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1일 목요일

자금성. Forbidden City.

Forbidden City. 자금성.

자금성은 5세기 이상 중국 최고 권력의 중심지에 있던 황궁으로, 이곳에는 가구와 예술품이 있는 약 10,000개의 방과 잘 조성된 정원이 있다. 이 황궁과 이곳의 유물은 명과 청 시대 중국 문명의 가장 귀중한 증거로 남아있다.


거대한 나라 중국의 중심지였다. 중국 사람들은 이곳을 세상의 중심이자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넓은 공간에 수많은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데, 건축물 하나하나가 중국 고대 사상과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자금성은 과거 중국 왕조가 얼마나 눈부신 문화를 이루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는지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입니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궁궐.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천안문[톈안먼] 성벽은 길고 높아 보입니다. 거대한 문을 지나 조금 이동하면 500년 넘게 절대 권력의 중심지였던 거대한 궁궐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중국 황제들이 살았던 궁궐, 자금성 이다.
자금성에 살았던 중국 황제들은 하늘의 아들이란 의미로 ‘천자()’라고 불렸다고 전합니다.

명나라 제3대 황제 영락제는 황제가 된 지 4년째인 1406년, 수도를 남쪽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거대한 궁궐을 짓도록 했습니다.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14년에 걸쳐 건설한 끝에 모습을 드러낸 자금성은 이전까지의 어떤 궁궐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웅장하다.
전체 면적 72만m2, 건축 면적만도 15만m2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었지요. 길이 960m, 폭 750m인 직사각형의 공간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방의 개수도 약 9000개나 될 정도였다.

자금성은 도시 속에 지어진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면적만 보면 마을 정도의 규모이지만 동서남북으로 설치된 폭 50m의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판 못)와 10m 높이의 성벽을 보면, 완벽한 하나의 도시로 보인다.

자금성 건설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자금성의 건축 재료는 여러 곳에서 가져왔는데, 돌은 가까운 팡산 채석장에서, 벽돌은 산둥 지방에서 가져왔어요. 이 두 지역에서 자금성까지는 수십, 수백 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대리석과 나무는 쑤저우와 윈난 성 등 2000km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가져와 건물을 지었다고 함.
자금성의 방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처음 건설될 당시의 소문을 믿고 있다고 해요. 예를 들면 자금성 방의 개수가 9999개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실제로 자금성에 있는 방은 모두 8886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더 믿고 있다.

황제  업무 공간, 태화전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자금성은 질서 정연한 대칭 구조로 되어 있고, 기능에 따라 크게 외조[와이차오]와 내정[네이팅]으로 나뉘어 있어요. 외조는 황제가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고, 내정은 황제와 황후, 빈과 상궁들이 사용했던 사적인 공간이다.
자금성의 중심 출입문인 남쪽 오문[우먼]에서 보면 앞쪽에 외조가, 뒤쪽에 해당하는 북쪽에 내정이 자리 잡고 있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휴식을 취한다는 전형적인 중국 궁궐 건축 양식의 맥을 이은 것이다.

외조는 황제의 공식 집무실인 태화전[타이허뎬]과 방문객을 만나거나 신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중화전[중허뎬], 황제의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이자 연회장이었던 보화전[바오허뎬]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외조의 중심은 자금성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태화전이에요. 태화전은 황제가 중요한 나랏일을 결정하고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장소이다.
황제의 즉위식, 탄생 축하 행사, 결혼식, 국가의 칙령 발표, 외국 사신 접대 및 조공 등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주로 이곳에서 열렸어요. 그리고 군대가 전쟁터에 나갈 때 행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사상이 담긴 종합 박물관.
자금성은 거대한 건축 박물관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 박물관이며, 종합 문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나라 영락제 때 처음 지어진 건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낡아졌지만 청나라 때 고치고 새로 지으면서 명나라 때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놓았답니다. 기본 구조는 물론이고 자재와 장식 등 모든 것을 명나라 때의 건축을 바탕으로 지었다고 한다.

자금성에는 건축물 외에도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해요. 천자인 황제가 머물렀던 자금성의 공간들에는 하나같이 깊은 뜻이 숨어 있어요. 자금성이란 이름은 중국의 천문학(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던 북극성과 관련이 있어다.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진한 자주색으로 알고 있던 중국의 권력자와 천문학자들이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머무는 궁궐의 색을 자주색으로 지정한 것이다.

또한 자금성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화려한 물품들이 가득해, 황제들의 생활 모습과 옛 중국의 화려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황제가 나랏일을 볼 때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수많은 보석, 서예, 미술품, 공예품은 물론이고 궁궐의 벽과 바닥을 장식한 돌조각 하나까지도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명,청조, 궁전 으로 1407년부터 있었다.
명조와 청조의 황제 궁전인 자금성의 건축은 1407년에 시작되었으며,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고생한 끝에 14년이 걸려 완공되었다. 황제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설계된 자금성은, 천제()의 거처와 동등한 지상의 등가물이라 여겨졌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황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

