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3일 토요일

베이징대학교 .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베이징대학교 [Peking University, 北京大學(북경대학)].

중국언어문학ㆍ수학ㆍ경제학ㆍ철학ㆍ역사학ㆍ국제정치학ㆍ사회학ㆍ고고학ㆍ물리학ㆍ컴퓨터과학기술학ㆍ전자공학ㆍ생물학ㆍ지리학ㆍ화학ㆍ영어문자학ㆍ동방언어문자학ㆍ서방언어문자학ㆍ심리학ㆍ러시아언어문자학 등의 학부가 있다. [www.pku.edu.cn]
1898년, 원·명·청 시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자감()을 대체하여 ‘경사대학당()’으로 창설하였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원이 오늘날의 베이징사범대학교로 떨어져 나갔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국립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20년 난징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여학생 입학을 받아들였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에 국민정부가 칭화대학, 난카이[]대학과 함께 후난성 창사[]의 오지()로 모아서 합병하여 창샤임시대학교로 만들었다가 1938년 다시 윈난성[] 쿤밍[]으로 옮겨 시난[西]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연합대학은 해산되어 각각의 학교로 분리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대학을 합병하고 칭화[]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52년 베이징 도심에서 옛 옌징대학 캠퍼스 자리로 옮겼으며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는 1970년까지 3년 동안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977년부터 국가통일 입시제에 의하여 입학자를 선발하고 있으며 2000년 베이징의과대학교를 합병하여 베이징대학교 보건 캠퍼스를 조성하였다. 

2010년 수학, 물리학, 의학, 생명과학, 전기·컴퓨터공학, 환경공학, 역사, 중국학·문학, 심리학, 고고학·박물관학, 철학, 외국어, 예술, 국제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정보경영학, 사회학, 마르크스학, 언론통신학 등 38개 학원(;단과대학)·계(;독립학과)·부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베이징의 주 캠퍼스와 보건 캠퍼스, 광둥성[] 선전[] 캠퍼스가 있다. 베이징 서쪽 교외지역에 위치한 주 캠퍼스는 이화원과 원명원 등 역사 유적이 가깝고, 이공계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칭화대학과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도 인접해 있다. 웨이밍호[]로 둘러싸였으며 청 왕조의 정원이 자리 잡았던 곳이어서 옛 건물, 정원, 정자 등 중국 전통적 경관이 남아 있다. 선전 캠퍼스에는 선전대학원이 있다. 

부속시설로 부속병원, 역사박물관, 아서새클러예술고고학박물관, 분자과학연구소, 교류복잡계연구소, 핵물리학기술연구소, 신경과학연구소, 정신건강연구소 등이 있다.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양전닝[]과 리정다오[]가 시난[西]연합대학 시절 공부했고 정치가 마오쩌둥, 《아큐정전(Q)》을 쓴 루쉰[] 등을 배출했다.


중국 최초의 근대 종합대학교로 ‘C9 리그(League)’ 회원 대학이다. ‘C9 리그’란 1998년 중국 정부에 의해 선정된 9개 대학 연맹을 말하며 푸단 대학[], 난징 대학[], 칭화 대학[]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도쿄 대학[],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와 함께 아시아 3대 명문 대학으로 손꼽힌다. 2011년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선정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 46위를 기록했다. 기초과학 및 응용과학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1898년 7월 3일 베이징 경사대학당()으로 출발했다. 개교 이후 중국 고등교육의 주축역할을 해왔다. 1902년 경사대학당의 교육학부가 지금의 베이징 사범대학으로 분리되었다. 

1912년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 1911~1912) 후 국립 베이징 대학이 되었다. 베이징 대학은 1919년 재학생 주축으로 5·4운동을 일으켰으며 학생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5·4운동은 1919년 5월 4일 학생들이 일으킨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으로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1920년 여학생이 처음 입학했는데, 이는 난징 대학교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이다. 1937년 제2차 중일전쟁(1937~1945)이 발발하자 후난성 창사[]로 학교를 이전하고 칭화 대학, 난카이 대학[]과 함께 창사임시대학을 구성했다. 

1938년 이 대학은 다시 윈난성[] 쿤밍[]으로 옮겨져 시난[西] 연합대학이 되었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연합대학이 해산되면서 대학은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1952년 연경대학()을 통합했으며, 중국의 모든 대학이 공립화되는 과정에서 교명을 지금의 베이징 대학으로 확정하였다. 같은 해 베이징 도심에서 과거 연경대학 부지로 대학을 이전했다.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 중 1966년부터 1970년까지 휴교했다. 2000년 베이징 의과대학을 합병하여 베이징 대학 보건과학캠퍼스를 조성하였다.
2011년 기준 수리과학, 물리학, 화학, 생명공학, 지구 및 우주과학, 공학, 역사, 경제학,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분자의학 분야 등 41개 단과대학과 대학원, 선전[] 일반대학원으로 구성돼 있다. 101개의 학부학위 프로그램, 224개의 석사학위 프로그램, 202개의 박사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리과학대학은 1913년 가을에 첫 신입생을 받아들인 후 2011년 기준 91명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수학과, 정보학과, 금융수학과 등 5개 학과로 나뉜다. 

1913년에 신설된 물리학부에는 약 200명의 교수가 있으며 매년 200명의 학부생과 100명의 대학원생, 100명의 박사학위 준비생이 입학하여 수학한다. 이론물리학, 현대광학, 기술물리학, 천문학, 일반 물리학 등 11개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다. 선전 일반대학원은 2000년 10월에 신설되었으며 컴퓨터&정보공학, 화학생물학&생명공학 등 7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옌위안[]’으로 불리는 메인 캠퍼스는 베이징 서부 근교 하이뎬[] 지구에 있으며, 캠퍼스 면적은 총 274만 ㎡에 이른다. 그밖에 선전 일반대학원이 있는 선전 캠퍼스와 베이징 대학 보건과학센터(PKUHSC)가 있다. 대학 도서관은 메인 도서관을 중심으로 30개의 학과 도서관, 의과대학 도서관, 6개의 자매병원 도서관으로 되어 있다. 부속시설로 분자과학연구소, 부속병원, 핵물리학기술연구소, 역사박물관, 신경과학연구소, 정신건강연구소 등이 있다.
교수진 가운데 53명이 중국 기초과학연구의 중심기구인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SciencesCAS) 소속이며 7명이 엔지니어링 분야의 자문 성격을 띤 최고 권위의 학술기관 중국공전원(Chinese Academy of EngineeringCAE) 소속이다. 유학생 수는 전 세계 80개국에서 온 1,825명의 장기체류 학생과 약 2,600명의 단기체류 학생을 포함해 총 4,000여 명이다. 
가운데 1,292명이 학사, 석사, 박사학위 과정에 등록해 있다. 

시난[西] 연합대학 출신으로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양전닝[, 1922~]과 리정다오[, 1957~],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정치가 마오쩌둥[, 1893~1976], 소설 <아큐정전(Q)>을 쓴 문학가 겸 사상가 루쉰[, 1881~1936] 등이 이 대학 졸업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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