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선사 시대 대홍수의 기억. Noah's Ark.
신의 계시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 후에도 살아남았던 노아. 그의 이야기는 성서에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홍수 전설이 이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증명한다는 일설은, 로맨틱한 사람들 사이에서 뿌리 깊게 믿어지고 있다. 이 가설에 진실은 있을까? 노아의 방주가 실재로 있었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노아의 방주
성서에는 진실의 단편이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중반 중동까지 뻗어간 고고학의 발굴은 구약성서의 무대인 메소포타미아 주변에서부터, 지금까지 전설상의 장소라고만 여겨지고 있었던 성서에 등장하는 도시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차례대로 발견해나갔다. 그리하여 성서에 기술된 일부가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이 증명되자 성서의 신화적 부분, 다시 말해 「창세기」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에도 무엇인가 진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창세기" 의 홍수 전설은 구약성서의 에피소드 중 특히 스케일이 크고 또한 인상 깊으며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은, 땅 위에서 번성하고 순조롭게 늘어갔다. '신의 아들' 들은 각각 인간 여자를 아내로 삼아 자녀를 낳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란,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천사들을 일컫는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들은 네필림(Nephilim)이라 불리면서 아주 옛날 이름 높은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사람들이 행한 악행 또한 지상에 만연했다. 이런 모습에 몹시 마음이 아팠던 신은, 인간을 창조한 일은 역시 과오였노라고 후회하면서 홍수를 내려 지표면을 싹 쓸어버릴 결의를 굳혔다.
다만 신은 인간을 전멸시켜버리지 않고 단 한 명에게만 자비를 내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노아는 그 당시 세대에서 단 한 명, 신에게 순종하는 욕심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신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명하고 자세한 순서와 치수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었다. 노아는 신의 말에 따랐다. 그는 세 명의 아들과 함께 긴 세월에 걸쳐 방주를 완성시켰다. 그러자 신은 다시 노아에게 말했다. "너는 네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배에 들어가거라. 그리고 깨끗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 공중의 새도 일곱 쌍씩 배에 데리고 들어가 온 땅 위에서 각종 동물의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여라. 이제 이레가 지나면 40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쏟아, 내가 만든 모든 생물들을 땅 위에서 모두 없애버리리라."
노아가 방주에 실은 동물의 정확한 숫자는 불확실하다. 성서의 다른 곳에서는 모든 동물을 암컷과 수컷 한 쌍으로 두 마리씩 들여보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다섯 종류 정도의 자료를 모았는데 정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병기(倂記)하는 형식으로 편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쨌든 노아는 아들들과 힘을 모아 기한까지 모든 준비를 끝냈다. 방주에는 동물과 음식물이 쌓이고 노아 일족이 올라탔다. 이때 노아는 6백 살이었다고 한다.
신의 예고대로 분명히 7일 후에 파괴적인 호우가 찾아왔다. 홍수는 40일 동안(1백50일이라고도 한다) 계속되어 방주는 수면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지상의 가장 높은 산조차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지표면에 남아 있던 생물은 사람이나 새나 짐승할 것 없이 모조리 숨이 끊겼다.
40일이 지나자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고 밖으로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까마귀는 기세 좋게 날아올랐지만, 육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주로 들어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7일 후, 이번에는 똑같이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그렇지만 비둘기 역시 앉을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다. 다시 7일 후,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날려보내보았다. 그러자 비둘기는 멀리 날아가서 저녁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부리에는 올리브 잎이 물려 있었다. 노아는 어디선가 물이 빠져 육지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7일 후 비둘기를 날려보내자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윽고 물이 빠지고 방주는 아라라트 산에 멈추었다. 신은 노아에게 말했다.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배에서 나오너라. 새나 집짐승이나 땅에서 기어다니는 길짐승까지, 너와 함께 있던 모든 동물을 데리고 나와 땅 위에서 떼지어 살며 새끼를 많이 낳아 땅 위에 두루 번성하게 하여라." 그래서 노아는 모두를 데리고 방주에서 나왔다. 그리고 신을 위해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쳤다. 신은 노아에게 두 번 다시 대지의 생물을 전부 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계약의 증표가 구름 속에서 나타난 무지개라고 한다.
