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일 월요일

국수.

국수"
옛 기록에 면,,, 국수,, 탕병 등으로 나온다. 반죽한 밀가루・메밀가루 따위를 얇게 밀어 가늘게 썰거나 국수틀에 눌러 가늘게 뽑아낸 식품의 총칭 , 또는 그것을 삶아 국물에 말거나 비벼 먹는 음식. 한자어로는 ‘면()’·‘면자()’라고 한다. 『고려도경』에 “10여 종류의 음식 중 국수맛이 으뜸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고려사』 예조와 형조에서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라는 말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도 국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상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고려시대의 국수[]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음식디미방』·『주방문()』·『증보산림경제』·『요록()』·『옹희잡지()』 등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재료는" 
주로 메밀·콩·녹말 등이 쓰이고 부재료로는 수수·물쑥·꿩·닭고기·달걀 등이 쓰이고 있어 국수 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수에 쓰이는 국물로는 장국·오미자국·참깨국, 꿩·닭고기국물 등이 쓰였다. 
국수는 밀이나 메밀과 같은 곡물을 가루 내어 반죽한 것을 가늘게 만든 후, 국물에 말거나, 비비거나, 볶아 먹는 음식의 총칭' 국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서아시아 지역에서 부터라는설, 기원전 7,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던 야생종 밀은 기원전 1-2세기경, 서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하여 중국에 전해졌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전한()의 한무제()는 오랑캐인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때 서방과의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이를 통해 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물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중국에서부터라는 설, 이탈리아에서부터라는 설 등 다양하다. 단, 정확하게 규명된 바는 없다. 근래에 중국 중서부 칭하이성 황하강 유역의 라자 지방에서 4,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국수가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면 기술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비벼서 면을 뽑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처음에 밀가루를 이용한 수제비 형태의 면을 먹다가 후한() 때부터 가늘고 긴 형태의 국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5-6세기인 진나라 시대에는 단자나 전병과 비슷한 수인병()이라는 국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밀가루를 면()이라 하였고, 면으로 만든 것을 가리켜 병()이라 하였는데, 찐 것을 증병(), 구운 것을 소병(), 기름에 튀긴 것을 유병(), 국물에 삶은 것을 탕병()이라고 하여 국수도 병()이라 일컬었다. 이후에 국수를 가리키는 용어인 병()은 수인병(), 색병(), 색면(), 납면()과 타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면()이라고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널리 먹는 요리로 제조나 조리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빵보다 역사가 깊다. 기원전 6,000년~5,000년경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세기경에 쓰여진 중국 농서 《제민요술()》에는 국수 만드는 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중국 송나라 때 국수 만드는 법이 전해져, 삼국시대나 통일 신라시대부터 면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고려시대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는 내용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나 국수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고려말 《노걸대() 》에는 ‘우리 고려인은 습면()을 먹는 습관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밀이 매우 귀해서 일상식이 아닌 귀족들의 행사인 결혼식, 회갑연, 제례 등과 같은 날에 먹는 특별식이었으며, 결혼식 때에 국수 먹는 풍습이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예를 중시하여 의례음식이 발달하였는데, 의례음식에서 면의 이용은 매우 다양한 편이었다. 조선시대 때도 밀가루는 진말()이라 하여 매우 귀한 식품이었기 때문에 밀 대신 메밀을 이용한 국수가 발달하였다. 
조선왕조에서 궁중연회를 베풀 때의 준비 절차와 연회 음식을 기록한 《진찬의궤》나 《진연의궤》에 보면 국수장국에 관한 내용이 20여 차례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메밀을 이용한 국수가 많다.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국수는 총 50여종으로 국수의 주재료는 메밀가루였으며, 그 다음으로 밀가루와 녹두가루 등이 국수의 재료로 많이 이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메밀가루가 많이 생산되는 북쪽 지방에서는 메밀을 이용한 국수나 냉면이 발달하였고, 남쪽은 밀가루를 이용한 칼국수가 발달하였다. 
