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31일 수요일

도선국사 마을

도선국사, 마을'


마을 입구의 커다란 나무가 이 마을이 오래된 마을임을 알려준다. 
도선국사마을이란 이름은 마을에 남겨진 도선국사의 이야기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백운산을 마주 보고 있으며 앞으로 산세가 펼쳐지는 곳에 위치해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마을이 위치한 곳이 좋은 지형임을 느낄 수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집들 사이로 돌담길 놓인 마을 풍경이 옛날 시골 모습 그대로이다. 
소문난 체험마을로 여러 가지의 체험을 진행하지만, 그중 특별한 체험으로는 선차체험이 있다. 
‘선을 알고 차를 안다’고 하여 선차라 부르는데 백운산 야생차밭으로 가 차 잎을 따서 직접 덖어 보고 그것으로 차를 우려내어 마셔보는 체험이다. 
이 체험을 할 수 있는 때가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이니 체험이 가능한지 미리 문의하고 이때 맞춰 찾아가면 좋겠다. 
이 시기 외에는 마을에서 생산된 차로 다도체험이 가능하다. 


개요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에 자리한 양산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풍광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도선국사의 유적을 품고 있어 농촌 체험과 도선국사 유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마을이다. 
도선국사마을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 역시 도선국사의 유적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선국사 유적지 체험은 마을 입구 정자에서 시작해 마을 일배미, 옥녀배혈을 거쳐 옥룡사지와 동백림을 돌아본 뒤 마을 입구로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된다. 
유적지 답사 체험에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도선국사 유적을 답사한 후에는 손두부와 고로쇠 된장 등을 만들어보는 도선 향토 음식 체험을 한다. 
맷돌로 콩을 갈고 여기에 간수를 넣어 손두부를 만들어보는 손두부 체험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체험이다. 
완성된 손두부는 양껏 맛볼 수 있다. 도선국사가 수행 중 마셨다는 고로쇠물로 만드는 된장 맛 역시 일품이다.
다승()이라고 불린 도선국사의 이름을 딴 도선국사마을에서는 다도 체험도 빼놓을 수가 없다. 
손수 수제차를 만들고 이를 시음해볼 수 있는 도선 선차 체험도 가능하다. 차 만들기 체험이 끝난 후에는 인근 사찰의 스님들에게서 다도에 대한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도선국사마을도 농촌체험마을답게 다양한 농촌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해두고 있다. 
농촌 체험은 계절별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봄에는 야생 녹차 체험, 산나물 채취, 고로쇠 된장 만들기, 여름에는 자두 따기 가을에는 밤 줍기, 감 따기 등을 할 수 있다. 
이들 체험 종류는 날씨나 기타 사정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도선국사 체험과 도선 공예 등의 프로그램은 연중 상시로 체험 가능하다.

도선은 승려로서보다는 풍수지리에 능통한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풍수설과 연관된 것들이며 후대에 여러 갈래로 가지를 쳐서 민담화되기까지 했으므로, 도선이라는 사람 자체가 전설적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행적을 적은 것으로는 고려 때의 학자이자 문신인 최유청(1095~1174)이 비문을 지은 전남 광양 옥룡사의 징성혜등탑(),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경석(1595~1671)이 비문을 지은 영암 도갑사의 도선수미비, 『동국여지승람』, 『도선국사실록』 등이 있고, 그밖에도 각지에서 전해지는 구전설화들이 있다. 
옥룡사 비문을 제외하면 다른 기록들은 대체로 구전설화의 내용과 비슷하다.

우선 옥룡사에 있던 비의 비문을 보면, 도선은 영암 사람으로 성은 김씨였으며 흥덕왕 2년(827)에 나서 효공왕 2년(898)에 타계했다. 
그의 어머니는 강씨 김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맑은 구슬을 삼키는 꿈을 꾼 후 도선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던 도선은 열다섯 살 때 월유산 화엄사에서 머리를 깎고 유명한 절과 산을 다니며 수행하다가, 문성왕 8년(846)에 동리산 태안사의 혜철을 찾아가 배우고 크게 깨쳤다. 
그후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옥룡사에 머물렀는데 언제나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들은 헌강왕은 그를 궁궐로 초빙하여 법문을 들었다. 
도선은 그후 태안사로 돌아가 7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효공왕은 그에게 요공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도선수미비의 비문을 토대로 이루어진 『도선국사실록』에는 이와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 
도선의 어머니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처녀 적에 연못 속에 있는 오이를 먹고 아이를 가져서 도선을 낳았다. 
처녀가 아이를 낳고 보니 남의 이목이 두려웠으므로 할 수 없이 아이를 숲에다 버렸다. 며칠 후 가 보았더니 비둘기떼가 아이를 보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신기하게 여겨서 도로 데려다 길렀다. 
아이는 아버지가 없었으므로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그 아이는 열세 살 때 당나라 배를 얻어타고 당나라로 가서 일행()선사에게 풍수비보설을 배웠다. 
그는 헌강왕 1년(875)에 49세의 나이로 신라로 돌아온 후, 송악(개성) 왕륭의 집에서 훌륭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왕건의 출생을 예언했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국의 지기()를 비보하는 사찰 500여 곳을 건립했다.