19세기 중반 중동까지 뻗어간 고고학의 발굴은 구약성서의 무대인 메소포타미아 주변에서부터, 지금까지 전설상의 장소라고만 여겨지고 있었던 성서에 등장하는 도시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차례대로 발견해나갔다. 그리하여 성서에 기술된 일부가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이 증명되자 성서의 신화적 부분, 다시 말해 「창세기」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에도 무엇인가 진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창세기" 의 홍수 전설은 구약성서의 에피소드 중 특히 스케일이 크고 또한 인상 깊으며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은, 땅 위에서 번성하고 순조롭게 늘어갔다. '신의 아들' 들은 각각 인간 여자를 아내로 삼아 자녀를 낳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란,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천사들을 일컫는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들은 네필림(Nephilim)이라 불리면서 아주 옛날 이름 높은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사람들이 행한 악행 또한 지상에 만연했다. 이런 모습에 몹시 마음이 아팠던 신은, 인간을 창조한 일은 역시 과오였노라고 후회하면서 홍수를 내려 지표면을 싹 쓸어버릴 결의를 굳혔다.
다만 신은 인간을 전멸시켜버리지 않고 단 한 명에게만 자비를 내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노아는 그 당시 세대에서 단 한 명, 신에게 순종하는 욕심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신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명하고 자세한 순서와 치수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었다. 노아는 신의 말에 따랐다. 그는 세 명의 아들과 함께 긴 세월에 걸쳐 방주를 완성시켰다. 그러자 신은 다시 노아에게 말했다. "너는 네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배에 들어가거라. 그리고 깨끗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 공중의 새도 일곱 쌍씩 배에 데리고 들어가 온 땅 위에서 각종 동물의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여라. 이제 이레가 지나면 40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쏟아, 내가 만든 모든 생물들을 땅 위에서 모두 없애버리리라."
노아가 방주에 실은 동물의 정확한 숫자는 불확실하다. 성서의 다른 곳에서는 모든 동물을 암컷과 수컷 한 쌍으로 두 마리씩 들여보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다섯 종류 정도의 자료를 모았는데 정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병기(倂記)하는 형식으로 편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쨌든 노아는 아들들과 힘을 모아 기한까지 모든 준비를 끝냈다. 방주에는 동물과 음식물이 쌓이고 노아 일족이 올라탔다. 이때 노아는 6백 살이었다고 한다.
신의 예고대로 분명히 7일 후에 파괴적인 호우가 찾아왔다. 홍수는 40일 동안(1백50일이라고도 한다) 계속되어 방주는 수면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지상의 가장 높은 산조차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지표면에 남아 있던 생물은 사람이나 새나 짐승할 것 없이 모조리 숨이 끊겼다.
40일이 지나자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고 밖으로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까마귀는 기세 좋게 날아올랐지만, 육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주로 들어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7일 후, 이번에는 똑같이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그렇지만 비둘기 역시 앉을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다. 다시 7일 후,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날려보내보았다. 그러자 비둘기는 멀리 날아가서 저녁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부리에는 올리브 잎이 물려 있었다. 노아는 어디선가 물이 빠져 육지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7일 후 비둘기를 날려보내자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윽고 물이 빠지고 방주는 아라라트 산에 멈추었다. 신은 노아에게 말했다.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배에서 나오너라. 새나 집짐승이나 땅에서 기어다니는 길짐승까지, 너와 함께 있던 모든 동물을 데리고 나와 땅 위에서 떼지어 살며 새끼를 많이 낳아 땅 위에 두루 번성하게 하여라." 그래서 노아는 모두를 데리고 방주에서 나왔다. 그리고 신을 위해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쳤다. 신은 노아에게 두 번 다시 대지의 생물을 전부 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계약의 증표가 구름 속에서 나타난 무지개라고 한다.
