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9일 금요일

말, horse.

말, horse.
가축의 하나이며 학명은 Equus caballus L.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가축의 하나로, 전세계에서 널리 사육되고 있다. 
옛날에는 인간의 식량을 한 사냥의 대상이었으나, 그후 군마()나 밭갈이에 이용되었고, 최근에는 주로 승용()이나 스포츠용으로 이용된다.

말의 몸은 달리기에 알맞도록 네 다리와 목이 길다. 
얼굴도 긴데, 이것은 치열()이 길기 때문이다. 

코에는 나출부()가 없고, 윗입술을 잘 움직이는데, 이것으로 풀을 입 안으로 밀어넣는다. 
초식성으로 생초·건초·곡물을 먹는다.
초지에 서식한다.

말의 품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냉혈종(cold blood), 경주마 또는 승용마인 온혈종(warm blood) 그리고 몸집이 매우 작은 포니(pony)로 구분된다. 말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며 뚜렷한 서열을 가지고 있고 보통 한 마리의 암말이 무리를 이끈다. 위험이 닥쳤을 때에는 보통 도망을 치는 습성이 있으나, 이것이 불가능하거나 자신의 새끼가 위험에 닥쳤을 때와 같은 경우에는 맞서 싸우게 된다.
초식동물로서 말은 시각과 청각이 뛰어나며, 특히 시야는 약 350 이상이며 양쪽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는 약 65이다. 말은 서서 또는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으며 다양한 소리와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말의 성장은 품종과 크기, 성별 그리고 말의 주인에 따라 차이가 크나 대개 3년 이상이 되어야 번식을 시키기 시작한다.

학명 계문강목과 크기 무게 몸의 빛깔 생식 수명 서식 장소 소리듣기
제주. 
Equus caballus
동물
척삭동물
포유류
기제목
말과
몸길이(머리에서 엉덩이까지) 2m, 꼬리길이 90㎝
350∼700㎏
흰색, 갈색, 검은색
임신기간 11개월, 1회에 1마리 낳음
25∼35년
온대의 삼림과 우림, 온대 초원
소리듣기말(소리)



전후지()는 모두 제3지()만이 발달하여 겉보기에는 하나이지만, 제2지 및 
제4지의 중수골()·중족골()은 약간 남아 있다. 
발굽은 하나이며, 너비가 넓고 튼튼하다. 
두정부()에는 앞머리털이 있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으며, 가슴이 크고, 늑골은 18쌍이나 된다. 

꼬리길이는 약 90㎝이며, 기부에서 끝까지 긴 털로 덮여 있다. 송곳니는 없고, 어금니는 크며, 치관부()가 높아서 풀을 짓이겨 먹을 수 있다. 

앞니와 앞어금니 사이에는 이가 없는 부분, 즉 치극()이 있다. 
같은 초식동물이라도 소와 같은 반추동물()에는 4개의 위()가 있으나, 말에게는 1개밖에 없다. 
그 대신 말의 장()은 대단히 길어 전체길이가 25m나 되고, 맹장도 길고 크다. 담낭은 없다. 
유두는 서혜부에 2개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12지에 말은 남성신을 상징한다. 

임신기간은 11개월로, 한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한국 특산종은 서양종과 몽골말을 교배시킨 것이다.  

ㅁ진화  과정
화석이 많이 남아 있는 파충류와 포유류 중에서도 말 무리만큼 그 진화과정이 잘 알려진 동물도 거의 없다.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유럽 등지에서 발견된 화석을 연구한 결과이며, 약 5800만 년 전의 에오세에 북아메리카의 삼림에 살았던 에오히푸스(Eohippus)라고 하는 여우만한 크기의 동물이 말 무리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에오히푸스는 다리가 짧고, 앞다리에 4개, 뒷다리에 3개의 발가락이 있으며, 나뭇잎을 먹었는데, 그 모습이 지금의 말과는 크게 달랐다. 
키는 25∼30cm이다. 

오로히푸스(Orohippus)를 걸쳐, 에피히푸스(Epihippus)로 진화됨에 따라 몸집도 점점 커지고 발가락도 앞 뒤 모두 3개가 되었으나, 이들 역시 엽식성(葉食性)이었다.
3600만 년 전의 올리고세에 나타난 메소히푸스(Mesohippus)는 세 발가락 중에서 가운데 발가락만이 자라 지금의 말 무리에서 볼 수 있는 발굽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것 역시 삼림에서 살았으며, 엽식성이었다. 
이 후 미오히푸스, 파라히푸스를 거쳐, 메리키푸스로 진화한다.

2500만 년 전의 마이오세에 나타난 메리키푸스(Merychippus)는 크기가 당나귀만한데, 목도 길었으며, 가운데 발가락을 제외한 다른 2개의 발가락은 퇴화하여 땅에 닿지 않게 되었으며, 넓은 초원에서 풀을 먹었다.
발가락이 하나인 플리오히푸스(Pliohippus)가 나타난 것은 약 1300만 년 전인 플라이오세이며, 그로부터 1000만 년 이상 지난 플라이스토세 말기에 마침내 지금의 말 무리와 같은 (屬)인 에쿠스(Equus)가 북반구 전역에 걸쳐 나타났다.
말 무리의 진화에는 발가락 수의 감소와 장대화(長大化), 협치(頰齒)의 복잡화, 대뇌의 대형화라는 일관된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 
플라이스토세에 들어서면 전세계적으로 에쿠스의 화석을 찾아 볼 수 있다.

말의 기원
가축으로서의 말의 조상으로서는 프셰발스키말(Przewalski)과 타르판말(Tarpan)을 생각할 수 있다.

프셰발스키말은 19세기 후반에 제정 러시아의 여행가 니콜라이 M.프셰발스키 대령에 의해서 몽골초원에서 발견된 초원형 야생마로서 어깨높이 1.2m, 머리가 크고 다리는 짧으며, 갈기는 짧고 직립하며 앞머리는 없고, 꼬리 기부의 털은 짧고, 몸은 회갈색인데 배와 입끝은 백색이어서 가축인 말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때는 몽골이나 고비사막 일대에 널리 분포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몽골의 서쪽 끝의 사막에 국한되어 살고 있다.

타르판말은 동유럽에서 살았던 초원형 야생마로서 앞머리가 있고 꼬리는 기부까지 긴 털로 덮여 있으며, 배가 백색이 아닌 점 등 가축인 말과 흡사하여 완전히 동일종으로 생각되고 있다.

타르판말은 1879년 우크라이나에 있던 1마리가 죽은 후에는 완전히 절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마의 가축화는 소•개•양보다는 늦지만, BC 3000년경에는 중앙아시아의 고원지대에 정주하고 있던 아리안인들에 의해서 사육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말의 품종은 100~200종에 달한다. 
말의 품종은 원산지에 따라 동양종과 서양종, 용도에 따라 승용마·경마·역용마로 구분할 수 있다. 
크기에 따라 조랑말(pony, 포니)·가벼운 말(light horse, 경종마)·무거운 말(heavy horse, 중종마)로 구별이 가능하다.