1)『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에는 밀이 귀하기 때문에 성례()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고 하였고, 『고사십이집()』에서는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든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중국의 국수와는 달리 우리 나라 국수의 재료는 밀가루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고려도경()》에 보면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주로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밀가루의 값이 매우 비싸 성례() 때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라는 기록과 《고사십이집() 》에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보다는 메밀가루를 국수의 재료로 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이나 생일, 회갑 등의 잔치가 있거나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의미로 제사상에 국수를 올리기도 하였다. 국수가 통과의례에 빠지지 않고 올려지는 이유는 국수모양이 길게 이어진 것이 경사스러운 일 또는 추모의 의미가 길게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뜻에 연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3) 『고려도경』 제22권 향음조에 “나라 안에 밀이 적어 장사치들이 경동도에서 사오므로면의 값이 대단히 비싸 성례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고려사』에서도 “제례에는 면을 쓰는데 사원에서 만들어 판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밀은 매우 고가의 귀한 재료로 판매되었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혼례 등의 잔칫날이나 제례를 지내는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었던 별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례음식으로 국수를 쓰는 식생활 풍속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쌀로 만든 떡을 병()이라 하고 국수를 면()이라고 하였는데, 삶은 면을 물로 헹구어 건져 올린다고 하여 국수()라고 칭하였다. 
국수는 만드는 재료에 따라 밀국수, 메밀국수, 녹말국수로 나뉜다. 
밀국수는 밀의 재배 품종이나 환경에 따라, 밀 단백질인 글루텐(gluten)의 함량과 성질이 달라져 면의 종류도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밀알의 중심부로 갈수록 단백질 함량이 낮고 전분 함량은 높은 반면에 외부로 갈수록 단백질 함량은 높고 전분 함량은 낮아진다. 밀가루로 만든 면으로는 소면과 파스타가 대표적이다. 
메밀가루는 끈기가 없기 때문에 밀가루나 녹말가루를 섞어 익반죽하여 국수를 만드는데, 녹말가루를 많이 넣을수록 국수가 질기다. 밀가루를 섞을 때는 메밀가루와 밀가루의 비율을 7:3 또는 5:5 비율로 혼합하여 만든다. 그밖에 녹두, 고구마, 옥수수, 마, 칡, 도토리, 밤 등의 녹말로도 국수를 만들 수 있는데, 보통 밀이나 메밀을 섞어서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녹두 녹말로 만든 ‘나화’라는 면이 있었는데, 17 ~ 19세기에 쓰인 《음식디미방》, 《주방문()》,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등의 조리서에 따르면, 나화, 낭화(), 탁면, 착면(), 창면(), 창면(), 창면()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마나 감자 전분인 녹말로 만든 국수로는 당면이 대표적이다. 
국수는 제조방법에 따라 납면(), 압면(), 절면(), 소면(), 하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납면은 국수 반죽을 양쪽에서 당기고 늘려 여러 가닥으로 만든 국수다. 납면을 만들 때에 밀가루에 소다를 넣어 반죽을 하면 알칼리성 물질들이 글리아딘의 점성을 증가시켜 면이 잘 늘어날 수 있고, 전분의 호화와 팽윤을 증가시켜 국수의 탄성을 높여준다. 대표적인 납면으로는 중국의 중화면과 일본의 라면이 있다. 
압면은 국수 반죽을 구멍이 뚫린 틀에 넣고 밀어 끓는 물에 삶아 만든 국수로써, 끈기가 적은 메밀이나 쌀, 옥수수 등을 이용한 국수에 많이 사용한다. 압면은 삶는 과정 중에 호화()에 의해 강한 점성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압면으로 한국의 냉면과 중국의 당면(),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있다. 절면은 손으로 반죽하여 밀대로 밀어 얇게 만든 반죽을 칼로 썰어 만드는 국수로서 한국의 칼국수와 일본의 우동과 소바()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밀이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서 밀보다는 메밀을 이용한 절면이 많았는데, 메밀가루는 밀가루와 같은 점탄성이 없어 연결제로 밀가루나 녹말가루, 달걀 등을 뜨거운 물에 반죽하여 사용하였다. 