형상
「창세기」에는 신이 만들라고 명했던 방주의 해설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재질은 고펠나무. 지금 이것은 전나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 재질을 길이 3백 큐빗, 폭 50큐빗, 높이 30큐빗〔큐빗은 일반적으로 척(尺)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산출해보면 방주의 크기는 길이 약 1백35미터, 폭 약 23미터, 높이 약 14미터가 된다〕의 방주 모양으로 짰다.
몸체의 안팎으로 타르를 칠하고 내부는 세 겹 구조로 작은 방을 여러 칸 만들었다. 천장에는 빛이 들어오는 창을 냈다. 마지막으로 출입구는 방주의 옆으로 냈다고 되어 있다.
노아의 방주는 중세의 종교화에서는 고물 끝이 뾰족하고 멋진 배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아라라트 산에서 방주(의 잔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노아의 방주를 일반적인 배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그런 형태를 갖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방주'가 아닌 것이다. 방주 전설의 원형이라 여겨지는 바빌로니아의 전설(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서술하기로 한다)에서 건조된 배는 밑바닥이 편편하고 네모난, 바야흐로 물에 뜬 상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물에 떠 있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형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노아의 방주를 우스꽝스럽고 투박한 상자 모양의 배로 정해놓은 일설도 만만치 않다.
몸체의 안팎으로 타르를 칠하고 내부는 세 겹 구조로 작은 방을 여러 칸 만들었다. 천장에는 빛이 들어오는 창을 냈다. 마지막으로 출입구는 방주의 옆으로 냈다고 되어 있다.
노아의 방주는 중세의 종교화에서는 고물 끝이 뾰족하고 멋진 배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아라라트 산에서 방주(의 잔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노아의 방주를 일반적인 배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그런 형태를 갖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방주'가 아닌 것이다. 방주 전설의 원형이라 여겨지는 바빌로니아의 전설(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서술하기로 한다)에서 건조된 배는 밑바닥이 편편하고 네모난, 바야흐로 물에 뜬 상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물에 떠 있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형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노아의 방주를 우스꽝스럽고 투박한 상자 모양의 배로 정해놓은 일설도 만만치 않다.
영원한 사람 우트나피슈팀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는 사실 명확한 모델이 있다.
1850년에 기원전 7세기 앗시리아의 앗시르바니팔 왕의 대도서관에서 열두 장의 점토판이 출토되었다. 아카드어의 설형문자가 새겨진 이 점토판에는 세계 최고(最古)의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똑같은 홍수 전설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이야기는 반신반인의 영웅 길가메시에게 그의 선조 우트나피슈팀이라는 인물이, 영원히 죽지 않는 비밀을 말해주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우트나피슈팀은 먼 옛날에 시르팍(대홍수 이전에 존재했다는 메소포타미아의 5대 수도 중 하나)에 살고 있었다. 그는 에아 신의 경건한 신자였다. 그래서 에아 신은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꿈을 보여줌으로써 우트나피슈팀에게 곧 닥치게 될 파국을 경고했다.
이 꿈을 올바르게 이해한 우트나피슈팀에게 에아 신은 이렇게 명했다. "시르팍 사람, 우바라 투투의 아들이여, 그대의 집을 부수고 배를 만들어라. 부를 버리고 생명을 쫓아가라. 재산을 돌아보지 말고 그대의 생명을 구하라. 살아 있는 것의 모든 종류를 그대가 만든 배에 실어라. 그대가 만들어야 할 배는 치수와 비율을 정해진 그대로 하라. 폭과 깊이는 똑같이 비율을 맞추어라."