원산지에
동양종은 아랍종과 같이 키가 1.5미터 정도로 작은 말이다. 
머리가 비교적 작은 데 비하여, 목은 길며, 다리 역시 길고, 큰 눈을 가지고 있다. 
피하지방이 적고 근육질인 말이다. 
성질은 날쌔고 사나운 편이다.
반면, 서양종의 경우, 체격이 크다. 
머리가 크고, 목은 굵고 짧다. 허리가 길고, 다리가 두꺼우며, 눈은 가늘다. 
동양종에 비해, 뼈가 부드러우며. 피부가 두껍고, 지방도 많다. 
성질은 비교적 둔하고 굼뜬 편이다.

 

용도에 구분
승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아랍종(Arabian horse):아라비아가 원산지로, 체격은 작으나 속력이 빠르고 기품이 있으며, 몸빛깔은 회색·밤색·사슴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은 아랍종의 피를 받지 않은 말이 없다. 
② 서러브레드종(Thorough-bred):영국 원산으로, 동작이 경쾌하고 속력이 빠르므로 경마용으로 많이 쓰이며, 몸빛깔은 사슴색·밤색이 많다. 
말의 개량에는 아랍종과 함께 서러브레드종이 쓰이는데, 근래에 와서는 개량이 너무 많이 되어서 하지(下肢)가 약한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③ 앵글로아랍종(Anglo-Arab):프랑스에서 아랍종과 서러브레드종을 교잡시켜 만든 것으로 체형은 아랍종에 가깝다. 
체질이 튼튼하고 지구력이 있으므로 일반 승용마로 적당하며, 몸빛깔은 사슴색·밤색인 것이 많다.

경마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앵글로노르만종(Anglo-Norman):프랑스 원산으로, 원래 경마용이나 승용으로도 쓰이는데, 승용마로는 머리와 목이 너무 무거운 편이고 기품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결점이 있다. 
몸빛깔은 사슴색인 것이 많다. 
② 해크니종(Hackney):영국 원산으로 앞다리를 높이 쳐들고 활발하게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웅장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주로 경마용으로 쓰이나 승용으로도 쓰이며, 몸빛깔은 사슴색과 밤색이다. 
③ 아메리카트로터종(American trotter):미국 원산으로, 특히 걸음이 빠르고 머리와 목이 가벼우며, 몸도 가벼운 편이다. 
몸빛깔은 사슴색과 밤색이다.

역용(役用)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샤이어종(Shire):영국 원산으로 농경마로도 쓰이는 세계 최대형의 말이며, 몸빛깔은 사슴색이 가장 많고 밤색·검은색인 것도 있다. 
② 클라이즈데일종(Clydesdale):영국 원산으로 동작이 경쾌하며 걸음이 빠르다. 
주로 농경용으로 쓰이는데, 몸빛깔은 사슴색이 많다. 
③ 페르슈롱종(Percheron):프랑스 원산으로 근육이 잘 발달되어 힘이 세고 걸음걸이가 확실하며 동작이 경쾌하다. 
농경용으로 적당하며, 몸빛깔은 회색·검은색이 많다.

구분
조랑말(輕種, Pony)은 크기가 1.4~1.5 미터를 넘지 않는 작은 말이다. 
가벼운 말의 경우, 약 1.5~ 1.75 미터 정도 되는 말, 무거운 말의 경우, 1.6~ 1.8 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말을 가리킨다.

조랑말(포니)





고틀란드





































가벼운 말(경종마)

























비엘코폴스키





































무거운 말(중종마)





















한국의 말
한국에는 옛날부터 향마(鄕馬)와 호마(胡馬)라는 2종류의 말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향마는 '과하마(果下馬)' 또는 '삼척마(三尺馬)'라고도 하였는데, 석기시대부터 신라에 이르는 동안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말로서, 과수나무 밑을 타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왜소한 나귀와 비슷한 품종이다. 
이 품종은 BC 3세기경에 북한 지방에 문화적 영향을 끼친 스키타이 문화와 함께 들어온 고원형(高原型) 타르판말이 그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마는 과하마보다 조금 큰 중형의 말로서, 그후 몽골과의 교류는 물론 특히 여진(女眞)을 통해서 들어온 북방계 말의 호칭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한국의 재래마(在來馬)는 조랑말로 대표되는데, 이 품종은 타르판말에서 유래되는 향마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혈통, 특히 몽골말이나 아랍계의 대원마(大宛馬)에서 영향을 받은 품종일 것으로 생각된다.

생태와 생식
말은 세계 각지에 분포한다. 
품종에 따라 그 번식연한은 다르지만 조숙한 품종은 3∼15세, 만숙(晩熟)한 것은 4∼18세에 봄(4∼7월)의 발정기에 수태시켜 이듬해 봄에 새끼를 낳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임신기간은 330∼345일로, 한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태어난 직후의 망아지는 몸무게가 평균 48㎏, 키가 약 93㎝인데, 성장이 빨라서 25일 무렵에는 몸무게 약 90㎏, 키 약 1m로 자란다. 

망아지는 생후 4∼5시간이면 어미말을 따라 걷기 시작하며, 5∼6개월이면 어미말로부터 떨어진다. 
2년이 지나면 발육이 끝나고, 3년이 지나면 사역(使役)에 종사한다.

수컷은 생후 15∼24개월, 암컷은 생후 15∼18개월에 성숙하지만, 아직 신체의 발육이 미숙하므로 실제 번식은 수컷의 조숙종은 3세, 경종말은 4세, 서러브레드종은 5∼6세부터 시작하여 15∼18세까지 번식에 이용되며, 암컷은 3∼4세부터 15∼16세까지 번식에 이용된다. 

말의 난소는 봄과 여름에만 기능적으로 발동하며, 발정은 18∼26일(평균 23일) 주기로 일어나서 4∼11일(평균 7.5일) 지속된다. 
한국에서는 번식시기가 3월 하순부터 7월 상순이지만, 3∼6월에 번식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번식기 외에는 난소의 기능이 정지하는데, 이것은 뇌하수체전엽에서 나오는 성선자극호르몬의 분비가 멎기 때문이다. 
발정 말기에는 배란이 있는데, 난자의 수정능력 보유기간은 1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정자는 암컷의 생식기 안에서 3∼5일간 수정능력을 가지므로 배란 전 1∼2일이 번식의 적기가 된다. 

발정기간이 길고 이상 발정이 많으며, 또 개체에 따라 발정상태와 발정기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발정 3일 후부터 2일 간격으로 발정이 끝날 때까지 계속 교미시킨다. 
이때 수컷은 1일에 2회 이내로 교미시키며, 매일 교미시키는 경우에는 1주에 1일은 휴식시키는 것이 좋다. 보통 수컷 1두에 암컷 교미두수(交尾頭數)는 3세의 수말일 경우 20두, 4세 수말의 경우는 40∼60두, 5세 이상이면 경종말은 50두, 중간종말은 80두, 역용말은 100두 이하를 표준으로 한다. 

말의 임신기간은 최단 287일에서 최장 419일이며, 평균 330일이다. 
교미 후 임신이 확인되면 임신사양을 하여야 하며, 임신이 되지 않았으면 다시 교미시켜야 한다. 
유산은 다른 가축보다 많아 15% 전후로 일어나지만, 난산은 비교적 적다. 
분만은 오전 8시경에 많으며, 낮에는 적다. 
망아지가 분만되면 탯줄이 자연히 절단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배꼽에서 5∼6㎝ 떨어진 곳을 자르고 실로 맨 후 요오드팅크를 발라준다.

