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페루.

페루"
정식 국가 명칭은 페루 공화국(República del Perú)이다. 면적은 1,285,216㎢로 한반도의 약 6배이다. 인구는 2012년 기준으로 3013만 명이다. 수도는 리마(Lima)이며, 리마 인구는 약 930만 명이다. 페루의 주요 도시는 남부 고산도시 아레키파(Arequipa, 87만), 북부 해안도시 투루히요(Trujillo, 63만), 정글 지역의 이키토스(Iquitos, 49만), 잉카제국 수도였던 쿠스코(Cusco, 35만) 등이다.
인종 구성은 원주민인 인디오가 45%, 혼혈계인 메스티소가 37%, 백인이 15%, 흑인과 동양인이 3%이다. 중국계가 약 100만 명, 일본계가 약 10만 명으로 아시아계가 4%~5%라는 비공식 통계가 있다. 언어는 스페인어다. 케추아어는 1975년에 공용어로 추가되었다. 이 외에도 아이마라(Aymara)어 및 아샤닌카(Ashaninka)어와 같은 원주민 언어가 일부 사용된다. 종교는 가톨릭교가 90.5%, 기독교 6.5%, 무교 및 기타가 3.0%이다.
페루의 국가 형태는 공화국이다. 정치 체제는 대통령 중심제(임기 5년)와 의원단원제(임기 5년)이다. 2012년 현재 대통령은 2011년 7월 28일에 취임한 오얀타 우말라1)이다. 제1부통령은 마리솔 에스피노사(Marisol Espinoza)이며, 제2부통령은 오마르 체하데(Omar Chehade)이다. 외교장관은 라파엘 론카글리올로(Rafael Roncagliolo)이다. 페루 독립일은 1821년 7월 28일이다. 군사력을 살펴보면, 총병력이 12만 7000명으로 육군은 7만 6000명, 해군 3만 1000명, 공군 2만 명으로 구성된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은 1565억 미국달러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은 5224미국달러이다. 경제성장률은 5.5%(2011년 기준)이다. 2010년 기준으로 수출은 337억 미국달러이며, 수입은 257억 미국달러이며, 외환보유액은 441억 미국달러, 공공외채는 332억 미국달러이다. 화폐단위는 솔(PEN, PeruvianNueve Sol)이며, 2012년 1월 기준으로 1미국달러 당 2.70솔이다. 한국과 페루의 교역현황(2011년 1월~9월)을 보면, 한국 수출이 10억 2000만 미국달러이며, 한국 수입이 16억 2000만 미국달러이다.


추픽추 Machu Picchu.

세계의명소"

태양의 도시, 공중 도시, 그리고 잃어버린 도시. 장구한 세월 동안 세속과 격리되어 유유자적함을 고이 간직한 곳. 그래서 더욱 신비하고 풀리지 않는 영원의 수수께끼가 가슴마저 벅차게 하는 그곳, 바로 남미의 얼굴 마추픽추다.

해발 2,430m에 자리한 마추픽추(Machu Picchu)는 열대 산악림 가운데에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잉카 제국의 절정기에 건설되었으며 가장 놀라운 도시 창조물로 평가될 만한 이 유적의 거대한 벽, 테라스, 경사로는 마치 자연적으로 깎여서 형성된 절벽처럼 보인다. 안데스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 있는 이곳의 자연 환경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아마존 강 상류의 분지를 에워싸고 있다.
기차가 달릴 수 없는 종착역 마추픽추. 아담한 마추픽추 역을 빠져나와 사방을 둘러보아도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유적지답게 마추픽추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웅장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마추픽추 유적지는 여러 신전과 궁전을 중심으로 잉카인들이 살았던 주택, 곡식과 작물을 재배했던 계단식 경작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에 자리한 마추픽추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유적지입니다. 정확히 누가 왜 건설했고, 어떤 사람들이 살았으며, 이토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도시가 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는지가 모두 밝혀지지 않은 곳입니다. 잉카인들이 세웠고, 그들이 살았다는 것을 빼고는 모두 추측만 하고 있지요. 베일에 싸인 ‘시간을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 여행??? 