우트나피슈팀은 신의 계시에 따라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방주의 건조에 착수했다. 골조는 5일 만에 완성되었다. 그는 기술자들을 시켜 신에게 명령받은 그대로 마루가 1이크(약 3천6백 제곱미터), 네 벽의 높이는 10가르(약 60미터), 덮는 판자의 폭도 각각 10가르로 된 여섯 겹의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 배 밑바닥에는 아스팔트가 부어졌다.
배를 완성시킨 우트나피슈팀은 기술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연회를 베풀고 모든 재산과 모든 종류의 생물을 배에 실었다. 가족, 친척, 기술자, 가축, 짐승도 실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배에 올라타고 문을 닫았다.
이윽고 에아가 예고했던 시간이 다가왔다. 서광과 함께 하늘 끝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었다. 천둥신 아다드가 천둥을 치게 했다. 큰 바람이 몰아치고 수로에서 물이 넘쳤다. 사람들을 징벌하리라 말을 꺼냈던 지상과 명계의 신들조차 무시무시한 대홍수에 놀라 허둥대며 천신 아누의 곁으로 도망쳤다.
여신 이슈타르는 인간 여자처럼 울면서 말했다. "보아라, 옛 나날들은 진흙으로 돌아가버렸다. 내가 신들의 모임에서 재앙을 말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신들의 모임에서 그런 말을 했던가? 나의 인간들을 멸망시킬 싸움을 입 밖에 내었던가? 나야말로 인간들을 낳은 자인데. 물고기의 알과 같이 그들은 바다에 가득 찼었는데." 모든 지상과 명계의 신들은 이슈타르 신과 함께 슬퍼하고 후회했다.
미칠 듯이 일렁이는 바람과 홍수, 그리고 태풍이 6일 낮 6일 밤 국토를 망가뜨렸다. 7일째가 되자 폭풍의 신이 겨우 싸움에서 져서 바다가 가라앉고 폭풍은 고요해졌으며, 그리고 물은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미 모든 인간은 진흙으로 돌아가버린 뒤였다.
우트나피슈팀의 방주는 니시르 산(티그리스 강과 그 지류 자브 강의 합류점 가까이에 있는 산. 구르디스탄 산맥의 한 줄기)에 멈추었다. 착륙한 것이었다. 7일 동안 기다린 그는, 우선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그러나 비둘기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에 그는 제비를 날려보냈다. 제비 역시 되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날려보낸 것은 큰 갈가마귀였다. 갈가마귀는 물이 빠졌기 때문에 시체를 쪼아먹고 주위를 돌면서 까악까악 울면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트나피슈팀은 모든 새를 하늘로 날려보내고 산 정상에서 제물을 바쳤다. 그러자 향기에 이끌려 신들이 모여들었다. 여신 이슈타르가 우트나피슈팀에게 말했다. "이 나날을 마음에 새기고 결코 잊지 말아라. 신들이여, 희생 제물 앞으로 와주십시오. 엔릴(바빌로니아 3대 신 중 하나로 하늘의 대신. 신들의 왕)은 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생각 없이 홍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인간들을 파멸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엔릴은 왔다. 그리고 배를 보고 살아남은 자가 있음을 알고서는 "이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가. 한 명도 살아남아서는 안 되었는데" 하며 격노했다. 그런 엔릴을 말린 것은 에아였다. 에아는 엔릴이 사려 없이 홍수를 일으킨 것을 비난하면서 닥치는 대로 벌하지 말고 죄의 경중에 따라서 사자를 늘리고 이리를 풀어놓고 기근을 일으키고 역병을 돌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을 고쳐먹은 엔릴은 우트나피슈팀과 그의 아내에게 축복을 내리고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주면서 그들을 멀고 먼 땅, 강의 하구에 살게 했다.
이것이 영원한 사람, 머나먼 우트나피슈팀의 전설이다. 후세의 노아의 전설이 여러 명의 신을 유일신으로 바꾼 것만 제외하면, 완전히 이 이야기의 재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바빌로니아 전승이 구약성서에 도입된 흔적이 많아 보이지만, 이만큼 완벽한 일치를 보이는 에피소드는 노아의 방주뿐이다.
