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모세 . Mose(s).

모세 . Mose(s). 구약성서 속의 영웅"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이자 민족적 영웅이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 40여 년 간 광야를 유랑하지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호렙산에서 노예로 있던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키라는 음성을 듣고 이집트로 돌아와 협력자 아론과 함께 그들을 구출하였으며,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가 집필하거나 혹은 그 내용이 모세와 관련되는 바가 많아 ‘모세 오경()’이라고 일컫는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출애굽기》 《민수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레위기》 《신명기》의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라 일컬어진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이집트로 들어간 히브리 민족은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는 등 파라오의 박해를 받았다. 이스라엘 레위족 집안에서 태어난 모세는, 이스라엘의 사내 아이는 태어나는 즉시 모두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을 피하여 나일강에 버려졌는데, 다행히 파라오의 딸에게 구출되어 왕궁에서 양육되었다. 

모세는 40세 때 동포가 몹시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유목민 미디안족()의 사제() 이드로(르의엘)의 딸 시뽀라를 아내로 맞아 게르솜과 엘리에젤이라는 두 아들을 얻었다.

80세가 되던 해 호렙 산에서 민족을 해방시키라는 신 야훼의 음성을 듣고 이집트로 돌아와, 협력자인 형 아론과 함께 파라오와 일대 결전을 벌인다. 파라오는 야훼의 열 가지 재앙을 받은 후에야 히브리 민족을 내어주고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갔다. 이어 시나이산에서 야훼에게 십계명을 받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가 되었다(출애 20:1∼17, 신명 5:6∼21, 출애 34:14∼33).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에돔·모압의 광야에서 40년에 걸친 유랑생활을 계속하지만, 가나안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모세는 야훼의 명에 의하여 요르단강을 건너기 전 예리고 맞은 편 모압 땅의 느보산()에서 향년 120세에 죽었다(신명 33 ·34장).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최근의 고고학적·금석문학적() 연구 결과 성서에 기술된 이집트 입국, 이집트 탈출, 야훼 종교의 채용, 가나안 정복 등은 그 대체적인 줄거리가 역사적 사실에 아주 가까운 것으로 인정되어, 이 역사적 사실의 중심인물로서의 모세의 실재성이 매우 높아졌다. 

상당수의 학자들이 모세라는 인물을 람세스 2세 시대인 기원전 13세기경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이자 민족 영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가 활동한 정확한 시기나 그와 관련된 일들을 완전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모세의 발견" 이탈리아의 화가 베로네세의 작품. 베로네세의 작품은 그가 베네치아로 이사하고 난 후 부터 그의 독특하고 화려한 색채법이 엿보이기 시작하였으며, 베네치아파 최고의 화가 티치아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공간구성을 가진 화려한 양식을 확립하였다.
모세는 역사적 위인의 한 사람이다. 유대인, 그리스도교도, 무슬림들은 모두 모세가 신의 율법을 인간에게 전하고 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거룩한 선지자라고 여기며 존경했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가장 사랑하는 다윗 왕보다 모세를 더 존경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이 불붙은 떨기나무로 나타나 그에게 이집트의 억압을 피해 노예들을 이끌고 나가면 많은 기적들이 길을 터줄 것이라고 말한다. (운명적인 불붙은 떨기나무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라.) 모세는 오랜만에 만난 형 아론과 함께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신의 말씀을 전한다. 

냉혹한 파라오는 즉각 거절하지만, 신이 내린 열 가지 재앙이 하나씩 이집트를 덮치자 결국 굴복한다. 이집트 각 가정의 모든 첫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파라오는 노예를 해방시킨다. 그러나 노예들이 이집트를 떠난 뒤 그는 마음을 바꿔 군대를 거느리고 추격한다. 홍해에 이르자 신은 바닷물을 갈라 히브리인들만 지나가게 한 다음 뒤쫓는 이집트 병사들을 물속에 빠뜨려 죽인다. 이집트에서 탈출했다고 해서 곧바로 평안해진 것은 아니다.

이제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반란과 끊임없는 불만에 시달린다. 그들은 황량한 사막을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때가 더 좋았다고 투덜댄다. 신이 기적의 식량(만나)을 보내준 덕분에 굶어죽지는 않지만 불만의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사람들은 신성한 시나이 산의 기슭에 장막을 치고, 모세는 산에 올라가 신이 직접 건네주는 율법을 받는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모세의 형 아론을 설득해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든다. 장막에서 질탕한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모세는 신과 이야기를 나눈다(금송아지를 보라). 모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이번에는 그의 형과 누이(아론과 미리암)가 혈육 간에 시기를 한다. 민수기 16장에는 고라가 모세와 아론의 영도를 시기해 극적인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있다. 고라가 부하 250명과 함께 일으킨 반란은 지진으로 진압된다. 모세는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제발 파멸시키지 말아달라고 신에게 거듭 호소한다.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40년이나 방랑하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당도한다. 그러나 정작 모세 자신은 신에게 딱 한 번 불충한 죄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가나안 인근의 느보 산에서 생을 마친다. 신이 직접 그를 묻어주지만 그의 무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죽은 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연극이자 영화로 인기를 끈 「푸른 초원」에서 모세는 가나안에 가지 못한 것에 상심하지만 신은 천국이 가나안보다 좋은 곳이라며 그를 위로한다.

