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England.1

England

선사시대의 영국은 아직도 풀어야 할 비밀이 많다.  5만 년 전 유럽 대륙과 이어져 있던 브리튼섬에는 혈거수렵인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으나 빙하의 확대와 함께 섬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지각의 함몰로 대륙과 떨어지고 난 뒤 유럽 대륙의 갈리아 ·발트해 연안 등의 지방에 살던 종족이 영국해협을 건너왔으며, 이어 신석기시대에 이베리아인 등의 비()아리안계 종족이 다시 이주해와 수렵 ·목축과 원시적인 농경에 종사하였다. 

그 후 청동기시대로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쳐  켈트족이라고 불리우는 대륙의 여러 종족이 침입하여 선주민을 제압하고 정착하였다. 이들 중 북부에 거주한 게일인보다는 남부에 거주한 브리튼인이 진보한 문화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들은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먹는 것 외에 밀 ·보리 ·귀리 등을 재배하였고, 짐승 가죽 그리고 삼베옷과 양모의 직물을 착용하였다. 또 다신교를 믿고, 소부족으로 갈라져 서로 독립해 있었는데 딘 또는 둔이라고 하는 방벽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런던(London)이라는 지명은 소택지의 성을 뜻하는 켈트어 린딘(Lyndyn)에서 나왔으며, 나중에 로마인이 이를 라틴어로 론디니움(Londinium)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영국의 제국주의적 발전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독일과 미국 등 후진국의 세계시장 진출과 더불어 1873년에는 공황과 불황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에 따라 수출은 감퇴하고, 실업인구는 급증하였다. 또한 숙련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직업별 노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자 비숙련노동자 조직과 사회주의운동이 고개를 들었다. 1884년에는 쇼와 웹 등의 페비언 협회, 모리스와 하이드맨 등의 사회민주연맹이 결성되었으며, 1893년에는 번즈와 하디 등의 독립노동당이 결성되었다. 

1900년에는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단체의 대표들에 의한 노동자선거위원회가 구성되고 1906년 노동당이라고 개칭하였다. 노동당은  그 해 선거에서 29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자유당 내각은 이에 위협을 느껴 노동쟁의법 ·노인연금법 ·국민보험법 등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정책을 입법하였으며, 특히 1908년의 재무장관 로이드 조지의 예산안은 대토지 소유에 대한 중세를 사회정책의 재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배계급에 충격을 주었다. 이 법안은 하원을 통과한 후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이 때문에 자유당 정부는 1911년 상원의 권한을 크게 제한하는 국회법을 실현시켰다.

독일의 팽창정책으로 열강의 지위를 위협받은 영국은 프랑스·러시아와 손잡고 대항하였으나 1914년에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17년 독일의 잠수함작전으로 타격을 받고 러시아혁명에 휩싸인 러시아가 연합국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에 영국은 한때 궁지에 몰렸으나, 참전한 미국과의 협력으로 1918년 독일에 승리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미국과 해외 자치령 등의 지위가 향상되고, 상대적으로 영국의 지위가 저하되었다. 특히 영국 의회의 입법이 자치령의 동의 없이는 자치령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1931년의 웨스트민스터 조례()의 승인은 대영제국의 붕괴를 가져왔다. 

노동당은 전후의 불황을 배경으로 착실한 약진을 계속, 1922년의 선거에서는 142명의 당선자를 내어 보수 ·노동 양대 정당의 구도에서 우위를 차지하였다. 노동당은 1923년에는 191명의 의원을 확보, 1924년에는 처음으로 소수당이면서도 노동당 단독내각을 구성하였다. 1926년에는 보수당 정부 하의 노동자 총파업이 실패하여 총파업은 불법화되었다. 1928년에는 여성참정권이 확대되어 남성과 여성의 대등한 정치적 권리가 실현되었다. 1929년에는 노동당이 제1당이 되어 제2차 노동당 내각이 탄생하였다. 

1929년의 세계공황은 세계 정세를 일변시켰다. 미국은 사회자본의 개발로 공황을 극복하였고, 영국은 연방제국과 경제블록을 결성하여 이를 타개하였다. 그러나 이 공황으로 독일 ·이탈리아·일본 등의 군국주의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1930년대 독일에는 나치스 정권이 집권하여 독일의 팽창정책이 또 다시 노골되었다. 보수당 정부의 J.체임벌린 총리는 독일에 대한 융화정책을 계속하고 전쟁 회피에 주력하였으나, 1939년에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략하자 프랑스와 함께 영국은 대독()전쟁에 돌입하였다. 

1940년 처칠 총리가 거국일치 내각 구성으로 전쟁을 타개하고자 하였으나 전쟁 초기 프랑스가 항복하게 됨으로써 전황은 영국에게 갈수록 불리해졌다. 그러나 1941년의 독일·소련전 발발, 미국·일본 개전에 따른 미국의 참전 등으로 전황은 유리하게 바뀌었다. 미영 연합군은 1943년 이탈리아를, 1945년 독일 ·일본을 항복시킴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 노동당은 독일 항복 후의 선거에서 처음으로 절대 다수의 의석을 얻었으며,  처칠 대신 새 총리로 임명된 애틀리가 전후 강화회담인 포츠담회담에 참석하였다. 

