪽 2칸은 대청이며 오른쪽 1칸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대청 앞면에는 각각 띠살문의 분합()을, 옆면과 뒷면에는 2짝 씩의 판문()을 달고, 그 아래 벽면에 머름을 댔다. 
온돌방은 뒤쪽 반 칸을 줄여 툇마루를 만들고, 앞벽과 뒷벽에 두짝열개의 띠살문을 단 것 이외는 모두 외짝문이다. 
천장은 온돌방이 종이천장이고 대청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에 걸쳤으나, 온돌방과의 경계에 있는 대량()은 그 아래 중앙에 세운 기둥으로 받쳤다.

대량에서 좌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을 배치하였으며, 그 상부에는 지붕 합각() 밑을 가리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대량 위로 종량()과의 사이에는 대공을 받쳤는데 그 형식은 오래된 수법을 따르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주심포()집에서 볼 수 있는 대공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기둥머리에 배치된 공포()는 주택건축에서 보기 드문 이익공형식()이며 그 세부 수법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익공집 건축으로 추측된다. 
쇠서의 곡선에는 굴곡이 남아 있고, 첨차()의 형태는 말기적인 주심포집과 공통되는 특징을 지녀 주심포집에서 익공집으로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조이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초충도"는 풀과 곤충을 소재로 한 그림입니다.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초충도"는 8개의 작품으로 풀과 곤충뿐만 아니라 채소, 과일, 꽃, 새 등도 함께 그렸습니다.
신사임당의 작품은 섬세하고 여성적인 표현과 색감으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초충도"로 손꼽힙니다.
초충도
초충도가지와 나비
초충도
초충도

이이는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예술적인 재능과 어진 성품을 자세히 기록하여 남겼다.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한 오죽헌에는 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큰 딸 매창의 매화도, 이이의 《격몽요결》, 넷째 아들 옥산의 초서 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신사임당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모범 여성으로 꼽힌다. 
그녀는 충과 효, 열 등 유교의 윤리에서 권장하는 여성의 덕목을 잘 실천했을 뿐 아니라, 시와 그림에 뛰어난 예술가로서도 업적을 남겼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유서 깊은 오죽헌은 지금도 강릉에 남아 있다. 
오죽헌은 별당 건물이고 본채는 사라진 것으로 추정됨.
오죽헌에 가면 이이가 쓴 《자경문》의 문장을 볼 수 있어. 또 오죽헌 주위에 자라는 대나무 숲과 나이가 600살이 넘은 배롱나무도 볼 수 있다. 강릉의 운치와 율곡 이이의 애정이 서린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로 지정 되었다.
강원도는 1395년(태조 4년) 당시의 교주강릉도()를 개편하여 신설한 도인데 도 안의 큰 고을인 강릉()의 ‘강()’자와 원주()의 ‘원()’자를 따서 강원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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