이밖에도 도선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갈래가 많아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전설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행선사는 당나라 초기의 사람이었고 도선은 당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살았으므로, 우선 도선이 일행에게서 풍수설을 배웠다는 것은 연대가 맞지 않는다.

어쨌든,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을 예언한 덕에 고려 역대 왕들의 극진한 존경을 받았다. 
고려 숙종은 그에게 대선사를 추증하고 왕사를 추가했으며 인종은 선각국사를 추봉했다. 
태조 왕건은 오선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아, 자손들에게 남긴 훈요십조() 가운데 2조에서 “신설한 사원은 도선이 산수의 순역()을 점쳐 놓은 데 따라 세운 것이다. 
그의 말에 ‘정해 놓은 이외의 땅에 함부로 절을 세우면 지덕을 손상 하고 왕업이 깊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함부로 절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도선에 관한 설화는 각처에 전해지지만 그의 출생지인 영암에는 성기동, 최씨원, 구림, 도갑사, 구정봉 등 구체적인 ‘물증’ 까지 내세운 이야기가 많다. 
그중 군서면 성기동은 요즘 왕인의 탄생지로서 더 유명하지만 도선의 출생과도 연관된 곳으로 전해진다. 
도선의 어머니 최씨가 성기동 골짜기에서 빨래를 하다가 물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잉태하여 도선을 낳았다는 것이다.

지금 왕인 유적지 안에 있는 “옛 최씨원으로 지금 조가장이다”()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바로 도선의 어머니 최씨가 살던 터인데, 그곳에 길이 한 자가 넘는 참외가 자라나서 그것을 먹고 도선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의 구림리()는 도선이 태어난 후 버려졌다가 비둘기떼의 보살핌을 받은 곳이라고 해서 ‘비둘기 숲’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계속 설화를 따라가면, 도선을 데려온 최씨 부인은 그를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길렀고, 성장한 도선은 중국에 가서 풍수지리설을 배우고 돌아온 후 피폐한 문수사터에 다시 절을 짓고 도갑사라고 했다. 
도선은 도갑사에 머물다 떠나면서, 내가 떠난 후 철모 쓴 자가 와서 절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대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철모 쓴 사람들이 절에 불을 질렀다.

도선이 풍수설을 배운 과정에 대해서는 중국에 가서 배워 왔다는 설과 함께 지리산 도인에게서 비법을 배웠다는 설, 여우 여인에게서 구슬을 얻은 뒤에 지리에 통달하였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월출산 구정봉의 바위 구멍들은 조선을 약하게 만들려고 풍수설을 거꾸로 가르쳐준 중국 사람들의 흉계를 도선이 알아채고, 그들을 혼내 주기 위해 방아를 찧은 자국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도선에 관한 설화들은 조선 이후로 들어와 음택풍수설이 널리 퍼지고 풍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더욱 많은 가지를 쳤다. 
이는 도선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상도 포함한 것으로서 매우 흥미롭다.

고로쇠 로 간장과 된장. ...

마을에서 내려오다 보면 고로쇠 간장·된장으로 유명한 나종연 농장이 길가에 있다. 
고로쇠를 가지고 우리 전통 장류를 만드는 곳으로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주인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곳이다. 
잠시 들러 마당에 세워져 있는 장독대도 구경하고, 요한 장류가 있으면 물어보고 구매...


염색체험, 손두부 만들기 체험, 우리밀로 빚는 수제비 만들기 체험 등이 가능하다. 

마을 위로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으니 올라가 물 한 모금 들이켜 보자. 

물맛이 좋아 옛날부터 고을 원님의 전용 식수로 이용되었으며 지금도 광양뿐 아니라 인근 여수와 순천에서 물을 뜨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본 정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행 시에는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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