소면은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려서 막대기에 면을 감아 당긴 후 가늘게 만드는 국수로 한국과 일본의 소면, 중국의 선면이 대표적이다. 하분은 쌀국수 형태의 국수를 말하는 것으로 동남아 등지에서 즐겨 먹는 국수다. 묽게 반죽한 쌀가루 유액을 얇게 늘려 쪄서 면대를 만든 후에 표면에 기름을 발라 식혀서 칼로 가늘게 만든다. 
우리가 먹는 찰기가 강한 자포니카 품종의 쌀보다는 인디카 품종이 하분을 만들기에 적합하다. 밀국수는 건조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는데, 밀가루를 반죽하여 뽑아낸 면을 수분이 14∼15% 정도가 되게 건조시킨 것을 건면(), 반죽한 것을 끈 모양으로 만들어 가열한 생면(), 생면을 삶은 다음 기름에 튀기거나, 그대로 뜨거운 바람으로 건조시켜 녹말을 알파화(α)한 석면 등이 있다. 
국수는 조리 방법에 따라서 크게 제물 국수와 건진 국수로 나눌 수 있다. 건진 국수는 국수를 삶아 물에 헹궈 낸 국수를 말하는 것으로 따로 국물을 만들어 냉면이나 온면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양념을 넣어 비빔국수로 먹기도 한다. 
건진 국수는 제물국수에 비해 면발이 쫄깃한 것이 특징인데, 국수를 삶을 때에 국수 표면의 전분이 호화되어 점성이 증가하나 삶은 국수를 냉수에 헹구면 국수 표면의 점성이 제거되고 여열에 의한 호화 과정이 억제되어 쫄깃한 면발을 가지게 된다. 건진 국수에는 냉면(물냉면, 비빔냉면), 비빔국수, 온면(국수장국), 콩국수 등이 있다. 제물 국수는 국수 삶은 국물을 버리지 않고 국수와 함께 먹는 국수로 ‘제물에 그대로 삶았다’고 하여 제물 국수라고 한다. 
국수 삶을 때에 나온 전분이 그대로 들어있어 국물이 걸쭉한 것이 특징으로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제물 국수의 장국 국물로는 쇠고기나 멸치 외에 조개나 닭고기 국물을 사용한다. 밀가루는 강력분을 주로 사용하며 반죽에 콩가루나 달걀을 넣어 반죽을 되게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돌잔치, 생일, 회갑잔치 등 수연례를 비롯한 관례, 혼례 등의 축하 잔치와 제례 등의 추모 의례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의례음식이었다. 우리 민족은 잔칫날 국수를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함께 기뻐하고 경사스러워 했으며, 제례음식을 음복함으로써 추모의 의미를 함께했다. 
국수는 접대 음식이자 잔치 음식으로서, 그리고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로서도 매우 중요하였다. 일례로 출생과 연관된 국수 관련 식생활 풍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국이상국집』이나『매천집』에 출생 후 3일째 되는 날에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국수[]를 먹던 풍속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국수는 오랫동안 출생 관련 축하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돌잔치를 열어 주는 것이 전통 풍속인데, 이때 돌상에는 흰밥과 미역국, 나물과 구이, 백설기와 수수경단, 과일 등의 음식 외에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도 함께 놓고, 점심에는 국수장국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국수잔치’를 벌인다. 또한, 상에 쌀・돈・국수 등을 놓고 아이의 미래를 점쳐보는 ‘돌잡이’ 풍속을 통해, 아이가 국수를 집으면 장수할 것이라고 여긴다. 61세 생일인 ‘회갑’ 같은 수연례에도 주인공 앞에 국수장국상을 차려 주면서 장수를 기원하고, 오신 손님들께 잔치음식으로 국수를 대접한다. 이를 보면, 국수는 출생의례에서 중요한 의례음식이자 접대음식이면서 잔치음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식생활풍속』에서는 국수를 주식으로 차린 국수장국상을 ‘면상’이라고 하는데, 