발견될 때까지 수풀에 갇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고 공중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여 우주적 차원의 문명 작품으로까지 불리는 곳. 그러나 분명 잉카의 땅이며, 과거 잉카의 고도인 곳. 제국의 마지막 성전이 벌어지고 그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을 함께한 곳. 잉카 최후의 요새 마추픽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보면.
안데스의 그 험난함을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굽이치는 길 따라 이어지는 하얀 눈이 있는 산맥들,바로 그 안데스의 정상을 거침없이 달린다. 10여 년 전엔 비포장 길이었으나 지금은 잘 포장된 신작로길이다. 6,000미터 급의 만년설도 고산지대의 호수와 함께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있다. 그 높은 곳의 호수에서 플라밍고와 라마, 산 오리들이 유유히 노니는 장면은 경외감과 함께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산맥으로 이어진 길들은 다시 산허리를 돌아 강으로 이어지고 있고,강물은 여름에 내린 폭우로 황허()의 물처럼 진한 흙탕물을 머금은 채 안데스의 계곡을내달리고 있다. 리오밤바, 우루밤바, 코차밤바. 밤바라 일컫는 무수한 계곡들이 안데스와 쿠스코를 이어간다. 안데스의 험로를 지나면드디어 포근한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로의 입성.
한없이 이어지는 원시의 초원, 4,000m급 안데스 고산의 만년설, 이어지는 농가의 한가로움, 풀 뜯는 소들과 목동들의 평화로움은 이곳 자연이 가져다주는 경이로움의 선물이다.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맑고 고운 햇살이 전해 주는 따사로운 행복감은 가장 큰 선물이 된다. 쿠스코에서 출발한 기차는 스위치백을 거듭하며 고지를 오르더니 이어지는 강과 산길을 굽이치며 마추픽추로 향한다.
잉카의 전설.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정상에 당도했다. 주위를 빙 둘러 높이 솟아있는 기암절벽들과 천 길 낭떠러지 우루밤바 강의 힘찬 물줄기, 그리고 열대 우림의 무성한 정글들이 공중 도시의 외로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대변한 한상적이다.
잉카인이 돌을 다룬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들은 20톤이나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수십 ㎞ 떨어진 산 위로 날라서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면도날도 드나들 틈 없이 정교하게 돌을 쌓은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며, 가장 큰 돌은 높이 8.53m 무게 361톤에 달한다.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천상의 음률이 공중 도시의 신비를 감싸고 돈다. 운무()에 휩싸여 더욱 신비롭다. 잉카인들의 한이 서린 페루 전통민요가 원주민 악기 삼포냐의 음률로 울려 퍼지는 순간, 오랜 역사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한채 공중도시를 뒤로하고 쿠스코로 향하게 된다. 잉카 문명의 영원한 수수께끼 마추픽추는 왕조의 슬픔과 인디오 문명의 전설을 남긴 채 우리의 뇌리 속에 영원한 수수께끼로 잠들고 있다. (노래도있다)
마추픽추에는 평야가 적었지만, 잉카인들은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넉넉히 먹고 살았다.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으며 그 고대의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 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역사 속 문명과 패망,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 주는 잉카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다.
1만 명이나 되는 잉카인들이 살던 요새도시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인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발견되었고, 발견 당시 마추픽추는 세월의 풀에 묻혀 있던 폐허의 도시였다.잉카인들이 더욱 깊숙이 숨기 위해 처녀들과 노인들을 마추픽추의 한쪽 묘지에 묻어버리고 제2의 잉카 제국을 찾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마추픽추는 세계인들의 뇌리 속에 영원한 수수께끼 도시로 남고있다.
1911년 발견되기 전까지 수풀에 묻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에 "잃어버린 도시" 혹은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여 "공중 도시"라고 불린다. 페루는 수도 리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가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마추픽추는 산꼭대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 있을 때가 많아 산 아래에선 이 도시 존재를 확인할 길은 없다.
인티우아타나
오두막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장의석’이라고 불리는 돌을 만날 수 있어요. 2단과 3단으로 깎은 커다란 돌인 장의석은 특별한 장식이나 문양이 없어 평범한 바위처럼 보여요. 정확하게 무슨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양과 위치로 보아 의식을 치르거나 행사를 할 때 제물을 올려놓았던 제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의석 유적지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돌로 만든 문이 나옵니다. 얼핏 보면 직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꼼꼼히 살펴보면 잉카의 전형적인 출입문 형태인 사다리꼴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문은 돌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답니다. 출입문을 통과하면 신전, 궁전, 광장, 주택 등이 모여 있는 커다란 유적지가 보입니다.