수명은 23∼35년이다.

망아지 사육
망아지는 분만 20∼30분이면 일어서서 젖을 먹으며, 3개월이면 털갈이를 하고, 4∼5개월에 젖을 뗀다. 
젖 뗀 후에는 단백질이 많은 콩과식물을 많이 주고 일광욕과 운동을 충분히 시켜 건강하고 강인하게 사육한다. 
1∼2세 때는 굴레를 씌워 조교를 시킨다.

말의 선택
말은 같은 품종 중에서도 지정된 용도에 적합한 체격 ·체형을 가진 것을 골라야 한다.

1) 균형 및 체형:일반적으로 역용마는 힘이 강하고 체격이 커야 하므로 체폭이 넓고 가슴이 깊으며 몸길이가 키보다 길고 네 다리는 비교적 짧고 골격이 굵은 것이 좋다. 
운반용이나 농업용 말은 힘이 강한 동시에 속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므로 체폭이 좁고 몸길이도 다소 짧으며 네 다리는 길어야 한다. 
짐 싣는 말은 키는 낮고 등과 허리는 강해야 하며 머리 및 목은 비교적 낮으며 가슴이 크고 네 다리는 짧은 것이 좋다. 
경역용종(輕役用種) 말은 속력이 필요하므로 체폭은 좁고 키는 몸길이에 비하여 약간 크며 네 다리는 비교적 길고 골격은 가늘며 근육 및 힘줄이 잘 발달되어야 한다.

2) 성질:성질이 온순해야 하므로 눈 모양이 날카롭거나 사납게 생기지 않아야 하며, 귀가 뒤로 향해 있고 사람을 경계하는 동작을 보이는 말은 좋지 않다.

3) 종마의 선택:종마는 외모심사(外貌審査) ·능력검정(能力檢定) ·혈통조사 ·후대검정(後代檢定) 등을 거쳐 선발한다. 
외모심사에 의해서 품종의 특징을 잘 구비하고 체형이 우수하며 체질이 강하고 성질이 온순하며 영양상태가 양호하여 살이 적당히 붙어 있는 것을 선택한다. 
능력검정에 의해서 역용마는 역용능력이 우수하고 경주마는 속력이 빠른 것을 고른다. 한편 혈통조사로 선조 ·형매와 유전적으로 우수한 것을 골라야 한다.

 

젖의 이용
양젖·우유와 마찬가지로 유목민들이 특히 즐겨 마신다. 
고대에는 북유럽의 리투아니아인·에스토니아인이 말젖을 마셨는데, 몽골의 칭기즈칸 시대에는 말젖을 마시는 일이 귀족만의 특권이었다. 
지금도 키르기스인은 말젖으로 쿠미스라고 하는 마유주(馬乳酒)를 만들어 마신다. 
이것은 말젖에서 버터를 제거하고 발효시켜 산미(酸味)를 지니게 한 것인데, 젖산음료(요구르트 등)는 이 마유주에서 착안하여 만든 음료이다.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말젖을 열을 내리는 특효약이라 하여 상류사회에서 즐겨 마셨다.  
말을 소중히 여겼던 고대 게르만족은 말젖을 마시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우유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젖을 마시는 유목민은 옛날에 유목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우유나 염소젖을 마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의 말사육
한국에서의 말 사육은 선사시대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나, 문헌상으로는 부여·옥저·고구려 등에서 이미 목장을 설치하여 소·돼지와 더불어 말의 목양(牧養)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우경(牛耕)의 시작과 더불어 기마전(騎馬戰)의 보급으로 말의 수요가 늘어나 우마목장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우마를 중심으로 한 국영·민영 목장이 전국에 174개소에 이르게 되어 말에게 먹일 사료가 큰 문제가 되자 중국에서 목숙(苜高:개자리)을 수입해 이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고려에서는 초기부터 획기적인 축마제도를 갖추어 1025년(현종 16)에 목감양마법(牧監養馬法), 1159년(의종 13)에 축마요식(畜馬料式)을 제정하여 말을 사용 목적과 종류에 따라 전마(戰馬)·잡마(雜馬)·빈마(牝馬)·파부마(把父馬)·별립마(別立馬)·어마(御馬)·반마(伴馬)·상립마(常立馬) 등으로 구분하고, 이를 청초기(靑草期:4~9월)·황초기(黃草期:1~3월, 10~12월) 등 계절에 따라 사료의 품종과 양에 차이를 두어 사육하는 등 축마의 과학화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축마체제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원(元)나라의 관계가 깊어진 1276년(충렬왕 2)에는 제주 등에 몽골식 목장을 설치한 뒤, 원나라로부터 대원마(大宛馬)·달단마(알씸馬)·나귀 등을 들여와 한국 고유의 재래종 말과 함께 목양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이 증산됨에 따라 원나라·명(明)나라로부터 징마(徵馬) 요구도 잦아지게 되자 고려는 원나라에 약 20회에 걸쳐 수만 필의 말과 소를 보냈고, 명나라에는 33회에 걸쳐 약 3만 필의 말을 보냈다.
조선시대에도 "말의 생산은 나라를 부(富)하게 한다", 
말은 사료를 하루 4회 준다. 
공복이 심할 때에는 먼저 건초·청초를 2∼3㎝로 잘라 물에 적신 다음 곡류·쌀겨 등을 잘 혼합하여 준다. 
조사료(마초)를 추가하여 줄 때에는 사료를 주는 중간이나 야간에 간식으로 준다. 
말이 먹는 사료의 종류는 야건초·대맥·목건초·골분·연맥·밀기울·소금·첨가제 등이다. 
사료의 기본 구성은 다음과 같다.
ⓛ농후사료: 운동이나 발육에 필요한 사료로, 연맥·밀기울·옥수수·콩 등이 있다.
②조사료: 비타민과 양질의 단백질, 미네랄을 포함한 사료로, 사료·건초·짚 등이다.
③특수사료: 조사료나 농후사료에 부족한 영양분을 포함한 무기염류나 비타민 등을 포함한 사료이다. 
"나라의 부(富)는 말의 수로써 결정된다"는 기치 아래 말의 증산에 힘써 전국에 53개소(세종 때)의 국영 목마장을 설치하고, 말의 수에 따라 목부(牧夫)를 배치하였다. 
말의 증산정책에 크게 힘을 기울여도 목축류 가운데 말의 수요가 가장 많아 말의 공급 문제는 항상 위정자들의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이 당시의 말의 용도는 군사상의 전마(戰馬)와 통신용의 역마(驛馬), 교통·운반·교역용(交易用) 등으로 다양하였을 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궁중과 관아에서 말고기의 수요가 늘게 됨에 따라 말의 명산지인 제주에서 건마육(乾馬肉)을 공물(貢物)로 바치게 하기도 하였다. 
말은 이 밖에도 가죽·털·힘줄[馬筋]은 가죽신·장신구 등에 사용되었고, 갈기[馬住]·꼬리는 갓 또는 관모(官帽:住帽·住笠 등)로 쓰였으며, 마분(馬糞)은 비료·약용의 원료나 연료로도 쓰이는 등 부산물의 용도도 다양하였다.

신화와 민속
말은 제왕출현의 징표로서 신성시했으며 초자연적인 세계와 교통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은 말이 전해준 알에서 태어났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타고 땅 속을 통하여 조천석(朝天石)으로 나아가 승천했다는 기린말도 말을 신성시한 징표이다. 