잔치에 국수로 손님을 접대하는 풍속이 상례가 되자 ‘잔치국수’라는 음식명까지 생겨났다. ‘잔치국수’에는 국수장국 외에 편육, 전유어, 찜, 잡채, 신선로, 느리미, 회, 김치, 식혜나 화채, 과일, 떡 등을 함께 차린다.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따뜻하게 온면을, 여름에는 시원하게 냉면을 말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일명 ‘잔치국수’가 온면의 형태인 것으로 보아, 잔치를 베풀고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국수는 주로 온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면은 국수를 삶아서 헹군 뒤 사리를 만들어 두었다가 미리 만들어 놓은 장국에 ‘토렴’하여 데운 후 그릇에 담고 쇠고기볶음・편육・달걀지단 등의 꾸미를 얹어 더운 장국을 부어 만든다. 옛 기록에는 장국으로 쇠고기나 꿩고기 육수를 썼으나 20세기 이후 멸치육수를 많이 쓰고 있다. 한편 냉면은 차갑게 식힌 육수에 동치미나 배추김치・나박김치 국물을 섞어 쓰거나 육수만 단독으로, 혹은 동치미나 김칫국물만 따로 쓴다. 면을 만 다음, 오이절임, 배, 편육, 동치미 무 썬 것, 달걀 등 을 얹어 낸다. 또한 제례와 관련된 국수 풍속을 보면, 면이 고려시대에 이미 제례용으로 판매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에서 국수를 제수로 사용했고, 이러한 풍속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 중기 『쇄미록』의 저자인 오희문의 기해년(1599) 일록을 보면, 임진왜란이 나서 피란살이 중임에도 메밀국수를 만들어 왕에게 올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제수로서 국수가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수의 진설은 각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이 다르지만 주로 제2열에 면(국수)과 편(떡)을 올린다. 제례상에 편이 있으면 반드시 면을 놓는다고 인식되었고 면서병동西이라 하여 국수를 서쪽에 떡을 동쪽에 놓는다. 제수로 올리는 국수를 ‘메국수’라 부르기도 한다. 국수를 놓을 때는 국수를 삶아서 면기 등 제기에 건더기만 건져 담고 국물은 붓지 않으며 계란채 등을 고명으로 얹어 놓는다. 
『시의전서』에도 “국수사리를 합에 담고 위에 계란채를 뿌려 쓴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따라 얹는 고명은 잣, 깨소금 등으로 다를 수 있다. 음복 시에는 장국밥이나 비빔밥 등 제삿밥에 메국수를 고명처럼 얹어 먹기도 한다. 한편 제수 준비에 엄격한 종가에서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올리기도 하지만 국수를 구하기 쉬워지면서 시중에서 구매한 국수로 제수를 준비하는 종가가 많아졌다. 한국의 전통적인 면 요리에는 냉면, 비빔국수, 콩국수와 온면인 국수장국, 칼국수 등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국수인 냉면은 메밀이 주로 생산되는 북부지방에서 발달한 면 요리로서 평양의 물냉면과 함흥의 비빔냉면이 대표적이다. 
냉면은 1800년대에 처음으로 문헌에 기록되었는데, 냉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49년 조선시대 세시 풍속에 대한 문헌인 《동국세시기()》에 처음 발견된다. 냉면은 지역에 따라 특색 있게 발전하였는데,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메밀을 주원료로 하여 면발을 거칠고 굵게 만들어 평양냉면(물냉면)을 만들어 먹었는데, 함흥냉면에 비해 면발이 잘 끊어지는 특성이 있다. 반면에 함흥냉면은 메밀에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 전분을 넣어 면발이 가늘고 쫄깃하다. 
비빔국수는 국수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비빈 음식으로, 골동면()이라고도 한다. 골동이란 섞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함흥냉면은 비빔국수의 한 종류로서 메밀가루 외에 감자전분으로 국수를 만들어 면발이 질기며 육회나 생선회를 고명으로 얹어 매콤하고 달콤하게 비벼 낸 것이 특징이다. 비빔국수의 일종인 강원도 지방의 메밀 막국수는 메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익반죽한 다음 국수틀로 면발을 뽑아 만든 국수로서 화전민들이 먹던 수제비에서 유래되었다. 온면의 대표적인 한 종류인 국수장국은 물기를 뺀 삶은 국수를 대접에 담고, 양지머리를 고은 국물이나, 쇠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하여 끓인 맑은 장국을 부은 후, 여러 가지 재료를 볶은 것과 황백 지단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 면 요리이다. 