노동당 정부는 잉글랜드 은행· 민간항공· 탄광· 철도· 철강업 등을 잇따라 국유화하고,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철저화로 복지국가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전쟁에 따른 경제적 곤란, 식민지의 연이은 독립, 미·소 양 블록의 긴장으로 인한 재군비 등 때문에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1951년의 처칠 정부하에서 사회보장제도는 완화되고 국유화 정책도 역전되었다. 1955년 처칠이 은퇴하자 그 뒤를 이은 이든 정부는 이듬해의 수에즈 사건으로 국위를 더욱 손상시켰다. 

집권한 H.맥밀런, A.F.흄의 두 보수당 정부도 미국과 소련의 비약적인 발전에 눌려 영국의 국제지위 향상과 경제발전을 실현시킬 수 없었으며, 1964년에는 정권을 윌슨의 노동당 정부에 넘기고 말았다. 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공동시장의 발전과 이에 소극적이었던 입장으로 말미암아 영국은 유럽 내에서 그동안 누렸던 상대적 높은 지위마저 잃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노동당 정부에 이은 E.히스 보수당 정부가 유럽공동체(EC) 여러 나라와 가맹교섭을 속행하여, 마침내 영국은 연방 국가와의 관계, 농업보호문제, 국민감정 등 곤란한 문제를 내부적으로 안고 있으면서도 유럽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국가로서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영국을 구성하는 4개 지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역. 수도는 런던이다. 면적은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약 57%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스코틀랜드, 서쪽으로는 웨일스, 남쪽으로는 영국 해협, 동쪽으로는 북해와 접한다. 

영국의 국기 이름은 연합 기(Union Flag)이고 과거 영국 선박과 해군에서 사용할 때 불리던 유니언 잭(Union Jack)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께가 서로 다른 흰색 테두리를 두른 적십자 두 개가 파란색 바탕에 교차해 그려진 모양이다. 연합 기는 연합 왕국 이전의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아일랜드 3국의 기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3국의 기는 모두 각국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십자기로서, 기독교에서 기원했으며 중세 십자군 원정 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잉글랜드(England)의 기는 흰색 바탕에 적십자가 그려진 ‘세인트조지(Saint George)의 십자기’, 스코틀랜드(Scotland)는 파란색 바탕에 ×자 모양으로 비낀 흰색 십자기가 그려진 ‘세인트앤드루(Saint Andrew)의 십자기’, 아일랜드는 흰색 바탕에 빨간색의 비낀 십자가 그려진 ‘세인트패트릭(Saint Patrick)의 십자기’였다. 연합 기는 1801년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이 통합되어 대영제국이 탄생하면서 만들어져 오늘날에 이른다. 영국 국기는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피지 등 영국연방국 국기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지리적 구분 1) 런던을 중심으로 하는 사우스이스트, 2) 버밍엄을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미들랜즈, 3) 탄전과 기름진 농지를 안고 있는 이스트미들랜즈, 4) 주로 농업지역인 이스트앵글리아,5)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포함하는 노스웨스트, 6) 웨스트요크셔 코너베이션(리즈와 브래드퍼드를 포함)이 있는 요크셔·험버사이드, 7) 유명한 호수지대()인 노스, 8) 콘월 반도를 차지하는 사우스웨스트의 8개 지역으로 크게 나뉜다.

이 지역들은 지방행정 단위가 아니다. 최남단도 거의 북위 50°의 고위도에 위치하나,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멕시코만류와 편서풍의 영향으로 기후는 비교적 따뜻하고, 강설()도 적어 거주와 농경에 적당하여 일찍부터 인류가 정착하였다. 스코틀랜드·웨일스 등지에 비하여 산도 적어 북부의 페나인산맥도 해발고도 400∼600m이며, 그 밖에는 콘월 반도와 기타 지역에 약간의 산지가 있을 뿐이다. 

브리튼 섬의 57%를 차지하고 있는 잉글랜드는 그 크기가 미국 뉴욕 주(5만 제곱마일) 정도인데, 면적 130,363㎢에 인구 4600만 명 정도로 전체 영국인의 85%를 차지한다. 이러한 잉글랜드는 지구의 1/4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졌던 대영 제국의 요람이요 중심지였으며, 세계 역사의 산실이었다. 여기서는 이곳을 북서 잉글랜드와 동남부 잉글랜드로 나누어진다.

면적의 대부분은 평지이거나 기복이 완만한 구릉지로 가경지()가 약 40%, 영구목지()와 조방목지()가 약 40%를 차지한다. 19세기 초부터 1세기 반 이상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약 3배로 증가한 반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합계인구는 약 5배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도 북부에서 남부로 인구이동을 보이고 있다.


잉글랜드 남동부 템스강() 하구에서부터 약 60km 상류에 있다. 영국의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교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영국연방의 사실상의 중심도시다. 뉴욕·상하이·도쿄와 더불어 세계 최대 도시의 하나다.