모세는 여러 가지로 특권을 지닌 인물이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애굽기 33:11)라는 구절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신을 만난 뒤 율법이 새겨진 석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모습은 이러했다.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얼굴의 광채가 너무 강한 탓에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출애굽기 34:29~35).

예수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데 집착한 나머지 신과 인간을 사랑한다는 참된 목적을 보지 못한다며 비판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예수의 유명한 산상수훈(마태복음 5~7)이 모세 율법의 '적절한 조율'이며, 외적인 복종보다 내적인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어릴 때부터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따랐지만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는 율법이 아니라 신의 은총이 자신의 삶을 인도한다고 믿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십계명을 지켰으나 신이 모세에게 전한 여러 가지 다른 율법(예를 들면 제사나 코셰르 음식에 관한 율법)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다른 특권도 있었다. 모세는 드물게도 장인과 좋은 관계로 지냈다. 미디안의 사제였던 이드로는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시집보냈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신을 만난 것도 이드로의 가축을 돌보던 중이었다. 출애굽기 18장은 모세와 이드로가 서로 입을 맞춰 인사했다고 말한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다툼이 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는 방법에 관해 현명한 충고를 전한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이자 입법가로 간주했다. 신약성서의 시대에 모세는 유대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유대교의 정신적 기반이 되는 율법을 전했을 뿐 아니라 성서의 첫 다섯 권을 이루는 책들을 썼다고 생각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 중에는 예수를 모세보다 위대한 제2의 모세라고 믿은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 자신도 모세를 존경했다. 변형(Transfiguration)이라는 신비로운 사건은 모세와 선지자 엘리야가 산 위에서 예수와 이야기할 때 얼굴에 광채가 난 현상을 가리킨다. 

미술에서 모세는 인기 있는 주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세 조각상은 단연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수염을 기른 당당한 풍모의 모세가 십계명 석판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다. 그밖에 모세가 파라오 앞에 있는 모습,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보고 석판을 깨뜨리는 모습을 묘사한 회화 작품도 많이 있다. 강에서 아기 모세를 발견하는 장면도 여러 차례 그려졌다.

자키노 로시니는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를 지었고,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모세와 아론」이라는 오페라를 썼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출애굽기의 내용을 가사로 삼아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프라이(ChristopherFry)의 희곡 『첫 아이 The Firstborn』는 모세에 관한 이야기다. 모세는 늘 사랑받는 여러 영화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모세를 다룬 영화들 중에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도 많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이집트 궁정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말하지 않지만, 신약성서를 보면 유대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동방정교회 그리스도교도들은 9월 3일을 성 모세와 선지자의 축일로 삼는다. 무슬림들은 모세를 선지자이자 사도인 무사(Musa)로 존경한다. 모세는 그리스도교권보다 유대인 남자들에게 흔한 이름이다. 모르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Joseph Smith는) 모세 자신이 구술했다는 『모세서 Book of Moses』를 번역했다고 한다. 유대교의 신비철학인 카발라(Kabbala)는 책이 아니라 구술로 전승된 모세의 비밀스런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세는 이집트에 살던 히브리인들에게 일신교를 전했고 히브리인들은 그를 지도자로 삼았다가 나중에 살해했다고 한다. 훗날 그 일에 죄의식을 느낀 그들이 모세를 영웅으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이다. 역사가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근거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모세를 다룬 논쟁적인 책들 중에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1939년에 쓴 『모세와 일신교 Moses and Monotheism』가 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이었으나 무신론자였고, 성서에 나오는 모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모세가 히브리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다면서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의 일신교를 믿었다고 주장했다. 아케나톤이 죽자 이집트에서는 많은 신을 섬기는 다신교가 부활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사도행전7:22). 헬레니즘 시대에 활동했던 필론과 요세푸스 같은 유대인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집트 시절에 모세는 온갖 공적을 쌓았고, 잘생긴데다 총명했으며, 알파벳을 발명했고, 수학, 철학에도 능했는가 하면 시인의 자질도 뛰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작가들은 그가 이집트의 학문의 신 토트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시간을 초월한다. 그는 이집트에서 히브리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히브리 아이들을 대량 학살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낸다. 마침 그 바구니가 이집트 공주의 손에 들어가 아기는 화려한 궁정에서 자란다. 그러나 어른이 될 무렵 자신이 히브리 혈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노예를 학대하는 이집트 감독관을 죽인 뒤 황야로 도망친다. 이후 그는 아내 십보라와 함께 미디안의 땅에서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1956년에 제작된 「십계」는 같은 제목의 1923년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956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이 모세의 적역이었다고 말한다.) 1999년의 만화영화 「이집트 왕자」는 모세의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도 널리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TV 미니시리즈인 「모세와 입법가」와 「십계명」은 작은 화면에 놀라운 이야기를 담아냈다. 모세의 이야기는 「나일 강의 기적」이라는 약간 저질스런 코미디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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