조선 태조는 서울 동대문 밖에 마조단(馬祖壇)을 설치, 중춘(仲春)에 길일을 택하여 제사를 지냈다. 
마조란 말의 수호신인 방성(房星)의 별칭이다. 
방성은 천자를 보위하고 천마를 관장한다.

혼인 풍속에서 신랑은 백마를 타고 가는데, 이것은 말과 관련된 태양신화와 천마(天馬)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말은 태양을 나타내고 태양은 남성을 의미한다. 
무속에서 말은 하늘을 상징하며 날개 달린 천마는 하느님[上帝]이 타고 하늘을 달린다고 전한다.

민간에서는 말을 무신으로 여겼으며 쇠나 나무로 말 모양을 만들어 수호신으로 삼기도 하였다. 
고래(古來)로 기마병은 전투를 승전으로 이끈다 하여 말은 씩씩한 무사를 나타내며, 말띠에 태어난 사람은 웅변력과 활동력이 강하여 매사에 적극적이라 하였다. 
12지에 말은 남성신을 상징한다.
기제목(奇蹄目) 말과의 포유류이며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가축으로 사육되었다.
말과의 포유류. 옛날에는 인간의 식량을 위한 사냥의 대상이었으나, 그 후 군마(軍馬)나 밭갈이에 이용되었고, 최근에는 주로 승용(乘用)이나 스포츠용으로 이용된다.
인간에게 중요한 가축의 하나로, 전세계에서 널리 사육되고 있다. 
옛날에는 인간의 식량을 한 사냥의 대상이었으나, 그후 군마(軍馬)나 밭갈이에 이용되었고, 최근에는 주로 승용(乘用)이나 스포츠용으로 이용된다.

말의 몸은 달리기에 알맞도록 네 다리와 목이 길다. 
얼굴도 긴데, 이것은 치열(齒列)이 길기 때문이다. 

코에는 나출부(裸出部)가 없고, 윗입술을 잘 움직이는데, 이것으로 풀을 입 안으로 밀어넣는다. 
초식성으로 생초·건초·곡물을 먹는다. 
전후지(前後肢)는 모두 제3지(第三指)만이 발달하여 겉보기에는 하나이지만, 제2지 및 제4지의 중수골(中手骨)·중족골(中足骨)은 약간 남아 있다. 
발굽은 하나이며, 너비가 넓고 튼튼하다. 

두정부(頭頂部)에는 앞머리털이 있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으며, 가슴이 크고, 늑골은 18쌍이나 된다.

꼬리길이는 약 90㎝이며, 기부에서 끝까지 긴 털로 덮여 있다. 
송곳니는 없고, 어금니는 크며, 치관부(齒冠部)가 높아서 풀을 짓이겨 먹을 수 있다. 
앞니와 앞어금니 사이에는 이가 없는 부분, 즉 치극(齒隙)이 있다. 
같은 초식동물이라도 소와 같은 반추동물(反芻動物)에는 4개의 위(胃)가 있으나, 말에게는 1개밖에 없다. 

대신 말의 장(腸)은 대단히 길어 전체길이가 25m나 되고, 맹장도 길고 크다. 
담낭은 없다. 
유두는 서혜부에 2개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12지에 말은 남성신을 상징한다. 
학명계문강목과크기무게몸의 빛깔생식수명서식장소
Equus caballus
동물
척삭동물
포유류
기제목
말과
몸길이(머리에서 엉덩이까지) 2m, 꼬리길이 90㎝
350∼700㎏
흰색, 갈색, 검은색
임신기간 11개월, 1회에 1마리 낳음
25∼35년
온대의 삼림과 우림, 온대 초원

인간에게 중요한 가축의 하나로, 전세계에서 널리 사육되고 있다. 옛날에는 인간의 식량을 한 사냥의 대상이었으나, 그후 군마()나 밭갈이에 이용되었고, 최근에는 주로 승용()이나 스포츠용으로 이용된다.

말의 몸은 달리기에 알맞도록 네 다리와 목이 길다. 얼굴도 긴데, 이것은 치열()이 길기 때문이다. 코에는 나출부()가 없고, 윗입술을 잘 움직이는데, 이것으로 풀을 입 안으로 밀어넣는다. 초식성으로 생초·건초·곡물을 먹는다. 전후지()는 모두 제3지()만이 발달하여 겉보기에는 하나이지만, 제2지 및 제4지의 중수골()·중족골()은 약간 남아 있다. 발굽은 하나이며, 너비가 넓고 튼튼하다. 두정부()에는 앞머리털이 있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으며, 가슴이 크고, 늑골은 18쌍이나 된다. 

꼬리길이는 약 90㎝이며, 기부에서 끝까지 긴 털로 덮여 있다. 송곳니는 없고, 어금니는 크며, 치관부()가 높아서 풀을 짓이겨 먹을 수 있다. 앞니와 앞어금니 사이에는 이가 없는 부분, 즉 치극()이 있다. 같은 초식동물이라도 소와 같은 반추동물()에는 4개의 위()가 있으나, 말에게는 1개밖에 없다. 그 대신 말의 장()은 대단히 길어 전체길이가 25m나 되고, 맹장도 길고 크다. 담낭은 없다. 유두는 서혜부에 2개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12지에 말은 남성신을 상징한다. 

임신기간은 11개월로, 한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한국 특산종은 서양종과 몽골말을 교배시킨 것이다.  
임신기간은 11개월로, 한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한국 특산종은 서양종과 몽골말을 교배시킨 것이다.  
말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동물의 화석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3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신생대 제3기층 초기의 지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초기의 말은 체고(體高)가 25∼50㎝로서 머리와 목이 짧고 배면(背面)이 두드러지게 구부러졌으며, 4지(肢)가 매우 짧고 여우 정도의 크기로서 오늘날의 말과는 달리 앞다리에 4지(趾), 뒷다리에 3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났을 때는 미국과 유럽에 있던 말의 조상은 전멸되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만 조금 남아 있었다. 오늘날의 가축화된 말은 중앙아시아가 원산으로 추정된다. 소련의 탐험가인 프르제발스키(Przewalski)가 몽고의 중가리아(Dzungaria)사막에서 발견한 프르제발스키말이 야생말에 가장 가까운 체형을 가지고 있다. 야생말은 초원형·고원형·삼림형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초원형: 프르제발스키말이 이 형에 속하며, 대표적인 가축은 몽고말이다.
② 고원형: 타르판(Tarpan)말이 이에 속한다. 한자어로는 달단마(韃靼馬)라 하며, 우리나라의 고대 마산(馬産)과 많은 관련이 있어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1766년 그멜린(Gmelin)에 의하여 발견되었는데 19세기 후반에 멸종되었다. 이 계통에 속하는 대표적인 가축으로는 아랍말이 있다.
③ 삼림형: 빙하기가 끝나고 각 지방에 삼림이 우거진 때부터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삼림지대에 널리 퍼진 말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무난히 자란 대형의 말이다. 북부독일에서는 이 대형마의 두골이 홍적세(洪積世: 新生代의 제일 말기인 제4기의 전반)의 유물로 출토되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산의 핀츠가우어(Pinzgauer)와 벨기에말이 이에 속한다.