1888년 런던주()가 설치되었고, 1899년 시티오브런던을 제외한 지역을 28개의 행정구로 구분하여 런던 주청()이 통할하였다. 다만 런던 경시청(스코틀랜드 야드)은 주변의 여러 주에 미치는 수도경찰관구를 관할하였다. 1963년 런던 행정법에 의해서 1965년 런던 주청이 폐쇄되고, 대신 시티오브런던을 포함한 32개의 행정구로 구성된 그레이터런던 주청이 설치되었다.

런던주는 종래의 런던주 외에 미들섹스·하트퍼드셔·에식스·켄트·서리 등 각 주의 일부를 포함한다. 수도경찰관구보다는 좁으나, 런던교()를 중심으로 반경 약 24km, 구()런던주의 약 5배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한다.
한여름에도 기온이 높지 않으며, 7월 평균기온 17.6℃로 서울보다 7.1℃나 낮다. 강수량도 적어 연간 약 750mm로 서울의 50% 정도지만, 강수일수는 훨씬 많아 1년의 반에 가까운 168일에 이른다. 겨울에는 강수량은 적으나, 대개 날씨가 흐려 어두침침하다. 또 런던의 안개는 유명하며, 11월에서 이듬해 2월에 걸쳐 자주 짙은 안개가 발생했다.

버크셔에서 남동해안을 향하여 뻗어나간 백악층 중앙에 있으나, 표면은 점토와 모래의 혼합토로 덮여 있다. 이것은 브리튼섬이 유럽 대륙과 육지로 이어져 있던 무렵에, 호수로 주입되는 많은 하천에 의하여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지반이 비교적 약하여 근년의 건축기술이 발달하기까지 고층건축에는 부적당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최근 대기정화정책의 철저한 시행으로 스모그 현상이 해소된 것은, 하천정화정책에 의하여 템스강이 정화되기 시작한 것과 함께 중요한 변화였다. 바람은 편서풍으로 강풍은 거의 불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 대륙 서해안에 나타나는 서안해양성 기후의 전형으로 여름에 선선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이는 난류인 북대서양해류가 영국 주변에 흐르고 편서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륙 동안에 비해 여름은 선선하여 위도 20° 가량 북쪽에, 겨울은 따뜻하여 10° 가량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의 기후와 비슷하다.
아조레스섬 부근의 고기압과 아이슬란드 부근의  저기압 및 유럽 대륙에 중심을 가진 겨울의 고기압, 여름의 저기압 등도 영국의 기상·기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다. 영국 기후가  매우 변덕스러운 것은 이들 기압에 의한 변화 때문이며, 특히 아이슬란드 저기압에서 2차적으로 발생하는 이동성 저기압이 접근하여 통과할 때 기상변화가 심하다.

영국의 7월의 평균기온은 16.4℃,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글래스고는 15℃, 런던은 17.6℃이며, 1월의 평균기온은 4.1℃, 글래스고 3.9℃, 런던 4.2℃로 연교차가 비교적 적어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대륙과 달리 매우 해양적이다. 연중 기온차가 적지만 7월의 등온선이 동서로 뻗고 1월의 등온선이 남북으로 뻗어 장소에 따라 기온차가 상당하다.

영국의 북서부에서는 선선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 북동부에서는 선선한 여름과 추운 겨울, 남서부에서는 더운 여름과 온화한 겨울, 남동부에서는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나타난다. 강수량의 분포는 지형의 영향으로 지역차가 상당하다. 대서양에 면한 북부 및 서부 산지에서는 비가 많지만 동쪽 저지로 갈수록 비가 적어져 동서의 차이가 심하다. 
스코틀랜드 서해안은 강수량이 많아  2,000∼4,700mm에 이르고, 그 남쪽의 페나인산맥은 1,500∼2,500mm웨일스 산지가 1,000∼1,500mm이며, 가장 적은 곳은 잉글랜드 동부로 600∼700mm이다.  비는 연중 고르지만 대개 3월부터 6월까지가 가장 건조하며 9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습윤하다.

지형은 남북 교외가 약간 높고, 템스강을 사이에 끼고 있는 시가지는 낮으나, 템스강이 자주 하도()를 변경함에 따라 평탄한 시가지에도 기복이 있다. 기온은 한서의 차이가 작아, 연평균기온은 약 10.5℃이다. 북위 51°5'에 위치하나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고 강설량도 적다. 1월 평균기온은 4.2℃로 서울의 -4.9℃에 비하여 9.1℃나 높다.
영국의 저지대는 오크(떡갈나무)·애시(서양물푸레나무)·서양너도밤나무·자작나무 등의 낙엽성 삼림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경지와 목장의 확대로 삼림이 점차 축소되고, 산업화 초기의 조선용 목재, 제철·가정용 청어와 베이컨 등의 훈제용 땔감 등을 위해 대부분이 벌채되어 삼림이 국토의 1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초지와 황무지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어 영국적인 특색있는 경관이 나타난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면적의 1/3 가량을 차지하는 초지에는 완만한 목장풍경이 계속되는 한편,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의 고지에는 기온이 낮고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 무어랜드 또는 허슬랜드라고 하는 황야가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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