지역에 따라 대표적인 국수들이 몇 가지 있는데, 서울에서는 왕족과 양반 계급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라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 오색의 고명을 얹어 멋을 낸 국수장국과 비빔국수를 즐겨 먹었으며, 밀국수가 일반적이고 때로는 가늘게 만든 메밀국수를 먹기도 하였다. 
산악지방이 많은 강원도는 산악이나 고원 지대에서 생산되는 도토리, 메밀, 감자, 옥수수 등을 이용하여 메밀 막국수나 올챙이 국수를 먹었다. 
쌀의 주요 산지인 전라도나 경상도는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이용한 면 요리보다는 밥 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경상도는 밀가루에 날 콩가루를 섞어 반죽한 것을 밀대로 얇게 밀어 칼로 만든 칼국수를 조개나 멸치 국물에 먹는 제물 국수를 즐겨 먹었다. 경상북도 안동의 양반가를 중심으로 여름철에 손님 접대에 많이 올리는 향토 음식인 안동건진국수가 유명하다. 
황해도는 밀국수를 즐겨 먹는데, 겨울에 동치미 국물을 부어 만든 냉면도 즐겨 먹었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메밀을 이용한 냉면이 발달하였는데, 평안북도는 메밀의 주요 산지로서 메밀을 주원료로 만든 평양냉면을 즐겨 먹고, 함경도는 메밀에 녹말을 섞어 반죽하여 만든 비빔냉면과 비빔국수를 즐겨 먹었다. 특히 함경도의 지방은 고추와 마늘과 같은 양념을 강하게 하여 만든 비빔 면을 주로 먹었는데, 홍어나 가자미와 같은 생선을 맵게 하여 무친 회를 냉면 국수에 얹어 비벼 먹는 회냉면이 유명하다. 냉면에 곁들여 먹는 다대기도 이 지방 고유의 용어로 고춧가루에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양념을 말한다. 제주도는 해산물이 풍부하여 이를 이용한 생선국수가 대표적이다. 또한 특산물인 흑돼지를 고명으로 올린 고기국수도 즐겨 먹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제물에 끓인 칼국수나 메밀칼싹두기와 같이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한 국수를 즐겨 먹어 왔다. 서해안이 가까운 충청도 지역에서는 주로 굴이나 조갯살로 국물을 내어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국수요리는" 
국수장국(온면)·칼국수·건진국수·냉면·비빔국수 등이 있으며, 종류에 따라 재료 및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국수장국은 녹두녹말에 밀가루를 섞어 익반죽하여 국수틀에서 뽑아 삶아서 만든 국수를 양지머리의 육수나 쇠고기 맑은 장국에 말고 다진쇠고기볶음·편육·알지단 등을 고명으로 얹은 것이다. 대체로 서울 이남지방에서 많이 먹는다. 칼국수는 밀가루를 차지도록 반죽하여, 얇게 밀어 가늘게 썬 후, 쇠고기장국이나 닭고기장국 등에 넣고 끓인 것이다. 
건진국수는"
칼국수와 같이 만든 국수를 끓는 물에 삶아 건진 다음 여러 차례 찬물에 헹구어 맑은 장국에 말고, 애호박볶음·오이볶음·쇠고기볶음·알지단 등의 고명을 얹어 만든다. 냉국수로 할 때에는 국수국물·고명을 모두 차게 식힌 다음 말도록 한다. 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을 섞어 만든 국수를 쇠고기육수, 닭고기국물 또는 동치밋국, 시원하게 익은 배추김치국물, 동치밋국과 육수의 혼합물 등을 차게 식혀 말고 오이채·배채·편육·동치미무 등을 얹어 시원하게 만든다. 메밀의 산출이 많은 서울 이북지방의 음식으로 특히 평안도지역의 명물음식이다. 