마추픽추 유적지 중 가장 먼저 둘러보아야 할 곳은 ‘인티우아타나’입니다. 인티우아타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유적이에요. 넓은 바위 위에 기둥 모양으로 깎은 돌이 솟아 있지요. 케추아 어로 ‘인티’는 태양을 뜻하고, ‘우아타나’는 연결이란 뜻이라고 해요. 즉 인티우아타나는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이며,
인티우아타나는 해시계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잉카인에게는 단순한 해시계가 아니라 태양을 붙잡아 바위에 묶어 놓는 성스러운 장소엿다.
동짓날이 되면 신관이라 불리는 제사장이 잉카인들이 숭배했던 태양을 붙잡아 이곳에 묶어 두는 의식을 치렀다고 해요. 잉카인들은 인티우아타나를 매우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잉카인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지에는 항상 인티우아타나가 세워져 있다.
잉카인들의 흔적
인티우아타나 아래쪽에는 중앙 광장이 있습니다. 중앙 광장은 마추픽추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으로 주변에는 여러 신전과 궁전이 있고, 잉카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수로가 있습니다. 중앙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말굽 모양으로 생긴 태양의 신전입니다.

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 있는 200여 개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모양을 자랑하지요. 커다란 바위 위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돌을 쌓은 탑 모습으로, 태양의 신전에는 2개의 창문이 있어요.
그 가운데 동남쪽 창문은 동짓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창문을 통과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태양의 신전은 태양의 후예라는 사실을 커다란 자랑으로 여겼던 잉카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태양의 신전 주변에는 왕녀의 궁전을 비롯하여 왕릉과 곡식 창고, 향기의 방,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작은 광장 등이 있어요. 태양의 신전 남쪽에 붙어 있는 왕녀의 궁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서는 드물게 2층으로 지은 건물이에요.
잉카 건축 양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두꺼운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추픽추에서 유일하게 1층과 2층이 안에서 연결되지 않고 바깥 계단을 이용하도록 설계된 특이한 건물입니다. 발굴 당시 이곳에서는 나무로 만든 기둥과 지붕을 받치고 있던 돌쐐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신비로운 유적지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던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고고학자 히람 빙엄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히람 빙엄은 기록과 자료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며 안데스 산맥을 탐험하여, 숨어 있는 고대 유적지 마추픽추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마추픽추를 발견한 지 10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한 곳인지, 건설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다만 유적지와 유물, 자료를 토대로 학자들이 추측한 결과, 15세기 중반에 잉카인의 여름 궁전이나 왕의 은신처로 건설되었을 거라고 들합니다.

잉카인들이 사용했던 케추아 어로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마추픽추 유적지는 젊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우아이나픽추와 늙은 봉우리인 마추픽추 봉우리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그럼에도 이 유적지가 마추픽추로 불리게 된 것은 대부분의 유적지가 늙은 봉우리 아래 흩어져 있기 때문에.
잉카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마추픽추에 여행하면 좋읍니다.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순환 버스를 타면 쉽게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나는 걸어서 유적지까지 오르곤 한답니다.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고 비포장도로를 걸어가야 하지만 오르는 길목과 계단에서 마추픽추의 신비로운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추픽추 유적지는 깊은 산속에 있는 탓에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습이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곳에서는 유적지의 일부가 보이지만 몇 발자국만 더 이동하면 곧 사라져 버리지요. 한마디로 참으로 신비로운 유적지라고 말할 수 있다.
산모퉁이를 돌 때면 어김없이 다른 풍경을 보여 주는 웅장한 안데스 산맥과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우루밤바 강이 연출하는 풍경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장관이다.

마추픽추 유적지에 오르면 작은 오두막이 세워진 전망대가 나옵니다. 마추픽추를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오두막 전망대에서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면 사방이 험준한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하늘에 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한다.

마추픽추 유적지는 안데스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한눈에도 천혜의 요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울창한 삼림과 뾰족한 봉우리들이 외부 세계와 격리시켜 거이 환상적이다.
해발 2400m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평탄하답니다. 자연 지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건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의 신전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굴이 있어요. 일명 왕릉으로 불리는데, 이 동굴이 어떤 곳이었는지에 관한 유물이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아요. 자연 동굴과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을 보고 왕이나 절대 권력자의 무덤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태양의 신전 북쪽에는 잉카인들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수로가 남아 있어며, 잉카인들은 물과 돌을 이용하여 뛰어난 건축술을 보여 준 민족 입니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기 어렵지만 바위뿐인 유적 사이로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것도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돌을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지요. 이 관개 수로는 과학이 발달한 지금 보아도 감탄할 정도다.
태양의 신전 북서쪽에는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해가 뜨는 동쪽 벽에 3개의 창문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신전은 그리스나 로마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신전 건물처럼 4개의 벽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3개의 벽면을 갖고 있어요. 잉카인들은 신전을 지을 때 이처럼 3개의 벽면만 짓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런 건물은 다른 잉카 유적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왕릉 앞에는 또 다른 신전인 콘도르 신전이 있습니다. 콘도르 신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 남아 있는 신전 가운데 가장 작은 신전이에요. 이곳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콘도르 조각이 바닥에 묻혀 있어요. 잉카인들은 오랫동안 콘도르를 신성한 동물로 생각했고, 살아 있는 상태로 신에게 바쳤다고 하며,