1850년에 기원전 7세기 앗시리아의 앗시르바니팔 왕의 대도서관에서 열두 장의 점토판이 출토되었다. 아카드어의 설형문자가 새겨진 이 점토판에는 세계 최고(最古)의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똑같은 홍수 전설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이야기는 반신반인의 영웅 길가메시에게 그의 선조 우트나피슈팀이라는 인물이, 영원히 죽지 않는 비밀을 말해주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우트나피슈팀은 먼 옛날에 시르팍(대홍수 이전에 존재했다는 메소포타미아의 5대 수도 중 하나)에 살고 있었다. 그는 에아 신의 경건한 신자였다. 그래서 에아 신은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꿈을 보여줌으로써 우트나피슈팀에게 곧 닥치게 될 파국을 경고했다.
이 꿈을 올바르게 이해한 우트나피슈팀에게 에아 신은 이렇게 명했다. "시르팍 사람, 우바라 투투의 아들이여, 그대의 집을 부수고 배를 만들어라. 부를 버리고 생명을 쫓아가라. 재산을 돌아보지 말고 그대의 생명을 구하라. 살아 있는 것의 모든 종류를 그대가 만든 배에 실어라. 그대가 만들어야 할 배는 치수와 비율을 정해진 그대로 하라. 폭과 깊이는 똑같이 비율을 맞추어라."
우트나피슈팀은 신의 계시에 따라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방주의 건조에 착수했다. 골조는 5일 만에 완성되었다. 그는 기술자들을 시켜 신에게 명령받은 그대로 마루가 1이크(약 3천6백 제곱미터), 네 벽의 높이는 10가르(약 60미터), 덮는 판자의 폭도 각각 10가르로 된 여섯 겹의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 배 밑바닥에는 아스팔트가 부어졌다.
배를 완성시킨 우트나피슈팀은 기술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연회를 베풀고 모든 재산과 모든 종류의 생물을 배에 실었다. 가족, 친척, 기술자, 가축, 짐승도 실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배에 올라타고 문을 닫았다.
이윽고 에아가 예고했던 시간이 다가왔다. 서광과 함께 하늘 끝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었다. 천둥신 아다드가 천둥을 치게 했다. 큰 바람이 몰아치고 수로에서 물이 넘쳤다. 사람들을 징벌하리라 말을 꺼냈던 지상과 명계의 신들조차 무시무시한 대홍수에 놀라 허둥대며 천신 아누의 곁으로 도망쳤다.
여신 이슈타르는 인간 여자처럼 울면서 말했다. "보아라, 옛 나날들은 진흙으로 돌아가버렸다. 내가 신들의 모임에서 재앙을 말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신들의 모임에서 그런 말을 했던가? 나의 인간들을 멸망시킬 싸움을 입 밖에 내었던가? 나야말로 인간들을 낳은 자인데. 물고기의 알과 같이 그들은 바다에 가득 찼었는데." 모든 지상과 명계의 신들은 이슈타르 신과 함께 슬퍼하고 후회했다.
미칠 듯이 일렁이는 바람과 홍수, 그리고 태풍이 6일 낮 6일 밤 국토를 망가뜨렸다. 7일째가 되자 폭풍의 신이 겨우 싸움에서 져서 바다가 가라앉고 폭풍은 고요해졌으며, 그리고 물은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미 모든 인간은 진흙으로 돌아가버린 뒤였다.