비빔국수는 메밀국수·밀국수·건진국수 등 어느 것으로나 만들 수 있으며, 쇠고기볶음·오이나물·호박나물·미나리볶음·표고버섯볶음 등을 계절과 기호에 따라 준비하여 국수와 갖은 양념으로 비빈다. 특히, 함흥식 비빔냉면은 육회나 홍어회 등을 함께 넣고 맵게 비비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나라는 풍토상 밀의 산출이 적었으므로 국수는 잔치음식 또는 별미음식으로 쓰였고, 주로 점심식사용으로 쓰였다. 국수가 혼례잔치 음식으로 자주 쓰이면서, 국수 자체가 혼례를 상징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국수를 언제 먹여줄래?”라는 물음은 “결혼을 언제 하느냐?”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는 혼인 잔치에 찾아오신 손님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음식문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우리 문헌에서는 국수를 찾아볼 수 없고, 『고려도경()』에 “10여 종류의 음식 중 국수 맛이 으뜸이다(, 식미십여품이면식위선)”라는 말이 나오고, 『고려사()』에서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라는 말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도 국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서 고려시대의 국수〔〕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데, 재료가 다양하게 쓰이고 있어서 국수 문화가 다채롭게 발전했음을 알 수 있거니와, 국수틀을 이용하여 만드는 법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조선 중기 이후에 국수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숫집에서 국수틀로 만든 국수를 사리를 지어 싸리 채반에 담아 판매했다. 1900년대 이후에는 회전압력식 국수틀이 개발되어 밀가루 날국수를 말린 건조 밀국수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어휘의 생성 시기는 『고려도경』의 편찬자인 송나라 사람 서긍()이 사신을 따라 고려에 들어왔던 인종 1년인 1123년으로 잡는다. 
햇밀을 수확하는 초여름이면 햇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어 만든 칼국수를 시식으로 먹었고, 겨울이면 찬 육수나 동치미국에 메밀국수를 만 냉면을 계절 별식으로 삼았다. 지금도 국수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는 메밀가루와 녹말을 혼합하여 만든 메밀국수, 밀가루와 녹두녹말을 혼합하여 만든 녹말국수, 밀가루만으로 만든 밀국수 등이 있다. 
『음식디미방』·『주방문』에는 바가지에 구멍을 뚫어 압착하여 국수를 만드는 법이 나오며 『증보산림경제』·『임원십육지』에는 국수틀을 이용하여 만드는 법이 나온다.  잔치음식으로 ‘국수장국상’을 차린 이유에 대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국수장국상에는 편육 한 접시라도 놓으니 대접 중에 낫고, 온갖 잔치나 아침, 점심으로 안 쓰는 데가 없다.”라고 하였다. 즉, 국수장국과 더불어 편육 등 다른 귀한 음식도 함께 대접할 수 있으므로 손님에게 더 나은 대접을 할 수 있는 손님 접대음식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712년에 발간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에는 국수가 백제에서 전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수가 일생의례 음식으로 이용되었던 이유는 국수의 모양이 길게 이어진 것처럼 ‘수복’과 ‘장수’ 또는 ‘추모’의 의미가 길게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즉 출생・생일・돌・회갑 등 출생의례에는 ‘국수’의 길쭉한 모양처럼 수명이 길기를 기원하는 ‘장수’의 뜻을, 혼례에는 결연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백년해로’와 ‘수복’의 뜻을, 제례에는 ‘추모’의 뜻을 담았다. 이처럼 국수는 기원이 담겨 있는 음식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 이후에 국수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수집에서 국수틀로 만든 국수를 사리를 지어 싸리채반에 담아 판매하였다. 1900년대 이후에는 회전압력식 국수틀이 개발되어 밀가루날국수를 말린 건조밀국수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1945년 이후부터는 수입밀가루가 많아지면서 여러가지 밀국수요리가 일반화되었다. 종류로 는 각지역에 잘맞게 다량한 개발이 되어져 내려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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