형태 및 생태

말의 형태는 품종에 따라 차이가 많으나 일반적으로 목이 길고 귀는 서고, 기갑부(鬐甲部)가 높고, 등·허리가 짧으며 미근부(尾根部)가 높다. 갈기와 꼬리는 아름답게 늘어져 있다. 털의 색은 다양하며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한다.
① 율모(栗毛): 밤색으로 여기에는 황금색에서부터 암갈색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② 다모(茶毛): 대체로 색이 붉은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도 농담(濃淡)의 차이가 많다. ③ 청모(靑毛): 옛말의 가라마에 해당되는 것으로 털색이 전체적으로 검은빛을 띤다. ④ 월모(月毛): 이것은 고어의 공골말에 해당하는 것으로 피모(皮毛)가 여린 황백색을 띠고 있다. ⑤ 백모(白毛): 설모(雪毛)라고도 하는데 털빛이 순백색이다.
⑥ 위모(葦毛): 출생시에는 갈색이나 흑색이었다가 나중에 백색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총(驄)에 해당된다. ⑦ 박모(駁毛): 이것은 고어의 월라에 해당하는 것으로 바탕에 흰 백반(白斑)이 있는 것을 말한다. 생장속도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3, 4세에 발육이 완성된다. 임신기간은 평균 335일 정도이며 생후 4, 5개월에 젖을 떼게 된다. 15세까지 번식이 가능하다.

품종

말의 품종은 형태·능력·원산지·용도 등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용도에 따라 승용(乘用)·만용(輓用: 수레를 끄는 용도)·태용(駄用: 짐을 싣고 나르는 용도)으로 분류한다. 또 체중에 따라 경종·중종·중간종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승용마 중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는 말은 아랍종이다. 이 말은 아라비아반도가 원산으로 타르판계통의 말인데 예로부터 우수한 품종의 하나로 알려져왔다. 중국의 고문헌에 천마 또는 서역마로 기록된 말이 바로 이 계통의 말이다. 이 종은 체형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경쾌한 운동성에 체질이 강건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량원종으로 이용하는 우수한 말이다. 이 밖에 승용마로는 영국 원산의 서러브레드(Thoroubred)와 프랑스에서 개량한 앵글로아랍(Anglro-Arab) 등이 있다.
만용으로서는 프랑스에서 산출되는 페르셔롱(Percheron)이 유명하고, 중간종으로는 프랑스의 앵글로노르만(Anglo-Norman)이 유명하다. 만용마는 전시에 중포·치중(輜重) 장비를 끄는 데 이용되었다.
왜마(矮馬)는 셔틀랜드포니(Shetland Pony)가 유명하고 재래종으로는 몽고마와 우리나라의 제주마가 있다. 제주마는 암수 평균체고가 116㎝ 정도인 조랑말로서 소형마에 속한다. 제주도의 조랑말은 수컷보다 암컷이 약간 체격이 크고 체장이 체고보다 짧다. 이것은 제주마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제주마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온 관계로 기후·풍토에 잘 적응되어 있고 체격이 강건하고 번식력이 왕성하다. 또 조식(粗食)과 조방(粗放)한 사양관리에도 잘 견딘다. 능력이 우수하여 105㎏의 짐을 질 수 있고, 1일 32㎞씩 22일간을 행군하더라도 잘 견디어내는 체력과 인내력이 있다. 특히 굽이 치밀하고 견고한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로의 전파경로
말의 가축화는 동부유럽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서기전 3000∼2400년경으로 추정된다. 말은 그 특수한 용도로 인하여 가축화된 이래로 세계 도처에 퍼져 사육되었으며, 과학문명이 근대화되기 이전에는 전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몽고 계통의 호마와 향마라는 두 계통의 말이 존재하였다. 향마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들이 있다.
① 가모의 설: 가모(加茂儀一)는 우리나라 고대 기마인들이 스키타이식의 활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북부지방에서는 스키타이 기마민족으로부터 얻은 말이 일찍부터 사육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818년에 보고된 김해 패총을 비롯하여 평양 시외의 미림리유적,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의 소평동패총, 경기도 광주군 암사동(현재 서울 강동구) 및 경상북도 점촌유적 등에서 발견된 말의 치아로 우리나라에 석기시대부터 말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축화된 말인지 야생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② 하야시다의 설: 하야시다(林田重幸)는 중국의 쓰촨성·윈난성 일대에는 몽고마와는 다른 현재의 사천마의 조상인 소형마가 있었고, 이것이 구주 서남도서(제주도 포함)에 들어왔다고 추정하여 제주도의 조랑말로 대표되는 재래마의 남래설(南來說)을 주장하였다.
③ 노자와의 설: 노자와[野澤謙]는 제주마의 유전자 구성을 몽고마 계통의 중형마와 남방도서마 계통의 소형마 등과 비교 검토한 결과, 체격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북방의 중형마에 가깝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향마로 불리는 우리의 재래마는 고문헌의 기록과 형태학적 연구를 통해 볼 때, 그 체형이 소형이어서 형태학적 견지에서는 중국 남방의 소형마들과 비슷하나, 몽고마 계통으로 체형이 여러 가지 원인에서 점점 소형화된 것뿐이라고 하겠다.
고문헌에 기재된 재래마의 기록은 매우 많다. 말의 이용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원봉2년……우거청강태자헌마운운(元封二年……右渠請降太子獻馬云云)”이라는 내용으로 말을 사육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 밖에 군용으로 이용하였다는 기록과 신라에서는 거(阹)라는 말 목장의 수도 많았고, 목숙(苜蓿)을 대륙에서 들여와서 말의 사료작물로 재배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백제에서는 일본에 말을 보낸 사실도 있다. 다른 문물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중형마는 북방 계통으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인정되고 있다. 문헌적으로 우리나라의 『삼국사기』 등에는 기록이 없다.
『일본서기』에서는 “백제왕견 아직기양마이필즉양지어경판상구인이아직기영장사(百濟王遣阿直岐良馬二匹卽養之於輕坂上廄因以阿直岐令掌飼)”라 하였고, 『고사기(古事記)』에서는 “백제국조고왕이목마일필비마일필부아직길사역공상(百濟國照古王以牧馬壹疋比馬壹疋付阿直吉師亦貢上)”이라 하여 백제에서는 아직기(阿直岐)로 하여금 일본에 말 두 필을 보내고 또 이의 사육을 맡게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때 일본에 좋은 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사육방법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고려 때에는 이색(李穡)이 “아동방마유이종왈호마북방래자야왈향마국중소출야국마여로무족이양마(我東方馬有二種曰胡馬北方來者也曰鄕馬國中所出也國馬如驢無足以良馬)”라 하여 국내에 두 종류의 말이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용의 역사
승용과 만용의 역사
말의 용도는 승용·만용·태용·수렵용·희생용·육용 등 다양하나 가장 큰 매력과 효용은 그 속력에 있다. 따라서 말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승용이 주가 되고 그 밖의 용도는 부수적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고구려 동명성왕의 건국신화, 대무신왕의 승용마인 ‘거루(駏)’에서처럼 일찍부터 승용으로 이용되어 왔다.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 역시 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안악고분의 벽화에는 말이 수레를 끄는 그림이 있어 만용으로도 일찍부터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가지 이용이 우리 나라에서의 말 생산의 가장 큰 목적으로 예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희생용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전(韓傳)에 “부지승우마우마주어송사(不知乘牛馬牛馬晝於送死)”라 되어 있어 삼한에서는 말과 소를 순전히 수장용으로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말은 서유럽이나 일본 같은 지역에 있어서는 농경용으로 중요한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밭 밟기에 이용한 것 외에는 농경에 이용된 일이 없었다.