마추픽추를 이야기할 때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경작지입니다.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경작지는 마추픽추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요. 건축물이 세워진 지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만들어 놓은 경작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문화유산입니다.
계단식 경작지에서는 옥수수, 감자, 마약의 일종인 코카를 재배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일부 학자들은 왕실에서 사용했던 코카만을 재배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전체적인 의견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가득한 시간을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는 잉카인이 건설한 도시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유적지입니다. 인티우아타나를 비롯하여 태양의 신전,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관개 수로 시설에 관한 자료는 물론이고 언제, 누가 건설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추픽추에 관하여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수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마추픽추는 당분간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할 유적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복합 유산
유네스코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산 중에는 인간이 만든 문화유산이 있고,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된 자연 유산,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이 모두 잘 보존된 복합 유산이 있습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는 약 700여 곳이고, 자연 유산도 176곳이나 됩니다. 그러나 복합 유산 지역은 단 25곳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문명과 자연이 함께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은 드물지요. 그중 한 곳이 마추픽추입니다.

마추픽추가 복합 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잉카인들이 건설한 도시 유적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추픽추 유적지는 산림이 울창할 뿐만 아니라 희귀한 안경곰과 멸종 위기에 처한 오셀롯, 커다란 콘도르, 바위에서 살고 있는 아름다운 새인 안데스 바위새 등이 서식하는 중요한 생태와 자연 보호 구역입니다. 마추픽추는 인간이 만든 신비로운 유적과 자연 생태계가 동시에 보존되어 있는 소중한 유적지입니다.


고산증 대치법" 마추픽추로 가는 출발점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했다. 쿠스코에 도착한 대부분의 여행자는 고소증을 겪는다. 현지인들이 즐겨 마시는 코카 차를 따라 마시는 것도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다.
가는 길"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기차로 4시간 정도 소요되고 기차역에서 버스로 굽이진 산길을 40분 정도 간 다음 걸어서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힘겨운 여정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페루의 수도 리마를 거쳐 다시 국내선을 타고 쿠스코까지 가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리마까지 약 8시간, 남미 항공사들은 시간변경이 잦고 지연 운항이 많아 골탕먹기 일쑤이므로 시간 안배에 신경 써야 한다. 20시간 넘게 걸려 쿠스코에 와서도 마추픽추까지는 열차를 타고 더 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쿠스코에서 오얀타이 탐보까지 버스 또는 택시를 이용하고, 오얀타이 탐보에서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까지 기차로 가는 것이다. 오얀타이 탐보까지 가는 길에 많은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기차표 예약을 빨리 해야 낭패를 보지 않게된다.
숙소" 쿠스코에서는 중앙광장 주변 뒷골목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대성당 오른쪽 산타 카타리나 박물관이 있는 골목에 저렴한 숙소가 많다. 산 아구스틴 골목에는 중급 이상의 고급 호텔이 많다. 고산병을 겪는다면 좀 더 편안한 숙소를 잡는 게 이롭다.
스페인어로 ‘뜨거운 물’이란 뜻을 가진 마을 아구아 칼리엔테에도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있다. 마추픽추 베이스캠프인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올라가면 공중도시 마추픽추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모든 여행자들은 탄성을 지른다. 잉카 전설의 도시 마추픽추의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이다. 마추픽추 정상에도 비싸지만 숙소가 있으니 염려 안해도된다.

페니텐트penitentes.
아열대나 열대의 건조한 고산지대에 발달하는 빙하의 표면에 보이는 날카로운 빙주군()을 일컫는다. 안데스, 킬리만자로 등 고산의 빙하에서 발달하고 60㎝에서 1m 정도의 높이를 가진 날카로운 빙주가 밀집하여 빙하 표면을 덮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건조기후하에서 빙하의 소모()가 심한 일사()에 기인하여 표면에서의 승화가 촉진되어 발달한다고 생각된다.
마치 고깔모자 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정확한 생성원인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건조한 기후하에서 햇빛이 내리쬐면서 표면에서 수분이 증발하면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높이가 1미터가 넘기도 한니다.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이나 킬리만자로 등 아열대나 열대의 건조한 고산지대에 발달하는등 뾰쪽하고 날카로운 모양의 얼음기둥을 페니텐트(Penitentes)라고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