우트나피슈팀의 방주는 니시르 산(티그리스 강과 그 지류 자브 강의 합류점 가까이에 있는 산. 구르디스탄 산맥의 한 줄기)에 멈추었다. 착륙한 것이었다. 7일 동안 기다린 그는, 우선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그러나 비둘기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에 그는 제비를 날려보냈다. 제비 역시 되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날려보낸 것은 큰 갈가마귀였다. 갈가마귀는 물이 빠졌기 때문에 시체를 쪼아먹고 주위를 돌면서 까악까악 울면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트나피슈팀은 모든 새를 하늘로 날려보내고 산 정상에서 제물을 바쳤다. 그러자 향기에 이끌려 신들이 모여들었다. 여신 이슈타르가 우트나피슈팀에게 말했다. "이 나날을 마음에 새기고 결코 잊지 말아라. 신들이여, 희생 제물 앞으로 와주십시오. 엔릴(바빌로니아 3대 신 중 하나로 하늘의 대신. 신들의 왕)은 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생각 없이 홍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인간들을 파멸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엔릴은 왔다. 그리고 배를 보고 살아남은 자가 있음을 알고서는 "이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가. 한 명도 살아남아서는 안 되었는데" 하며 격노했다. 그런 엔릴을 말린 것은 에아였다. 에아는 엔릴이 사려 없이 홍수를 일으킨 것을 비난하면서 닥치는 대로 벌하지 말고 죄의 경중에 따라서 사자를 늘리고 이리를 풀어놓고 기근을 일으키고 역병을 돌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을 고쳐먹은 엔릴은 우트나피슈팀과 그의 아내에게 축복을 내리고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주면서 그들을 멀고 먼 땅, 강의 하구에 살게 했다.
이것이 영원한 사람, 머나먼 우트나피슈팀의 전설이다. 후세의 노아의 전설이 여러 명의 신을 유일신으로 바꾼 것만 제외하면, 완전히 이 이야기의 재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바빌로니아 전승이 구약성서에 도입된 흔적이 많아 보이지만, 이만큼 완벽한 일치를 보이는 에피소드는 노아의 방주뿐이다.
되짚어가는 홍수 전설의 기원
이 발견(1872년에 해독, 1876년에 발표. 점토판의 발견 당시 아직 설형문자가 해독되지 않아서 읽지 못했다)이 밝혀졌을 때, 일대 충격이 일어났다. 25세기에 걸친 시간을 초월하여 성서 이야기의 뿌리가 현대에 되살아난 것이었다. 노아 이야기의 원전이 성서라는 종래의 학설은 싱겁게 덮여졌다.
게다가 그후, 수메르어로 씌어진 최고(最古)의 파편이 닛프르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이 전승의 기원은 더욱 위로 거슬러올라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메르인은 바빌로니아 이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번영했던 민족으로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전 2500년경까지 번성했다가, 그후 사막에서 습격해온 바빌로니아의 선조에게 멸망된 민족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인은 수메르인으로부터 문화와 신화를 차용하여 수메르어를 중세 유럽의 라틴어처럼 사용해왔다. 다시 말해 노아의 홍수 전설은 기원전 25세기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5천 년 이상 옛날부터 면면히 전해져온 신화였던 것이다.
수메르(닛프르)판 노아(우트나피슈팀)는 그 이름을 디우스두라라고 했다. 그는 대홍수 이전 시대의 마지막 왕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바빌로니아판과 비슷하다. 홍수를 일으킨 것은 엔릴 신이고 그것을 몰래 디우스두라에게 가르쳐준 것은 영웅신 우투였다. 왕은 건조한 방주에 가족과 재산, 가축과 친구들 싣고 대홍수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엔릴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고 성스러운 산에서 살 것을 허락받았다.
대홍수 전승을 전하는 점토판은 이외에도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차례대로 발견되었다. 전승이 엄청난 세월,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전해 내려온 증거로, 파국에서 살아남은 홍수영웅의 이름은 판에 따라서 제각각이다. 앞에서 소개한 우트나피슈팀, 아트라 하시스(최고의 현자), 디우스두라(생명을 본 자라는 의미) 왕 이외에도 우바랏츠, 카시스트라타, 바이스바라타 등으로도 불렸다. 노아 역시 이 중 하나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해독된 점토판에서 확인된 이름'의 일람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커다란 의문이 생긴다. 홍수 전설은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방대하고 집요하게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해답은 역시 고고학적 발굴이 가져왔다.