육용과 부산물의 이용
축산물과 관계되는 문화 분류에 있어서 식물문화권·미식문화권·착유문화권·비착유문화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고기의 식용에 있어서도 마육문화권과 비마육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 말고기의 식용은 희생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을 희생으로 제단에 바친다는 것은 곧 사람이 그 고기를 먹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순장을 한 일은 있으나 제단에 희생으로 바친 일은 없었으므로 말고기를 식용하는 풍습은 성립되지 않았다.
다만 제주도에서 말고기의 포를 진상한 기록은 있다. 대체로 고대 유럽·중국·인도는 말고기를 먹는 문화권에 속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총이 망건·탕건 등의 재료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설화·민속
설화
말과 관련된 설화로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설화가 전해진다. 서기전 69년 경주의 알천에서 6촌의 장들이 모여 군주의 선출을 의논하고 있을 때 남쪽 양산 밑의 나정에 백마가 무릎을 꿇고 있다가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자리에는 큰 알 하나가 있었고 그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박혁거세라는 것이다.
이 밖에 고구려의 명마 거루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대무신왕 때 부여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골구천이라는 곳에서 거루라는 신마를 잃어버렸다. 일년이 지난 뒤 그 말이 부여마 100여 필을 이끌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민속
우리 민속에 혼인을 정할 때 궁합을 보는 일이 많다. 이때 말띠의 여자, 특히 경오년(庚午年)에 태어난 여자는 백말띠라 하여 기가 세서 팔자가 사납다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오(午)는 화성(火性)이어서 성질이 급한데서 나온 속설이다. 이와 같이 말이 강한 양성(陽性)이라는 데서 액귀나 병마를 쫓는 방편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마정의 발전과정
말을 목양하여 이를 군사 및 교통·통신·산업용 또는 외교상의 교역품으로 공급하였던 행정을 말한다. 역대 통치자들은 말을 중시하여 마정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의 마정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되어 삼국·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국 및 몽고의 제도 등을 받아들여 크게 발달된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따라서 한때는 수만 필씩 전마(戰馬)로 수출되어 원나라·명나라까지 그 이름을 떨쳤다. 마정의 발전과정은 다음과 같다.