1644년 명나라 뒤를 이어 들어선 청나라의 열 명의 황제들은 자금성을 정부 소재지로 삼았다. 1912년, 신해혁명에 뒤이어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퇴위했고, 자금성은 결국 박물관이 되었으며 많은 보배와 진기한 물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유물들의 일부는 국공내전() 동안 대만으로 옮겨졌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완화되면서 자금성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가 찾는 주요 명소가 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단지는–각 변에 주 성문이 나 있다–깊이 6m의 해자와 높이 10m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총 넓이가 약 72헥타르에 이르는 자금성 안에는 약 800채의 건물과 8,880개의 방이 있는데, 방의 개수가 좀 더 그럴싸한 숫자인 9999개라고 나와 있는 자료들도 있다. 
건물들 중에 다섯 채의 커다란 전당과 열일곱 채의 궁전이 있었다. 자금성은 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남쪽 구역, 즉 '전조'()는 황제가 매일의 정무를 보는 곳이었고, 황제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곳은 북쪽 구역, 즉 '내정'()이었다. 건물의 소재로는 목재가 지배적으로 쓰였다. 자금성 안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모여 있으며, 지붕은 전통적인 왕의 색깔인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한자로 ‘자금성[, 쯔진청]’이란 자주색의 금지된 성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궁궐, 자금성은 오랫동안 백성들이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궁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황제, 황후, 고위 관리와 궁녀, 내시, 시종, 외국 사절단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은 자금성을 ‘고궁박물원’이라고 부릅니다. 자그마치 5세기 넘게 백성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황제의 공간은 박물관으로 옷을 갈아입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태화전은 그 자체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어요. 길이 64m, 폭 37m, 높이 27m에 달하는 중국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로, 온통 흰 돌로 이루어진 넓은 마당에 세워져 있어요. 또한 황제만 다녔던 길을 따라 폭 3m, 길이 16m에 이르는 조각이 새겨져 있고, 건물 안과 밖도 용과 봉황, 사자, 기린, 말, 물고기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천하제일이란 표현을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모습이랍니다. 그중 가장 멋진 곳은 황제가 나랏일을 볼 때 앉았던 옥좌(의자)입니다. 금박으로 장식된 7폭짜리 병풍과 의자, 향을 피우던 도자기와 기둥 등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태화전은 여느 건축물과 다르게 3단의 기단 위에 지어졌는데, 3단의 기단은 오직 하늘의 아들인 황제가 머무는 곳에만 사용되었지요. 기단에 장식된 동물 조각과 문양도 하나같이 아름다워요. 목조 건물의 약점인 화재에 대비하여 궁궐 안에 ‘금수하[진쉐이허]’라는 인공 하천(호수)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제, 황후의 공간, 

황제와 황후, 빈과 상궁 들이 사용하던 내정은 건청궁[치안칭궁]과 교태전[자오타이뎬], 곤녕궁[쿤닝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내정은 이 3개의 건물들 주변에 대칭으로 많은 건물이 세워져 있어, 공적인 공간인 외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답니다.

내정의 중심 건물은 건청궁이에요.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 초기까지 황제의 침실이자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이지요. 건청궁은 청나라 옹정 황제가 양심전[양신뎬]이란 곳에 새로운 침실을 마련하고 태화전에 이어 보조 직무실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오직 황제와 황후만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어요.

옹정 황제 이후부터 건청궁은 황제의 서재이자 고위 관리들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고, 때론 외국 왕실의 손님을 맞는 곳이자 연회장으로 이용하기도 했어요.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부의 모습이 태화전과 비슷한데, 역시 금박 병풍과 옥좌를 비롯하여 천장과 기둥, 여러 가지 물건들이 모두 화려하답니다.
건청궁 옥좌 뒤에는 ‘정대광명()’이란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어요. 이 액자는 초기 청나라 황제였던 순치 황제가 직접 쓴 거라고 해요. 또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건청궁()’이란 현판도 순치 황제가 직접 쓴 것으로 한자와 만주어가 함께 쓰여 있어요. 황실의 주인이 만주족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였지요.

건청궁 뒤쪽에 있는 교태전은 명나라 초기에 황후가 살던 곳이자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소였어요. 건륭 황제 때는 황제의 직무실로 사용했고, 이후에는 나라의 옥새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지요.
교태전 역시 무척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요. 옥좌 뒤에는 커다란 병풍과 건륭 황제가 강희 황제를 공경하여 직접 썼다는 ‘무위()’라는 액자가 걸려 있어요. 그리고 교태전 뒤쪽에는 황후가 사용했던 곤녕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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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여행 > 관광지
지역아시아 > 중국 > 베이징
유형공원·정원
테마세계문화유산
휴관일연중무휴
주소
가는방법버스 6, 34, 35, 36, 39, 41, 43, 60, 116, 610, 707, 723, 743, 957, 958번 탑승 후 톈탄둥먼()에서 하차. 또는 버스 53, 120, 122, 525, 610, 803, 958번 탑승 후 톈탄난먼()에서 하차. 또는 버스 2, 7, 15, 17, 20, 69, 105, 707, 729, 826번 탑승 후 톈탄시먼(西)에서 하차. 또는 버스 6, 34, 35, 110, 106, 687, 707, 742번 탑승 후 톈탄베이먼()에서 하차.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5호선 탑승 후 톈탄둥먼()역에서 하차.
오픈 시간공원 06:00~21:00, 원구·황궁우·기년전 11월~2월 08:00~17:00, 3월~6월 08:00~17:30, 7월~10월 08: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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