메소포타미아 각지의 발굴 조사에 따르면 우르, 키시, 시르팍, 니네베, 우르크 등 수메르 각 도시에서 대홍수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실제로 대규모의 홍수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다만 조사 결과, 이들 홍수의 발생 연대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지의 흔적으로 미루어보아 홍수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음이 추측되지만, 성서에 기록된 것처럼 단 한 번의 전세계적인 대재해는 아니었다.
원래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엄청난 저지대로 항상 홍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땅이다. 수메르인은 치수기술에 숙달되어 물을 다스리고 문명으로 단번에 비약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3500년경. 그 이전에는 자연의 맹위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홍수는 소위 매년 찾아오는 위기였고 때로는 괴멸적인 규모로 습격하기도 했을 것이다. 지층에 새겨진 대홍수 유적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노아 전설의 기원이 되는 대홍수는 성서에서 말하는 세계적인 규모는 아니었지만 예전에 존재했다. 홍수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유역에 빈번했던, 숙명이라고도 할 만한 재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찌하여 홍수 전설이 면면히 이어져왔는가 하는 의문도 사라질 것이다. 이 사실을 노아의 방주 문제의 해답으로 삼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그후, 수메르어로 씌어진 최고(最古)의 파편이 닛프르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이 전승의 기원은 더욱 위로 거슬러올라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메르인은 바빌로니아 이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번영했던 민족으로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전 2500년경까지 번성했다가, 그후 사막에서 습격해온 바빌로니아의 선조에게 멸망된 민족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인은 수메르인으로부터 문화와 신화를 차용하여 수메르어를 중세 유럽의 라틴어처럼 사용해왔다. 다시 말해 노아의 홍수 전설은 기원전 25세기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5천 년 이상 옛날부터 면면히 전해져온 신화였던 것이다.
수메르(닛프르)판 노아(우트나피슈팀)는 그 이름을 디우스두라라고 했다. 그는 대홍수 이전 시대의 마지막 왕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바빌로니아판과 비슷하다. 홍수를 일으킨 것은 엔릴 신이고 그것을 몰래 디우스두라에게 가르쳐준 것은 영웅신 우투였다. 왕은 건조한 방주에 가족과 재산, 가축과 친구들 싣고 대홍수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엔릴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고 성스러운 산에서 살 것을 허락받았다.
대홍수 전승을 전하는 점토판은 이외에도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차례대로 발견되었다. 전승이 엄청난 세월,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전해 내려온 증거로, 파국에서 살아남은 홍수영웅의 이름은 판에 따라서 제각각이다. 앞에서 소개한 우트나피슈팀, 아트라 하시스(최고의 현자), 디우스두라(생명을 본 자라는 의미) 왕 이외에도 우바랏츠, 카시스트라타, 바이스바라타 등으로도 불렸다. 노아 역시 이 중 하나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해독된 점토판에서 확인된 이름'의 일람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커다란 의문이 생긴다. 홍수 전설은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방대하고 집요하게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해답은 역시 고고학적 발굴이 가져왔다.
메소포타미아 각지의 발굴 조사에 따르면 우르, 키시, 시르팍, 니네베, 우르크 등 수메르 각 도시에서 대홍수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실제로 대규모의 홍수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다만 조사 결과, 이들 홍수의 발생 연대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지의 흔적으로 미루어보아 홍수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음이 추측되지만, 성서에 기록된 것처럼 단 한 번의 전세계적인 대재해는 아니었다.