초기의 마정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말이 산출되어 이용되었고 마정이 실시되었는지는 명백히 밝힐 수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마면(馬面)·마탁(馬鐸) 등의 유물로 미루어 말이 이용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기』 조선전에도 고조선에서 말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에서 명마(名馬), 고구려에서 소마, 예에서 과하마(果下馬)가 산출되었다는 기록과 변한·진한에서도 말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 이전인 청동기시대부터 말이 생산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목장도 설치되어 말을 생산하였을 뿐 아니라 고조선에서는 말 5,000필을 한나라에 헌마하기도 한 사실이 있어 이 당시에 마정이 행하여졌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마정
삼국시대에 들어와 말은 더욱 그 용도가 확대되었는데, 특히 기마전(騎馬戰)의 보급으로 전마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되어, 마정조직의 발달을 보게 되었다. 고구려는 국초부터 목장을 설치하여 양마 생산에 힘썼는데, 22년(대무신왕 5)에는 『사기』 대완열전(大宛列傳)에 전하는 신마(神馬)의 존재를 찾을 수 있어 당시에 외래 우량마를 목양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역제(驛制)와 기병제의 발달을 보게 하였다. 백제도 국초부터 목장을 설치 목양에 힘썼는데 260년(고이왕 27) 이후에는 병관좌평(兵官佐平)이 병마의 일을 관장하였으며, 또한 마부(馬部)를 설치하여 마정에 힘쓰게 함으로써 말이 교통·군사·외교면에서 크게 이용되었다. 신라는 64년(탈해왕 8)에 기마전이 행하여졌던 사실로 보아 이때를 전후하여 마정이 발달하였음을 말하여주고 있다.
487년(소지왕 9)에는 역(驛)을 설치하였으며, 516년(법흥왕 3)에 병부(兵部)를 두고, 584년(진평왕 6)에는 승부(乘府)를 두어 마정에 철저를 기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목장(牧場)은 크게 발달하여 669년(문무왕 9)에는 전국에 공·사목장이 174개가 존재하였다. 한편 말 사육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마료(馬料)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삼국 중 신라는 양질의 우마료인 목숙을 외국으로부터 수입, 이를 관리 재배하기 위하여 백천목숙전(白川苜蓿典)·한지목숙전(漢秖苜蓿典)·문천목숙전(蚊川苜蓿典)·본피목숙전(本彼苜蓿典) 등의 관청을 설치하기까지 하였다. 삼국시대 마정은 군사·교통·산업·외교면에서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반면 그 재정적 부담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후삼국시대에 있어서도 마정은 행하여졌다. 특히 마진(摩震:泰封)에서는 비룡성(飛龍省)이 설치되어 마정이 발달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고려시대의 마정
고려시대의 마정조직은 중앙과 지방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중앙조직은 병부 밑에 대복시(大僕寺)·전목사(典牧司)·상승국(尙乘局)·공역서(供驛署) 등의 관아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특히 병부는 마정의 최고 정책기관으로서 역마·전마 목장관리에 관한 일을 맡았다.
대복시·전목사·상승국·공역서는 실무관아로서, 그 중 대복시는 여마(輿馬) 및 구목(廄牧)을 소관하고 문종 때는 판사(判事, 정3품)와 경(卿, 종3품) 1인, 소경(少卿, 종4품) 1인, 승(丞, 종6품), 주부(注簿, 종7품) 등을 배치하였다. 그 뒤 1308년(충선왕 즉위년)에 사복시(司僕寺)로 개칭되는 동시에, 이에 상승국·전목사·제목감(諸牧監) 등이 합병되고, 영사(領事)·정(正)·부정(副正)·승(丞)·직장(直長, 종7품) 등이 배속되었다.
그 뒤 곧 판사·부령(副令, 종4품)·승·직장으로 개편되었으며, 그 뒤에도 거듭 개편되어갔다. 이 밖에 대첨장(大韂匠: 行首校尉) 1인, 안욕장(鞍褥匠: 行首校尉) 1인과 잡직장교(雜職將校) 2인을 배치하였다. 전목사는 전국 목장을 관장하여 말 사육을 담당하였는데, 문종 때 판사·사(使)·부사(副使)·판관·녹사(錄事)·기관(記官)·기사(記事)·서자(書者) 등을 배치하였다.
상승국은 내구(內廄: 임금의 승마, 수레)를 맡은 관아로서 충선왕 원년에 사복시에 병합되었다가 이듬해 봉거서(奉車署)로 고치었다. 그 뒤 다시 상승국으로 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중방(重房)에 병합되었다. 공역서는 전국 525개의 우역(郵驛)을 관장하여, 역마·포마(鋪馬)의 기발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등 마정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지방조직은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던 목장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졌는데, 각 목장에는 목감직(牧監直)과 노자(奴子: 뒤의 牧子)를 배치해서 말 사육에 종사하게 하고 또 간수군(看守軍)인 장교와 군인을 배치해서 감독하도록 하였다. 목감직의 지위는 병과권무직(丙科權務職)으로, 연 녹봉 8석 10두를 받는 최하층의 관직이었다. 노자는 천인 신분으로 청초절(靑草節: 春·夏·秋期)에 대마(大馬) 네 필을 사육하는 것을 직책으로 하였는데, 그 직이 고역(苦役)이었다.
이상과 같은 지방조직은 1276년(충렬왕 2)에, 몽고가 탐라도(耽羅道: 제주도)에 목마장을 건설하고 몽고의 말과 몽고인 말 사육전문가인 목호(牧胡)들을 계속 파견하여 목마사업을 적극화함으로써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종래 말 사육에 종사하였던 노자는 목자로 개칭되는 동시에 그 신분도 차츰 신량역천(身良役賤)의 계층으로 전화되어갔다.
지방조직의 단위가 되었던 목장은 『고려사』 병지 마정조(馬政條)에 용양(龍驤: 黃州)·농서(隴西: 洞州)·은천(銀川: 白州)·양란(羊欄: 開城)·좌목(左牧: 貞州)·회인(懷仁: 淸州)·상자원(常慈院: 見州)·엽호현(葉戶峴: 廣州)·강음(江陰)·동주(東州) 등 10개의 목장명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밖에 전국 각지에 목장이 설치된 기록이 전하고 있고, 또한 신라시대에 174개의 목장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고려시대에도 약 160개 정도의 목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중 탐라목장은 그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였다. 고려시대 마정으로 특기할 것은 말 사육책에 획기적 조처를 취한 것이다. 즉 1025년(현종 16)에는 노자들의 직책을 명시하여 청초절에 대마 네 필을 사육하여 새끼를 생산하도록 하되 사육방법에 있어 마료(馬料)는 계절에 따라 종류와 수량의 차를 두었다.
황초절(黃草節: 冬期)에는 하루 한 필의 말에 말두(末豆) 3승(升), 실두(實豆) 3승을, 그리고 청초절에는 말두 3승을 먹이도록 하였다. 그 뒤 1159년(의종 13)에는 전목사가 주청하여 전국 목장의 축마료식(畜馬料式)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목장관리책이 확립되고, 말 사육방법은 과학성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는 10여 종류가 넘는 우수한 말을 생산하여, 그 이름이 원나라·명나라에까지 떨치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쉴새없는 징마(徵馬) 요구에 부딪치어 마정은 외교문제 해결에 큰 구실을 하게 되었다. 고려는 여진과의 외교에서 말거래를 약 130회 하였으나 그 대부분은 말을 수입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원나라와는 약 30회에 걸쳐 다량의 말과 마료를 수출하는 관계로, 또 명나라와는 35회에 약 3만 필을 수출하는 관계로 외교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로 인해 말이 부족하게 되어 문무관은 물론 심지어는 민간마를 탈취하기까지 하여 이를 충당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마가(馬價)가 상승하여 말 한 필이 노비 2, 3명과 거래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고려는 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목장전(牧場田)·마전(馬田) 및 역전(驛田)을 배정하였고, 방대한 마료(裨·豆·田采·芻 등)와 노자(목자)와 수의박사(獸醫博士: 田柴 16科, 田結 22結 지급) 등의 인건비를 부담하였다. 이로써 마정은 전마·역마 그리고 말을 외교상의 교역품으로 공급함으로써 고려사회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시대의 마정
조선시대의 마정조직은 처음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실시하였으나 그 뒤 수차례에 걸친 개혁을 통해 『경국대전』의 완성으로써 조선적인 마정조직을 정비하기에 이르렀다. 중앙조직은 병조 밑에 사복시가 전국 마정을 관장하였다. 병조에는 승여사(乘輿司)·무선사(武選司)·무비사(武備司)의 3사가 있었다.
그 중 승여사는 구목(廄牧)·여연(輿輦)·정역(程驛) 등을 맡고, 무선사는 마정에 종사하는 관리들의 인사에 관한 일을 맡고, 무비사는 전국의 마적(馬籍)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였다.
사복시는 마정집행의 실무기관으로서 『경국대전』에 의하면 정2품 이상의 제조(提調) 2인을 추대하고, 장으로 정3품의 정(正) 1인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 밑에 부정(副正, 종3품)·첨정(僉正, 종4품)·판관(종5품)·주부(注簿, 종6품)·안기(安驥, 종6품)·조기(調驥, 종7품)·이기(理驥, 종8품)·보기(保驥, 종9품)·마의(馬醫)·서리(書吏)·제원(諸員)·차비노(差備奴)·근수노(根隨奴)·견마배(牽馬陪)·이마(理馬)·창직[庫直]·대청직(大廳直)·사령(使令)·군사 등이 배치되었다.
궁의 마정을 위하여 내사복시를 설치하였으며, 이 밖에 의정부는 최고정책기관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지방조직은 각도 관찰사 책임관할하에 수령이 감목관(監牧官)을 겸임(일부지방은 專住의 감목관을 두는 수도 있다)하여, 각 목장에 말 사육에 종사하는 군두(郡頭)·군부(郡副) 및 목자를 지휘 감독하도록 조직하였다.
이러한 조직은 국초부터 수없이 많은 개혁과정을 통하여 1425년(세종 7)에 일단 정비된 조직을 갖추고 그 뒤 약간의 수정을 거쳐 『경국대전』의 제정으로 확립되었다. 곧 제도 목장을 자마(雌馬: 암말) 100필과 웅마(雄馬: 수말) 15필로서 1군(郡)으로 삼고, 매1군마다 군두 1인, 군부 2인(목자 중에서 우수한 자를 골라서 정함)과 목자 4인을 배정하고, 매년 새끼생산 책임량으로 1군당 85필 이상을 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목장수는 약 200개가 존재하였으며 이에 종사하는 목자는 5,178명, 군두 1,295명, 군부 2,589명, 감목관 21명 등 총 9,083명이었다. 그 중 목자는 우·마 생산을 직접 담당한 자로서 신분은 신량역천에 속하는 계층이었다. 그들의 임기는 16세에서 60세까지였는데, 1425년에는 암말 25필을 사육하여 1년에 새끼 20필 이상을 생산하도록 하더니, 『경국대전』의 제정으로 1년에 21필 내지 22필을 생산해야만 되었다.
이는 목자의 사육기술이 고도에 달하고 있음을 말하여 준다. 국가는 그 대가로서 목자에게 목자위전(牧子位田) 2결을 지급하여주고, 복호(復戶)하거나 봉족을 배정하고, 근무성적이 우수할 때는 토관(土官)·군무·군부·백호(百戶)·천호(千戶)의 직위를 수여하고 또한 경관(京官)으로도 임용하였다.
이러한 처우에 비해, 그 몇 배나 되는 고역(苦役)이 그들에게 가해지는 이외에 그 직은 종신 세습으로 자손에까지 전하여 타직으로의 전직이 용서되지 않았으며, 마초(馬草)·토산물을 바쳐야 되고, 또한 목마군(牧馬軍)으로서 복무를 하여야만 되었다. 감목관은 종6품 이상으로 목장관리 및 마적·목자의 호적 보관과 목자의 근무성적을 평가하여 그 진퇴를 결정하였다.
마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취한 정책은 첫째는 목장전·마전·역전을 배정하여 경비에 충당하고, 둘째는 우량마를 확보하기 위하여 중국 및 야인으로부터 종마(種馬:달단마·大宛馬등) 등을 구입, 종자개량에 힘써 약 90여 종의 말을 생산하였는데 그 중 철청준(鐵靑駿)·오명마(五明馬) 등 20여 종은 명나라까지 알려진 명마로서 외교적으로 거래되었다.
셋째는 『마의서』·『마경(馬經)』·『농사직설』·『고사촬요』 등의 서적을 발간하여 과학적 양육법 등을 참고로 말의 치료예방에 노력하고 마의(馬醫, 정6품에서 종9품)를 양성하여 치료·의술 및 의방(理藥·針刺 등)을 목자에게 전습시키고 또한 약재(藥材: 淋酒·淸蜜·脂油·蘆·蕎·藜·穰·松葉·鹽介子·火燒取油 등)를 개발,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의술로서는 가령 현종 때 창궐했던 우마질(牛馬疾)에 속수무책이었다.
넷째는 영양가 있는 마료를 확보하여 먹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마초전(馬草田)을 설치하고 도서 적전(籍田)에까지 곡초를 심어 목초확보에 노력하였으며 또 유사시에 대비하고자 행정구획에 따라 대·중·소로 구분하여 대읍(大邑: 大官)은 10만속, 중읍은 8만속, 소읍은 6만속, 그리고 중요도로 연변읍은 상기한 것 등에 다시 1만속을 추가 비축하게 하고 1494년에는 전 1결에 1속의 마료(芻草)를 징수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백성들은 그 부담으로 인해 허덕이는 생황을 하게 되었다.
다섯째는 말 생산에 종사하는 자(司僕寺祿官·兼官·馬醫·養馬·牧子·監牧官 등)들의 복무규정을 강화하여 우수하면 영전시키고 말을 잃어버리면 태·장형에 처함은 물론 그 수대로 변상징수하게 함으로써 말을 보호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너무 가혹하여 결국 목자들의 이역현상(離役現象)을 초래하였다.
조선시대 마정으로 말은 역마·승마 등의 교통용으로, 그리고 전마 등의 군사용으로, 농경용의 생산수단으로, 이 밖에 말갈기[馬鬃]는 갓(冠·鬃帽, 鬃竺 등)으로, 말가죽은 가죽신[馬靴鞋]과 주머니[馬造槖], 말힘줄은 조궁(造弓), 마분(馬糞)은 종이원료용으로 그리고 말고기는 식육용으로 크게 이용되었는데 특히 징마 요구에 부딪치어 마정은 외교면에서 더욱 중시되어 국초부터 세종까지 무려 6만 필의 말을 수출하게 되었다.
이로써 마가는 말 한 필에 오승포(五升布)로 대마는 상등이 500필, 중등이 450필, 하등이 400필, 중마는 상등이 300필, 중등이 250필, 하등이 200필로 거래되었다. 조선의 마정은 임진왜란 이후 쇠퇴하여 인조·효종 때는 전국 목장이 119개 소로 축소되고 숙종 때는 73개의 목장이 간전(墾田)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유한원(柳韓遠)·서유구(徐有榘) 등의 일부 실학자들은 그 재건을 주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으로 목장전을 압수함으로써 조선의 마정은 전폐되었다.


