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은 1504년에 강원도 강릉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공부와 수 놓기를 좋아했으며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약을 받았던 조선 시대인데도 신사임당이 일찍이 학문을 익히고 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 있었던 것은 외가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을 열심히 가르친 덕택도 있었다.
신사임당은 풀이나 벌레, 포도 등을 아주 잘 그렸다고 한다.
어렸을 때 마루에서 빨간 열매가 달린 꽈리나무 위에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잠깐 방에 들어간 사이 수탉이 진짜 벌레인줄 알고 마구 쪼아 먹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이다.
그녀는 시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녀가 지은 대표 시인 <유대관령망친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대관령망친정’이란 ‘대관령을 넘으면서 친정을 돌아보다.’라는 뜻이다.
신사임당은 아내와 어머니로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이원수와 결혼한 이후 그녀는 한동안 친정에 머무르면서 아들 넷과 딸 셋을 낳아 키웠다.
어려서부터 바른 습관을 갖도록 엄격하게 교육시켜 모두 훌륭하게 자랐는데, 그 가운데서도 셋째 아들인 율곡 이이의 인품과 학문은 따를 사람이 없었다.
남편인 이원수는 사임당의 조언을 들어 당쟁으로 인한 화를 면했다고도 한다.
신사임당의 생애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바느질과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꾸준히 교육을 받아 학식이 높았습니다.
결혼 후에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는데, 그중에서 이이는 조선 시대의 뛰어난 학자로 존경받았습니다.
강릉 오죽헌
[江陵 烏竹軒]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竹軒洞)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4면을 굵은 댓돌로 한 층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건물을 향하여 왼쪽 2칸은 대청이며 오른쪽 1칸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대청 앞면에는 각각 띠살문의 분합(分閤)을, 옆면과 뒷면에는 2짝 씩의 판문(板門)을 달고, 그 아래 벽면에 머름을 댔다.
온돌방은 뒤쪽 반 칸을 줄여 툇마루를 만들고, 앞벽과 뒷벽에 두짝열개의 띠살문을 단 것 이외는 모두 외짝문이다.
천장은 온돌방이 종이천장이고 대청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에 걸쳤으나, 온돌방과의 경계에 있는 대량(大樑)은 그 아래 중앙에 세운 기둥으로 받쳤다.
대량에서 좌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衝樑)을 배치하였으며, 그 상부에는 지붕 합각(合閣) 밑을 가리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대량 위로 종량(宗樑)과의 사이에는 대공을 받쳤는데 그 형식은 오래된 수법을 따르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주심포(柱心包)집에서 볼 수 있는 대공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기둥머리에 배치된 공포(栱包)는 주택건축에서 보기 드문 이익공형식(二翼工形式)이며 그 세부 수법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익공집 건축으로 추측된다.
[江陵 烏竹軒]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4면을 굵은 댓돌로 한 층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건물을 향하여 왼쪽 2칸은 대청이며 오른쪽 1칸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대청 앞면에는 각각 띠살문의 분합(分閤)을, 옆면과 뒷면에는 2짝 씩의 판문(板門)을 달고, 그 아래 벽면에 머름을 댔다.
건물을 향하여 왼쪽 2칸은 대청이며 오른쪽 1칸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대청 앞면에는 각각 띠살문의 분합(分閤)을, 옆면과 뒷면에는 2짝 씩의 판문(板門)을 달고, 그 아래 벽면에 머름을 댔다.
온돌방은 뒤쪽 반 칸을 줄여 툇마루를 만들고, 앞벽과 뒷벽에 두짝열개의 띠살문을 단 것 이외는 모두 외짝문이다.
천장은 온돌방이 종이천장이고 대청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에 걸쳤으나, 온돌방과의 경계에 있는 대량(大樑)은 그 아래 중앙에 세운 기둥으로 받쳤다.
대량에서 좌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衝樑)을 배치하였으며, 그 상부에는 지붕 합각(合閣) 밑을 가리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대량에서 좌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衝樑)을 배치하였으며, 그 상부에는 지붕 합각(合閣) 밑을 가리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대량 위로 종량(宗樑)과의 사이에는 대공을 받쳤는데 그 형식은 오래된 수법을 따르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주심포(柱心包)집에서 볼 수 있는 대공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기둥머리에 배치된 공포(栱包)는 주택건축에서 보기 드문 이익공형식(二翼工形式)이며 그 세부 수법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익공집 건축으로 추측된다.
기둥머리에 배치된 공포(栱包)는 주택건축에서 보기 드문 이익공형식(二翼工形式)이며 그 세부 수법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익공집 건축으로 추측된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초충도"는 풀과 곤충을 소재로 한 그림입니다.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초충도"는 8개의 작품으로 풀과 곤충뿐만 아니라 채소, 과일, 꽃, 새 등도 함께 그렸습니다.
신사임당의 작품은 섬세하고 여성적인 표현과 색감으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초충도"로 손꼽힙니다.
이이는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예술적인 재능과 어진 성품을 자세히 기록하여 남겼다.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한 오죽헌에는 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큰 딸 매창의 매화도, 이이의 《격몽요결》, 넷째 아들 옥산의 초서 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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