원래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엄청난 저지대로 항상 홍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땅이다. 수메르인은 치수기술에 숙달되어 물을 다스리고 문명으로 단번에 비약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3500년경. 그 이전에는 자연의 맹위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홍수는 소위 매년 찾아오는 위기였고 때로는 괴멸적인 규모로 습격하기도 했을 것이다. 지층에 새겨진 대홍수 유적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노아 전설의 기원이 되는 대홍수는 성서에서 말하는 세계적인 규모는 아니었지만 예전에 존재했다. 홍수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유역에 빈번했던, 숙명이라고도 할 만한 재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찌하여 홍수 전설이 면면히 이어져왔는가 하는 의문도 사라질 것이다. 이 사실을 노아의 방주 문제의 해답으로 삼는 사람도 많다.
방주 로망
노아의 대홍수 전설은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좀더 세계적인 규모로 발생한 홍수의 기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의 가설은 실로 천차만별인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어떤 이유(빙하기 말이나 지축의 이동, 엇갈림)로 인해 녹은 빙하 때문에 수면이 급상승한 때 발생한 전설이라고 보는 일설도 있다.
사람들이 반드시 예로 드는 것이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홍수 전설이다. 확실히 모든 대륙에는 예전에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에는 데우칼리온 전설이 있고, 인도에는 마누 신화가 있다. 미국 원주민 사이에 폭넓게 홍수 전설이 전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이집트, 남미, 중국에도 존재한다.
신화는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몇 개의 패턴으로 분류 가능한데, 대홍수가 나서 인류가 전멸하고 한 가족(아니면 한 집단)만이 재난을 면한 후 인간의 자손이 되었다는 요소가 꽤 보편적이다. 그 원인이 먼 고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대홍수에 있었다는 생각은 매우 로맨틱하지만, 물론 현재까지는 가설의 영역을 넘지는 않는다.
대홍수뿐만 아니라, 노아의 방주 그 자체가 예전에 실존했다고 강하게 믿는 사람들도 있다. 전승이 탄생한 경위를 생각해볼 때, 「창세기」가 말하듯이 아라라트 산에 방주가 착륙한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생각이 든다.
아라라트 산에서 방주를 보았다, 아니면 그 잔해를 갖고 돌아왔다는 보고는 적지 않다. 아라라트 산에 방주의 흔적을 찾는 탐험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가끔씩 행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슬람교도는 방주가 주디 산에 있다고 하며, 『길가메시 서사시』는 니시르 산에 있다고 씌어 있다. 세계의 홍수 전설을 되짚어가면 구원의 배가 멈추었다고 여겨지는 영봉(靈峰)은 엄청난 숫자에 달할 것이다. 그래도 방주를 찾아다니는 자는 아라라트에 오른다. 바야흐로 그것은 학문적인 조사가 아니라 종교적 정열에 불붙은 일종의 순례적 행위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전설에 숨겨진 사실
노아의 방주 전설은 아마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부류에 속하는 신화이다. 그 뿌리는 까마득할 정도로 먼 고대로 올라갈 수 있으며, 동시에 현재까지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방주 전설은 지금도 살아 있다.
전승은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는다. 아무리 꿈같이 들려도 거기에는 고대 진실의 단편이 숨겨져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이 있으면 전설 속에서 고대의 사람들이 후세에 전하려고 한 사실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방주라는 물질적 증거에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이 전설의 가치를 부당하게 폄하하는 것이 된다. 노아의 유산이 지금도 존재하는지 아닌지 하는 것은, 이 신화가 인류 문명의 뿌리를 해명하는 데 가져온 공헌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다.
전승은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는다. 아무리 꿈같이 들려도 거기에는 고대 진실의 단편이 숨겨져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이 있으면 전설 속에서 고대의 사람들이 후세에 전하려고 한 사실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방주라는 물질적 증거에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이 전설의 가치를 부당하게 폄하하는 것이 된다. 노아의 유산이 지금도 존재하는지 아닌지 하는 것은, 이 신화가 인류 문명의 뿌리를 해명하는 데 가져온 공헌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다.
노아의 방주가 홍수를 헤쳐나와 건진 최대의 물건. 그것은 역사의 저편에 묻혔을 잃어버린 고대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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