인간에게 중요한 가축의 하나로, 전세계에서 널리 사육되고 있다. 옛날에는 인간의 식량을 위한 사냥의 대상이었으나, 그후 군마()나 밭갈이에 이용되었고, 최근에는 주로 승용()이나 스포츠용으로 이용된다.
한국에는 옛날부터 향마()와 호마()라는 2종류의 말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향마는 '과하마()' 또는 '삼척마()'라고도 하였는데, 석기시대부터 신라에 이르는 동안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말로서, 과수나무 밑을 타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왜소한 나귀와 비슷한 품종이다. 이 품종은 BC 3세기경에 북한 지방에 문화적 영향을 끼친 스키타이 문화와 함께 들어온 고원형() 타르판말이 그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마는 과하마보다 조금 큰 중형의 말로서, 그후 몽골과의 교류는 물론 특히 여진()을 통해서 들어온 북방계 말의 호칭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한국의 재래마()는 조랑말로 대표되는데, 이 품종은 타르판말에서 유래되는 향마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혈통, 특히 몽골말이나 아랍계의 대원마()에서 영향을 받은 품종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의 말 사육은 선사시대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나, 문헌상으로는 부여·옥저·고구려 등에서 이미 목장을 설치하여 소·돼지와 더불어 말의 목양()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우경()의 시작과 더불어 기마전()의 보급으로 말의 수요가 늘어나 우마목장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우마를 중심으로 한 국영·민영 목장이 전국에 174개소에 이르게 되어 말에게 먹일 사료가 큰 문제가 되자 중국에서 목숙(개자리)을 수입해 이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고려에서는 초기부터 획기적인 축마제도를 갖추어 1025년(현종 16)에 목감양마법(), 1159년(의종 13)에 축마요식()을 제정하여 말을 사용 목적과 종류에 따라 전마()·잡마()·빈마()·파부마()·별립마()·어마()·반마()·상립마() 등으로 구분하고, 이를 청초기(:4~9월)·황초기(:1~3월, 10~12월) 등 계절에 따라 사료의 품종과 양에 차이를 두어 사육하는 등 축마의 과학화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축마체제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도 '말의 생산은 나라를 부()하게 한다', '나라의 부()는 말의 수로써 결정된다'는 기치 아래 말의 증산에 힘써 전국에 53개소(세종 때)의 국영 목마장을 설치하고, 말의 수에 따라 목부()를 배치하였다. 그러나 말의 증산정책에 크게 힘을 기울여도 목축류 가운데 말의 수요가 가장 많아 말의 공급 문제는 항상 위정자들의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이 당시의 말의 용도는 군사상의 전마()와 통신용의 역마(), 교통·운반·교역용 등으로 다양하였을 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궁중과 관아에서 말고기의 수요가 늘게 됨에 따라 말의 명산지인 제주에서 건마육()을 공물()로 바치게 하기도 하였다. 말은 이 밖에도 가죽·털·힘줄[]은 가죽신·장신구 등에 사용되었고, 갈기[]·꼬리는 갓 또는 관모(:· 등)로 쓰였으며, 마분()은 비료·약용·마분지()의 원료나 연료로도 쓰이는 등 부산물의 용도도 다양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한국마정사』(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1996)
  • 『마와 승마』(향문사, 1984)
  • 『한국마정사연구』(아세아문화사, 1976)
  • 「조선시대의 마정」(『한국학연구』1-2, 1968)
  • 「고려시대마정」(『불교사학논총』, 1965)
  • 「한국재래마의 계통에 관한 연구」(『한국축산학회지』7-1, 1965)
  • 「한국축산사비고」(『서울대학교 농과대학논문집』1, 1963)
  • 「삼국시대마정」(『동국사학』7, 196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horse] (두산백과)
  •  서울동물원 동물정보
 [Horse] (서울동물원 동물정보)
동식물백과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후기 시장), 2003.,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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